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버스 삼은 청바지, 불태운 예술… 기상천외 태국 미술가

국민일보

캔버스 삼은 청바지, 불태운 예술… 기상천외 태국 미술가

코라크릿 아룬나논차이 개인전
작품 여정 통해 창조·우주 구현
재가 된 잔해도 묵시록적 분위기

입력 2023-01-08 20:22
태국 작가 코라크릿 아룬나논차이가 지난 세밑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서울 종로구 삼청동 국제갤러리에서 한국 언론과 만나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코라크릿 아룬나논차이(37). 한번 듣고는 쉽게 외기 힘든 이름을 가진 태국의 30대 남성 현대미술가는 그 이름을 소재로 한 작품을 통해 20대에 미술계에 존재감을 드러냈다. 서구의 오리엔탈리즘적 시선에 대한 풍자와 비판이 담긴 작품으로 말이다. 서구 미술계의 중심인 미국에서 그는 그렇게 자신의 동양적 정체성을 무기 삼아 성공한 작가가 됐다.

아룬나논차이는 1986년 방콕에서 태어났다. 미국으로 유학 가 로드아일랜드 디자인스쿨에서 미술학사를 취득하고 2012년 컬럼비아대에서 순수미술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방콕과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하며 전 세계에서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33세였던 2019년은 행운의 해였다. 베니스비엔날레, 휘트니비엔날레, 이스탄불비엔날레 등 3군데 국제적인 행사에 초청받았다. 지난해에는 영국 미술 전문지 ‘아트 리뷰’가 매년 미술계에서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을 선정하는 ‘파워 100’ 중 88위에 이름을 올렸다. 그가 서울 종로구 삼청동 국제갤러리에서 개인전 ‘이미지, 상징, 기도’를 한다. 방한 중이던 지난달 중순 작가를 만났다.

미술계에 그의 이름을 각인시킨 작품 제목은 이렇다. ‘웃긴 이름을 가진 남자로 가득찬 방의 역사를 지닌 회화’(2013). 사연을 묻자 “(미국인) 너희가 볼 때 내 이름이 웃기게 보이지만 비서구인인 내가 볼 때는 앤디 워홀도 이름이 웃긴다. 이런 내용을 담은 영상 작품이 있는 데 이것과 연동된 설치미술 작업이었다”고 설명했다. 작가는 나중에 이를 영상 작업으로 확대시켜 연작으로 발표하며 베니스비엔날레 등에 출품했다. 그렇게 겨우 27세에 만든 작품을 통해 그는 비서구인으로서의 동양인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드러내는데 성공했고 이후 설치, 영상, 회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매체를 넘나드는 작업을 한다.

모든 장르에 흐르는 것은 타자화된 동양적 코드다. 작가는 수세를 공세로 전환하듯 이를 가지고 개인사와 공적 역사를 버무린다. 지난해 아트선재센터에서 가진 개인전 ‘죽음을 위한 노래, 삶을 위한 노래’에서는 영상과 설치 작품을 선보였는데, 애니미즘적 의식을 지칭하는 풍부한 시각적 이미지를 통해 할아버지의 죽음, 제주 4·3 사건, 태국 민주화 운동 등 개인적 서사와 역사적 사건이 연결되는 매혹적인 이야기를 선보였다.

2021년 국제갤러리 전속 작가가 된 이후 처음으로 갖는 이번 개인전에서는 영상 없이 회화 작품만 내놓았다.

“저는 비서구권 작가로서 서구권에 인정받는 방식으로 작품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회화는 저와 서구권·비서구권의 관계를 잘 보여주는 재료와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캔버스에는 활활 타오르는 불의 이미지, 타고 남은 재, 그러면서 작가의 회화적 제스처로서의 여러 이미지가 들어가 있다. 얼핏 추상과 구상의 경계를 허무는 작품 같은데, 자세히 봐야 상징 코드가 읽힌다. 작가는 일반적으로 쓰는 캔버스 천 대신에 표백한 데님(청바지 천)을 사용한다.

“청바지는 미국 서부 개척의 상징이자 미국 자본주의의 글로벌화를 상징합니다. 제 아버지는 돈이 없어 그 청바지를 입지 못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청바지를 입는다는 건 태국에서는 한때 계층 상승을 의미했습니다. 그런 청바지 천을 표백했으니 데님은 마치 피부처럼 다가오는 느낌도 있고요.”

작가는 표백한 데님에 그림을 그린다. 여기까지는 누구나 상상할 수 있는 회화적 행위다. 20대에 유명해진 아룬나논차이는 달랐다.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작가는 표백한 데님을 캔버스 위에 두고 그 위에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데님을 불태웠는데, 데님이 연소되는 과정을 바로 위에 카메라로 설치해 이미지로 기록했다. 불로 연소하는 퍼포먼스가 끝난 뒤에는 타고 남은 잔여물을 캔버스 위에 재구성한다. 그리하며 캔버스에는 활활 타오르는 순간과 재가 되어 남은 잔해가 함께 존재하는 기묘한 시공간이 연출된다. 작가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또 의미를 부여했다. 불타는 순간을 위에서 찍은 하늘의 기운과 재가 흙으로 돌아간 땅의 기운이 한 화면에 구축 되어 있다고. 이렇게 알레고리가 풍성한 작품을 근래에 본적이 없다. 그의 특별함은 여기에 있다.

작가는 “모든 것을 더 이상 환원 불가능한 상태로 태워버리는 불과 그 결과물인 재를 둘러싼 이 여정을 통해 보는 이로 하여금 창조와 우주적 순환구조에 대하 조망할 기회를 제공한다”고 말했다. 자신의 작업을 ‘역사 회화’라고 명명하는 작가는 이렇게 마지막까지 동양적 세계관을 작품 속에 투사한다.

작품 세계의 주요 모티브가 된 재를 깔고 기도문 텍스트를 새긴 전시장 바닥.

전시장 바닥은 검은 재로 덮여 묵시록적인 분위기를 낸다. 바닥에는 작가가 전시를 설명하는 자막과 같은 역할을 한다는 기도문이 새겨져 있다. 관람객들에게 제 전시의 자막과 같은 역할을 한다며 그 기도문을 꼭 읽어볼 것을 권했다.

글·사진=손영옥 문화전문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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