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한전 적자, 경제 위기 불러오나

국민일보

[경제시평] 한전 적자, 경제 위기 불러오나

조성봉(숭실대 교수·경제학과)

입력 2022-11-29 04:04

경제 위기는 두 가지 특징을 보인다. 먼저 가장 취약한 곳에서 문제가 터진다. 다음으로 도미노처럼 연쇄반응이 나타나 경제의 약한 부분부터 무너지기 시작하면서 전 분야로 파급된다. 이 두 가지 특징을 이어주는 중요한 고리가 있다. 바로 금융이다. 한 부문이 안 좋더라도 그곳에만 문제가 한정되고 다른 분야로 번지지 않는다면 위기로 이어지지 않는다. 그런데 자금 사정이 안 좋을 때 한 곳의 문제는 다른 곳의 금융경색으로 이어진다. 한쪽에서 돈을 빨아들여 다른 곳에 들어갈 돈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이처럼 연쇄효과는 금융 부문을 매개로 나타난다.

우리나라 최대 공기업인 한국전력의 적자는 경제 위기의 씨앗으로 커지고 있다. 한전은 지난해 5조8600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올해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으로 천연가스 가격을 비롯한 연료비가 폭등해 발전회사로부터 사들이는 전력 구입 비용이 급등했으나 문재인정부가 묶은 전기요금으로 한전 적자는 상반기에 14조원으로 급증했다. 올해 전력생산 원가 인상폭은 ㎾h당 60원이 넘었는데 전기요금 인상은 4월과 10월 두 차례에 걸쳐 ㎾h당 14원에 그쳐 금년도 한전 적자는 30조원이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천문학적 적자 속에 한전은 어떻게 돈을 마련했을까. 올해 한전은 회사채를 27조원 가까이 발행했다. 연말까지 30조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지난해(10조3200억원)의 세 배 가까이 되고 2020년(3조4200억원)의 9배에 근접한다. 누적된 채권까지 합하면 한전이 상환할 총채권은 65조6000억원을 넘어선다. 회사채도 모자라 한전은 올해 말까지 은행에서 2조원을 대출받기로 했다.

한전이 금융 부문에서 자금을 모조리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되자 ‘구축(驅逐) 효과’가 나타났고 연쇄적으로 문제가 파급되기 시작했다. 한전의 회사채 발행 급증과 함께 지난 10월 레고랜드 사태로 자금 경색이 시작됐다. 한전과 도로공사의 회사채가 유찰됐고, 건설 및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시장의 자금 경색도 나타나 서울 둔촌주공아파트 PF 차환 발행도 실패했다. 자금 경색으로 10월의 국내 기업 회사채 발행 규모(8조2982억원)는 9월(16조4480억원)에 비해 절반 가까이 줄어들었다.

한전 적자가 불러온 자금 경색의 직접적 여파는 산업은행에서 나타난다. 한전 지분을 33% 보유한 산업은행의 자기자본비율이 줄어 대출 여력도 33조원 이상 줄어든다. 한전 적자를 줄이기 위해 산업통상자원부가 추진하는 도매 전력시장의 전력거래가격(SMP) 상한제는 발전회사가 받아가는 전력판매 대금을 깎아버려 이들의 자금 사정을 어렵게 한다.

경제 전반으로 눈을 돌리면 문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한국은행이 올해 여섯 차례나 기준금리를 인상해 금융시장 유동성을 조이는 시점에 한전의 회사채 급증과 2조원의 은행 대출은 시중자금을 빨아들이고 있다. 이미 일부 건설업계, PF 대출에 관련된 증권사와 저축은행의 유동성 위기설이 퍼지고 있다. 이 와중에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법안소위는 한전채 발행 한도를 5배까지 올려주는 한국전력공사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한전채 발행 한도가 커지면 한전은 부도를 면하겠지만 시중자금을 더 많이 빨아들여 국민경제의 다른 부문을 연쇄적으로 무너뜨릴 수 있다.

이 모든 위기의 씨앗은 문재인정부가 묶어 놓은 전기요금에서 시작됐지만 경제 위기로 이어진다면 윤석열정부도 그 책임을 면할 수 없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으로 촉발된 에너지 위기는 오늘내일에 끝나지 않는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전기요금을 대폭 올려 한전 적자를 줄이고 다른 부문으로 번지는 연쇄효과를 차단해야 한다.

조성봉(숭실대 교수·경제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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