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재난에서 배우지 못하는 재난

국민일보

[세상만사] 재난에서 배우지 못하는 재난

김현길 사회부 차장

입력 2022-11-25 04:02

“보십시오. 제가 지금 몰랐다는 말을 어떻게 믿겠는지.” “저렇게 몰랐다는 게 말이 됩니까.” 지난 16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서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은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을 몰아세웠다. 장 의원은 이태원 참사 전 112신고가 잇따랐는데도 밤 11시 전까지 보고를 못 받아 몰랐다는 이 전 서장을 향해 “부하 경찰에게 모든 죄를 덮어씌운 대한민국 경찰의 수치”란 비난을 쏟아냈다.

다른 의원 대부분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 전 서장, 함께 출석한 류미진 총경 개인 잘못에 초점을 맞췄다. 사실 이날만이 아니라 참사 직후부터 정치권의 초점은 입장과 진영에 따라 누구 잘못이 더 큰지 따지거나 방어하는 데 맞춰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참사 다음 날 했던 자신의 말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추측, 선동성 정치적 주장을 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라고 했다가 책임 회피에 급급하다며 뭇매를 맞았다.

돌이켜보면 10월 29일은 비교적 익숙한 재난에 가슴을 쓸어내리며 깬 후 상상하기 힘든 끔찍한 재난에 잠 못 든 날이었다. 그날 아침 규모 4.1의 지진은 다행히 인명 피해 없이 지나갔지만 그날 밤 이태원에서의 참상은 익히 아는 대로다. 이젠 대규모 압사가 서울 한복판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고 인식하지만 그전엔 국제뉴스에서나 접하던 일이라 여겼다. 불과 20여일 전 인도네시아에서 120명 넘는 압사사고가 발생했는데도 그랬다. 언론도 그 가능성을 살피지 못했다. ‘3년 만의 노마스크 핼러윈이라고 광고했던 게 언론이다’는 기사 댓글이 눈에 밟혔던 이유다.

그런 점에서 기자는 아직 수사 중이지만 이 전 서장의 ‘몰랐다’는 답변이 장 의원 의심과 달리 사실에 더 부합한다고 본다. 사고 이후까지 뒷짐 지고 걸어가는 그의 모습은 대규모 압사 가능성을 살피지 못했던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이기도 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조치가 어쩔 수 없었다거나 그럴 만했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참사에 이르는 과정을 바닥까지 샅샅이 드러내고, 같은 아픔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선 개인과 진영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개인과 진영의 책임을 따지는 소란 속에 문제 해결을 위한 시야가 좁아진 경우도 많았다.

재난과 위험의 사회학을 연구한 이재열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가 최근 서울대 아시아연구소가 발간한 ‘아시아 브리프’에 기고한 글은 참고할 만하다. 이 교수는 재난 재발과 관련해 크리스 아지리스 전 미국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를 인용해 누구 책임인지를 따지고, 처벌하거나 사표를 받고, 새 조직을 만들고 결의대회를 하는 방식은 ‘소를 잃고도 외양간을 고치지 않는 꼴’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세월호 참사 후 여러 차례 조사위원회가 만들어지곤 했는데, ‘비난의 정치’만 증폭됐다. 누구 책임이냐를 따지는 정치적 갈등은 커졌는데, 정작 8년이 지나고도 시스템은 개선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반대로 재난을 되풀이할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선 문제를 온전히 드러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 교수는 내부 실패 요인을 과감하게 외부 전문가들에게 공개해 조직 대응의 토대가 되는 가정이나 전제에 잘못이 없는지 검토하고, 시스템을 바꿀 수 있는 개선책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그는 한국 사회가 성수대교·삼풍백화점 붕괴, 세월호 참사 같은 ‘과거형·숙성형 재난’에서 벗어나지 못했는데 극단적으로 발생 가능성이 낮은 ‘미래형·블랙스완형 재난’에 직면한 복합적 재난 사회가 됐다며 학습 능력이 문제라고 했다. 재난에서 배우지 못하는 재난, 그 고리부터 끊어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김현길 사회부 차장 hg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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