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 靑 영빈관 재활용, 실용정치로 전환할 기회

국민일보

[여의춘추] 靑 영빈관 재활용, 실용정치로 전환할 기회

손병호 편집국 부국장

입력 2022-12-09 04:09 수정 2022-12-09 04:09

아니나 다를까 탁현민 전 청와대 의전비서관이 비아냥거리듯 한마디 했다. 그는 최근 국빈 방한한 웅우옌 쑤언 푹 베트남 국가주석 환영 공식 만찬과 차담회가 옛 청와대 영빈관과 상춘재에서 열린 데 대해 “당연한 일을 참 어렵고 힘들게 돌아 돌아왔다. 이제라도 청와대 폐쇄의 당위를 주장하는 쓸데없는 고집을 버리라”고 지적했다. 윤석열정부 대통령실도 이런 반응이 나올까 신경썼을 것이다. 그래서 막판까지도 국립중앙박물관을 만찬 장소로 쓸지 고민했을 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종적으로 청와대 영빈관을 만찬 장소로 낙점한 것은 참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비판이나 조롱을 감수하고 국가에, 국민에게, 외교의 목적에 제일 좋은 걸 선택하는 게 현명한 국정 운영이다. 현 정부가 한 것 중에서 가장 칭찬해주고 싶은 일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국가 지도자는 ‘서생의 문제의식과 상인의 현실 감각’으로 실용정치를 펼쳐야 한다고 강조했었는데, 그런 게 얼핏 느껴졌다.

청와대 재활용이 별것 아닐 수 있지만, 현 정부 구성원들이 받아들이기에 따라선 상당히 상징적인 일로 기록될 수 있으리라 본다. 윤석열정부가 독선적 태도를 버리고 실용정치의 길로 나아가는 계기 말이다. 전 정권은 소득주도성장 정책이나 임대차 3법 등 잇따른 실책에도 불구하고 유턴할 줄 몰라 사태를 악화시키곤 했는데, 윤석열정부는 그런 전철을 밟지 않고 나라의 미래에 도움되는 길이라면 언제든 새로운 길을 선택해 나가기 바란다.

지금 윤석열정부에 가장 필요한 실용정치는 야당과의 소통을 통한 협치를 이끌어내는 일이다. 지금처럼 야당을 몰아세우기만 할 게 아니라, 끊임없이 설득하고 때론 통 크게 양보해서 어려움을 함께 극복해 나가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대통령부터 여당 정치인만 만날 게 아니라 야당 인사들까지 폭넓게 만나야 한다. 수사기관이야 필요한 수사는 해야겠지만, 여권이 앞장서서 문재인 전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시정잡배인 양 비난하는 일도 삼가야 한다. 직전 대통령과 야당 지도자를 예우하는 건 협치의 기본 중 기본이다. 협치를 안 해서, 야당과 만나지 않아서, 야당을 비난만 해서 더 손해보는 쪽은 대통령과 여당이다.

화물연대 파업과 같은 갈등 사안에 있어서도 힘자랑만 하지 말고 사태 해결을 위한 실용적 접근이 요구된다. 지지율에 좋다고 무조건 굴복시키려고만 해선 안 되고 최대한 파업을 빨리 풀 방안을 찾는 노력이 우선돼야 한다. 적어도 여권 내에서 ‘굿캅 배드캅’ 역할 분담이라도 있어야지, 대통령실·정부·국민의힘·검경이 죄다 때려잡겠다는 식으로 나서면 사태 해결은 더 어려워질 뿐이다.

국회 현안인 법인세, 상속세, 종합부동산세, 금융투자소득세 등의 세제개편안과 관련해서도 ‘부자 감세’라는 반대쪽 목소리에 귀기울일 필요가 있다. 비단 야당뿐 아니라 비교적 합리적 목소리를 내온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과 같은 시민단체들도 경제적 불평등을 심화하는 정책이라며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세 부담을 낮추면 부유층과 기업들이 좋아하겠지만, 어느 한쪽한테만 좋은 정책을 추진하는 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적정선을 찾아야 한다.

남북 관계도 마찬가지다. 강대강으로만 맞설 게 아니라 유연한 태도로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 북이 맹비난한 ‘담대한 구상’은 낡은 레코드의 흘러간 노래가 된 지 오래다. 그렇게 같은 노래만 틀 게 아니라 특사를 보내든, 물밑 접촉을 하든 대화를 복원하려는 노력을 더 적극적으로 기울여야 한다. 대통령부터 남북 대화에 진정성을 갖고 있음을 확실히 보여주고, 보다 현실성 있는 제안도 해야 한다. 화물연대 다루듯 북한을 다루면 북한이 넙죽 엎드리겠는가.

대통령실 홈페이지에는 ‘국민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못 할 일이 없다는 자세로 대안을 모색하는 정부가 되겠다’는 약속이 쓰여 있다. 국정 운영이 일방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바로 지금이 그 다짐을 되새겨야 할 때다. 국민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대야 관계든, 외교안보든, 정책 추진에 있어서든 바꾸지 못할 게 없다. 이제라도 국정 운영 전반에 그런 원칙을 견지해 실용적 선택들을 해 나간다면 성공한 정부로 남을 수 있으리라 본다.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어야 하듯 청와대 재활용 등으로 박수를 받고 있을 때 실용의 길로 과감한 전환에 나서기 바란다.

손병호 편집국 부국장 bhson@kmib.co.kr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