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정치력 빈곤 드러낸 여당 대표 경선 잡음

국민일보

[사설] 정치력 빈곤 드러낸 여당 대표 경선 잡음

입력 2023-01-26 04:02
국민의힘 3·8 전당대회 출마를 고심했던 나경원 전 의원이 25일 서울 여의도 국힘의힘 중앙당사에서 전당대회 불출마 입장을 밝힌 후 차량에 탑승하고 있다. 이한결 기자

나경원 전 국민의힘 의원이 25일 3·8 전당대회 당대표 선거 불출마를 선언했다. 기자회견에서 ‘당의 화합과 단결’ ‘선당후사’ 등을 명분으로 내걸며 “용감하게 내려놓겠다”고 했지만 불출마의 변은 공허하다. 당의 분열과 혼란에 대한 국민적 우려를 막기 위해 결단했다고 했지만 혼란의 책임은 나 전 의원에게도 있다. 여론조사 지지율이 높게 나온 것에 고무돼 당대표직을 노렸다가 외압에 굴복한 것 아니냐는 지적을 아프게 받아들여야 한다. 애초에 당대표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면 몇 개월 하고 그만둬야 할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과 기후환경대사직을 고사했어야 했다.

나 전 의원의 불출마는 그의 한계를 보여줬지만 정당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먼 국민의힘의 실상도 함께 드러냈다. 당대표 선거는 당의 미래를 주도할 최고책임자를 뽑는 자리이고, 지도자급 인사들이 정치적 소신과 비전을 갖고 선의의 경쟁을 펼치는 축제의 장이어야 할 텐데 초반부터 윤석열 대통령이 좌지우지하는 듯한 장으로 변질됐다. 대통령의 한마디에 전당대회 선거 규칙을 바꾸고, 출마 의향을 밝힌 중량급 친윤 후보가 불출마로 돌아서고, 소위 ‘윤핵관’ 인사들이 특정 후보를 대놓고 지지하는 듯한 행보를 보여 윤심이 작동하고 있다는 의심을 키웠다. 나 전 의원이 출마 가능성을 언급한 후에는 ‘집단 따돌림’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대통령실과 당내에서 공격이 거셌다. 50명의 초선 의원들까지 공동성명을 통해 불출마를 압박했다. 대통령과 집권당 대표가 손발이 잘 맞아야 원활한 국정 운영에 도움이 되는 측면이 있다 해도 사퇴 압박은 노골적이었고 정도가 지나쳤다. 윤 대통령이 당선 직후 선언한 당정 분리 원칙은 빈말이 됐다. 정당 민주주의의 퇴행이 아닐 수 없다.

국민의힘의 이런 행태를 국민들이 어떻게 평가할지 여권은 냉정하게 짚어보길 바란다. 대통령과 집권당이 공동운명체지만 둘은 상호 존중하고 적당한 긴장 관계를 유지하는 게 바람직하다. 당내에 다양한 목소리, 합리적 비판이 들어설 자리가 없고 한목소리만 강조되는 정당은 건강한 정당이 아니다.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