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전략적 모호성

국민일보

[한마당] 전략적 모호성

전석운 논설위원

입력 2023-01-27 04:10

미국은 1979년 중국과 수교하면서 ‘하나의 중국’ 원칙을 받아들여 대만과 체결한 상호방위조약을 폐기했다. 그러나 대만에 대한 군사 지원만큼은 중단하지 않았다. 미국은 지난해에만 4차례에 걸쳐 대만이 요구한 무기 체계를 수출했다. 이 중에는 AGM-9X 하푼 블록Ⅱ 지대함 미사일 60기(3억5500만 달러 어치)와 AIM-9X 블록Ⅱ 사이드와인더 공대공 미사일 100기(8560만 달러), 감시레이더 장비(6억5540만 달러) 등이 포함됐다. 중국이 강하게 반발했음은 물론이다.

미국의 무기 판매는 중국 수교와 동시에 만든 대만관계법에 따른 것으로 방어용 무기를 지원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미국이 선택한 ‘전략적 모호성’이다. 그런데 미국이 40년 넘게 고수하던 전략적 모호성이 최근 불분명해지고 있다. 미 하원 공화당 소속 의원들이 25일(현지시간) 미 행정부에 대만을 독립국가로 인정하고 공식적 외교관계를 회복할 것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제출했다. 톰 티파니 등 18명의 의원들이 서명한 결의안은 대만과의 자유무역협정 체결도 촉구했다. 중국의 대만 침공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미 정가에서 그만큼 높다는 걸 반증한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중국이 대만을 군사적으로 침공할 경우 대만을 방어할 것이라는 입장을 여러 차례 밝혔다. CBS ‘60분’ 인터뷰를 포함해 공개 발언만 4차례였다.

한국은 1992년 중국과 외교관계를 수립한 이후 미·중 간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고 있다. 한·미동맹을 기반으로 군사안보는 미국에 의존하고 있지만 교역은 중국에 크게 기대고 있다. 중국과의 교역량은 미국, 일본을 합친 것보다 많다. 한국의 핵심 전략 물자 228개 품목 중 172개(75.5%)가 중국산이다. 그러나 미국의 외교전문매체인 더 디플로맷은 25일 윤석열 대통령의 다보스포럼 연설 내용을 소개하면서 한국 정부가 과거처럼 전략적 모호성을 고집하기가 점점 어려워질 것이라고 평가했다. 미·중 갈등이 심화될수록 한국 외교의 선택지는 점점 좁아질 것 같다.

전석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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