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섬情談] 복을 이루는 사람, 복을 빌리는 사람

국민일보

[너섬情談] 복을 이루는 사람, 복을 빌리는 사람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입력 2023-01-25 04:05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새해 들어서 가장 많이 주고받는 말일 테다. 설날 아침 아이들은 넙죽 엎드려 세배를 올리면서 명랑한 목소리로 어른들에게 복이 깃들기를 바라고, 어른들은 좋은 덕담과 용돈을 듬뿍 얹어서 아이들한테 복을 돌려준다. 언어에는 인간 마음을 바꾸고 행동을 달라지게 하며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으므로, 부디 덕담대로 올 한 해가 복되기를 기원한다.

그런데 복이란 무엇일까. 어떻게 해야 우리 삶에 복을 가져올 수 있을까. 막상 복을 떠올릴 때마다 막막하기만 하다.

한자 복(福)은 시(示)와 복(畐)이 합쳐진 말이다. 시(示)는 하늘에 올리는 제사상을, 복(畐)은 술통처럼 가운데가 불룩한 그릇을 가리킨다. 복은 신에게 술과 음식을 올리면서 이루고자 하는 일이나 구하려 하는 것들을 뜻한다. 신의 힘을 바랄 만큼 어렵고 힘들며 간절하고 긴요한 일일 터이다. 신의 도움으로 이루지 못할 건 없으므로, 복을 많이 받으면 자연스레 한 해 성취가 무궁하게 된다.

신동흔의 ‘민담형 인간’에 따르면, 우리나라 민담에는 복된 삶을 이루는 방법을 알려주는 두 가지 대표적 이야기가 있다. ‘복을 구하는 여행’과 ‘남의 복을 빌려 산 사람’이다. 두 이야기의 주인공은 각각 석숭과 차복이다.

석숭은 중국 진(晉)나라 때 실존했던 억만장자의 이름으로, 동아시아 지역에서 흔히 부자의 대명사로 여겨진다. 민담에서 그는 세상에서 가장 복 많은 사람을 뜻한다. 하지만 처음부터 금수저는 아니었다. 가난한 시골 총각이었던 그는 어느 날 동네 어른한테 서천서역에 가면 복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을 듣는다. 그 말을 듣자마자 석숭은 곧바로 길을 떠나 무작정 서천서역으로 향한다. 고난과 시련을 견딘 끝에 황금과 여의주와 동자삼 등을 얻고 예쁜 여자와 짝을 이룬다.

놀라운 행동력과 불굴의 의지는 석숭의 특징이다. 동네 어른들처럼 우리 역시 지금 여기의 삶엔 복이 없고, 서천서역에 가야 복이 있음을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도대체 뭘 믿고서?”란 말을 되뇌면서 이곳에서 박복한 삶을 살아간다. 석숭은 우리에게 복된 삶은 확신이 아니라 행동의 산물임을 보여준다. “석숭은 필연적으로 복을 얻을 사람이었다. 복을 찾을 때까지 계속 움직일 것이므로. 어찌 복이 그를 끝까지 피할 수 있겠는가.” 행동을 통해 확신을 만들고 강한 의지로 고난을 이겨내는 사람은 복이 있다.

민담은 복된 삶을 사는 다른 길도 알려준다. 차복은 가난한 나무꾼이었다. 아내와 함께 성실히 열심히 살아갔지만, 아무리 해도 입에 풀칠만 할 뿐 살림살이가 나아지지 않았다. 차복이 하늘에 올라 신에게 항의하자, 신은 복주머니들이 매달린 커다란 창고로 차복을 데려간다. 그런데 차복의 타고난 복주머니는 너무나 작았다.

무척 큰 주머니도 있었다. 머잖아 태어날 석숭의 것이었다. 차복은 신에게 하소연해 석숭이 태어나 일곱 살 될 때까지 그의 복을 빌렸다. 덕분에 큰 부자가 된 차복의 집에 어느 날 아이를 밴 거지 부부가 동냥을 왔다. 차복은 그들에게 인정을 베풀어 집에 머물게 했는데, 며칠 후 태어난 아이 이름이 석숭이었다. 때가 왔음을 깨달은 차복은 석숭과 그 부모를 극진히 대접하다 일곱 살 석숭에게 재산을 넘겼다. 그러자 석숭은 차복을 양부모로 받아들여 죽을 때까지 그를 평안히 모셨다.

스스로 복을 이루기 힘들면 남의 복을 빌려야 좋은 삶을 살 수 있다. 석숭의 동반자가 돼 그 복을 함께 누리면 우리도 역시 복되다. 성실하고 선량하며 신의 있는 마음은 차복의 특징이다. 매일 땀 흘려 일하고, 어려운 이웃을 돌보며, 운명의 약속을 지킬 때 우리는 석숭의 동반자일 수 있다. 석숭의 길은 눈부시게 보람차나 어려운 고통을 견뎌야 하고, 차복의 길은 상대적으로 안온하나 화려하지 않다. 석숭과 차복, 과연 당신은 어떻게 살 것인가.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