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준비 태세

국민일보

[살며 사랑하며] 준비 태세

유재연 옐로우독 AI펠로우

입력 2023-01-27 04:03

명절 직후에는 유독 샐러드 가게마다 주문이 쌓인다. 아삭한 푸성귀에 소스는 최소한으로 두르고 여기에 삶은 달걀을 곱게 썰어 먹음으로써 일종의 ‘명절 후 의식’을 치르는 이들이 꽤 많은가 보다. 이번 설에도 위장에 기름칠을 하다 그만 체중이 불어버린 나는 출근과 동시에 샐러드 주문에 동참할 이들을 모집했다. 회사 동료들은 “우리는 이미 어젯밤부터 (샐러드를) 준비했다”며 철저한 태세를 뽐냈다.

숲속처럼 푸르러진 식탁에 둘러앉아 우리는 제각각 명절 때 이야기를 했다. 누군가는 이틀 연속 전을 부쳤고, 누군가는 이틀 연속 만취했다. 누군가는 중고거래 사이트에 먹지 않는 햄 선물세트를 올렸고, 누군가는 명절 전까지 끝내 상대방에게 도착하지 않은 선물세트 때문에 난감해했다. 도무지 풀리지 않는 반복적 문제들이다. 전을 부치는 일은 왜 늘 기름 화상을 입을 가능성을 열어둔 채 이뤄져야 하는가? 숙취가 생기기 전에 술을 자제하게 만드는 탁월한 장치는 없을까? 같은 값에 원하는 선물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은? 명절 전 물류센터 노동자의 피로를 경감하며 효율을 높이는 방법은?

혁신적 발명들은 기존에 당연시하던 것들에 반기를 들고 그 문제를 풀어냄으로써 새롭게 가치를 창출해냈다. 인간은 당연히 날 수 없다고 여겼지만 결국 비행기를 만들고, 이동 가능한 물리적 공간을 획기적으로 늘린 것은 혁신이었다. 육수를 내느라 몇 날 며칠 밤을 지새우는 게 당연한 풍경에 유통과 보관이 가능한 조미료를 만들어내고, 이로써 여성의 가사 노동시간을 줄인 것도 혁신이었다. 차량을 보유한다는 이유로 각종 유지비를 내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에서 차량 공유 모델을 제안하고, 결과적으로 탄소배출량 절감에 기여하는 것도 혁신이다.

수백년 역사를 지닌 설 명절을 보냈다. 너무 익숙해져 문제인 줄도 몰랐던 것들에 질문을 던져보며, 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신나는 모험이 올 한 해 더욱 활발해지기를 바라본다. 우리는 그 도전을 도울 태세를 갖췄다.

유재연 옐로우독 AI펠로우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