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 월드컵 개막식을 장식한 K팝

국민일보

[청사초롱] 월드컵 개막식을 장식한 K팝

강헌 음악평론가

입력 2022-11-23 04:06

전 지구촌을 아우르는 유일 종교가 축구라는 말은 이제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정치, 경제, 인종, 종교, 군사, 문화적으로 세계는 어지럽게 갈라지고 대립하며 크고 작은 갈등을 끊임없이 쏟아낸다. 모든 대륙을 아울러 하나의 규칙 아래 열광과 동질감을 조직하는 것은 놀랍게도 400여 그램의 가죽으로 만들어진 공 하나를 두고 스물두 명이 다투는 축구뿐이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수많은 스포츠 종목 중 하나를 담당하는 민간 기구일 뿐이지만 이 기구가 가지는 영향력은 시간이 흐를수록 막강해져서 전 종목을 아우르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보다도 더 강력한 입지를 가지게 됐다. 올림픽은 여전히 서구를 중심으로 한 선진 강대국의 헤게모니 아래 놓여 있지만 월드컵은 유럽과 남미가 팽팽한 지분을 갖고 있는 가운데 아시아와 아프리카, 북미 대륙도 만만치 않은 지분을 쌓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유럽과 남미를 제외하고 나머지 지역에서 지난 스무 번의 월드컵 동안 결승전에 진출한 나라는 아직 없지만 말이다. 4강에 진출한 나라는 1회 대회인 1930년의 미국과 2002년 대한민국이 유이하다. 하지만 미국은 여자 월드컵에서는 현존하는 최강국이다.

FIFA가 가진 힘은 생각보다 상당하다. 현재 FIFA 가입국은 211개국인데 206개국의 IOC, 193개국의 유엔보다 많다. 즉 아직 국제 사회에 독립국가로 인정받지 못한 팔레스타인 같은 비주권 국가도 FIFA에선 당당히 국가로 대접받는다. 독립의 길이 험한 비주권 국가의 독립 행보 첫걸음이 FIFA에 가입하는 것이라는 정설 아닌 정설이 성립될 정도다.

인기와 영향력이 지대한 만큼 ‘피파 마피아’라는 오명에서 알 수 있듯이 재정 문제에 있어 부정부패는 심각하다. 특히 개최지 선정을 둘러싼 뇌물 스캔들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축구 역사의 영웅 중 한 명인 독일 프란츠 베켄바워는 2006년 독일월드컵 유치 과정에서 약 600만 달러의 뇌물을 아시아쪽 집행위원 4명에게 뿌린 혐의로 15년간 재판을 받다가 공소시효 소멸로 간신히 무마됐다. 독일 같은 선진국이 이런 정도니 월드컵 유치에 목숨을 건 개발도상국의 로비는 상상 그 이상일 수밖에 없다.

처음으로 겨울에 열리는 이번 카타르월드컵은 개최지 선정 과정과 일정 그리고 준비 과정에서 많은 문제점이 드러났음을 부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서남부 아시아에서 처음 열리는 대회이고 팬데믹으로 인해 1년 연기돼 5년 만에 열리는 만큼 전 세계인들의 관심이 서서히 고조되는 가운데 개막 공연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한 주인공은 놀랍게도 이번 월드컵 주제가를 부른 BTS의 정국이었다.

1962년 칠레월드컵 이후 60년간의 월드컵에선 공식·비공식적 주제가들이 선보였는데 정국이 부른 ‘드리머스(Dreamers)’는 역대 가장 인기를 모은 1998년 프랑스월드컵에서 리키 마틴이 부른 ‘어 컵 오브 라이프(A Cup of Life)’와 2010년 남아공월드컵에서 샤키라가 부른 ‘와카 와카(Waka Waka)’를 넘어서는 대중적 반향을 불러올 것이 거의 확실해 보인다. 10억이 넘는 전 세계인이 생중계로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모로코 출신의 뮤지션 레드원이 작곡하고 카타르의 스타 파하드 알 쿠바이시가 피처링한 이 퍼포먼스를 통해 K팝이 지금 여기 지구촌에서 차지하고 있는 권능을 단숨에 펼쳐보였다. 드리머스는 공개 6시간 만에 애플 음원 다운로드 차트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불과 20년 전 우리 안방에서 벌어진 한·일월드컵에서 브라운 아이즈와 박정현이 일본 뮤지션들과 입을 맞춘 ‘렛츠 겟 투게더 나우(Let’s get together now)’와 조수미가 부른 ‘챔피언스(Champions)’ 같은 주제가들은 국내에서조차 응원가 ‘오 필승 코리아’보다 인지도가 낮았다. 참으로 격세지감이다.

강헌 음악평론가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