[한승주 칼럼] 땅 밑 221시간, 그들을 살게 한 것

국민일보

[한승주 칼럼] 땅 밑 221시간, 그들을 살게 한 것

입력 2022-11-16 04:20

수직갱도 지하 190m 고립되니 세상 모든 것이 아름답게 보여
가족에 소홀했던 것 가장 후회
기적의 생환자들이 깨달은 건 사랑하는 이와 많은 시간보내고
다른 이들에게 베풀며 사는 것
소중한 생명 이토록 허무하게 스러지니 소소한 일상이 중요
우리 사회 여유와 배려 필요해

# 일손이 부족하다는 말에 임시직으로 탄광에 들어갔다. 땅 밑으로 내려간 지 고작 나흘째, 갑자기 토사가 쏟아지는 소리가 들렸다. 크나큰 충격에 발걸음이 안 떨어졌다. 밟고 있는 땅, 지축마저 흔들린다는 느낌이었다. 짙은 어둠으로 두려움이 증폭되며 이성마저 잃어버릴 정도였다. 그는 9일 만에 극적으로 구조됐다. 일주일간의 치료를 마치고 퇴원하는 날 말했다. 수직갱도 지하 190m에 있으니까 정말 세상 모든 것이 아름답게 보였다고. 살아가며 못 느꼈던 감정이었다. 평소에 용기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그런 환경에 처하니 굉장히 나약해졌고, 하염없이 눈물만 흘렀다. 참된 용기란 것이 정말 대단한 거라는 걸 깨달았다. 이 일을 계기로 삶의 가치를, 방향성을 바꿔 봉사할 줄 알고 사람들을 챙기면서 살아야겠다. 자신은 그저 시골 사람이라며 신원을 밝히길 원치 않은 보조 작업자 얘기다.

# 경북 봉화군 아연 채굴 광산에 같이 고립됐다가 구조된 작업반장 박정하씨는 지난 11일 병원을 나오며 이렇게 말했다. 나한테 시간이 얼마 없다는 걸 느꼈을 때, 제일 소중한 게 가족이란 걸 새삼 느꼈다. 조금 더 적극적으로 챙겨줄 걸, 그러지 못했던 것이 가장 후회됐다. 그는 퇴원 후 가족과 한자리에 모여 회를 먹으며 소주 한잔했다고 한다. 고향 부모님 산소를 찾고, 가족 여행도 떠난다. 갓난아기처럼 감회가 새롭다는 그는 아주 즐거운 마음으로 제2의 인생을 살아보고 싶다고 했다.

221시간의 고립 후 생환은 기적이었다. 9일이나 지나 무너진 갱도에서 이들이 살아 돌아올 것이라 기대한 사람이 적었기에, 큰 참사로 슬픔에 빠진 우리에게 한줄기 빛 같은 소식이었다. 혼자가 아니라 둘이라 더 오래 버틸 수 있었다. 절망 속에서도 한참을 부둥켜안고 같이 울 사람이 있었으니까. ‘사람 냄새가 질릴 정도로 나는’ 평균 나이 68세의 동료 광부들이 우리를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란 생각도 힘이 됐다. 무엇보다 땅 위로 올라가 다시 흙을 밟고 걸으며 신선한 공기를 마시고 싶었다.

이들이 극한의 상황에서 기적을 겪으며 깨달은 건 거창한 것이 아니다. 소소한 것이다.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 그들과 좋은 풍경을 보고 사랑한다고 많이 얘기하는 것, 다른 이를 돕고 베풀며 사는 것. 우리가 이미 충분히 배우고 들어서 알고 있지만 평소에는 실천하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는 종종 이보다 더 멋지고 위대해 보이는 일을 찾아 가까이 있는 소중한 것을 지나치고는 한다. 권력과 유명세, 돈 같은 것이다.

하지만 요즘처럼 생명이 이토록 허무하게 스러질 수 있음을 목격한 시점엔 다 소용없게 느껴진다. 죽음이 생각보다 가까이 있음이 두렵고 슬프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살아 돌아온 이들의 말에 귀 기울이는 것이다. 늦가을 정취가 넘치는 계절이다. 쌀쌀하지만 걸을만한 날씨, 낙엽을 밟으며 생각한다. 살아있다는 것, 그래서 물들어가는 나뭇잎을 볼 수 있고, 숨 쉴 수 있다는 것이 새삼 감사하다. 크게 아프지 않고 주변에 마음을 나눌 사람들이 있다면 괜찮은 것이다.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에 최소한의 안전은 지켜져야 한다. 자꾸만 갱도가 무너지고, 기차가 탈선하고, 작업장에서 사고가 일어난다. 심지어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로 목숨을 잃는다. 원인을 철저히 파악하고 재발 방지책을 서둘러야 한다. 공무원은 각자 맡은 일을 제대로 해야 한다. 책임질 사람은 책임지고 물러나는 게 마땅하다.

여기에 사회 전체적으로 여유와 배려가 좀 더 있었으면 좋겠다. 코로나19를 겪으며 우리 사회에는 몸이 아프면 쉬어도 된다는 인식이 겨우 자리 잡았다. 과밀 사회, 일상의 위험을 마주하며 생각한다. 출퇴근길 지하철과 버스의 혼잡이 쉽게 해결되지 않는 거라면 우리는 여유를 가져야 한다. 지하철 몇 대쯤은 더 보내도 괜찮다. 더 빨리 출발했어야 했다고 다그치기보다는 좀 늦어도 괜찮다고 배려해 줄 수 있는 문화가 필요하다. 빨리 오는 것보다는 당신의 안전이 중요하니 숨쉬기 어려울 정도의 공간에 몸을 실어서는 안 된다는, 당연한 인식 말이다. 기록적인 폭우가 올 때는 무리해서 출근하지 않아도 좋다는 공감대처럼 말이다. 너무도 당연한 말이지만, 일하러 갔다가 혹은 놀러 나갔다가 죽을 수도 있다는 공포는 없어야 한다.

한승주 논설위원 sjhan@kmib.co.kr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