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수 칼럼] 마스크를 벗은 첫날에

국민일보

[신종수 칼럼] 마스크를 벗은 첫날에

입력 2023-01-31 04:20

3년 만에 보이는 터널의 끝
많은 사람들 희생과고통

당국 노력과 국민들 협조,
의료진 헌신 덕분에 모범 방역

IMF 때 금 모으기처럼 마음
모으고 연대한 것 소중한 자산

실내에서 마스크를 벗었다. 2020년 10월 이후 27개월 만이다. 혼자 차를 운전할 때도 그냥 쓰고 있을 정도로 익숙해져 있던 마스크다. 이따금 면도를 하지 않아도 마스크로 가릴 수 있어 편했다. 얼굴 표정도 숨길 수 있어 좋았다. 2년여 만에 마스크를 벗으니 얼굴이 허전한 느낌도 든다. 표정 관리에도 신경써야겠다. 하지만 얼마만에, 어떻게 회복한 일상인가. 다행이고 감사할 뿐이다. 이 일상을 되찾기까지 많은 고통과 희생이 있었다.

지금은 코로나 증상이 상대적으로 약화됐지만 우한폐렴으로 불리던 초기만 해도 중증 환자가 많았다. 2020년 2월 대구에서 코로나가 창궐했을 당시 봉쇄 얘기가 나올 정도로 혼란과 공포는 극에 달했다. 이 어려운 시기를 견딜 수 있게 해준 것은 많은 사람들의 헌신과 희생이었다. 당시 대구시의사회 회장이 의사들에게 보낸 호소문을 다시 읽어 본다. 일부 내용은 이렇다.

“우리 선후배 동료들이 업무에 지쳐 쓰러지거나 코로나 환자를 돌보다 감염돼 격리되고 있다. 넘쳐나는 환자에 비해 의사들은 턱없이 모자란다. 질병과의 힘든 싸움에서 최전선의 전사로 분연히 일어서자. 불퇴전의 용기로 한 명의 생명이라도 더 구하기 위해 끝까지 싸우자. 이 위기에 단 한 푼의 대가, 한마디의 칭찬도 바라지 말고 피와 땀과 눈물로 시민들을 구하자. 일과를 마친 의사 동료 여러분은 선별진료소, 격리병동, 응급실로 달려와 달라.”

의병을 일으키는 격문과도 같은 호소문이다. 그는 “저도 두렵고 불안하기는 매한가지”라면서도 자신이 근무하는 병원에 휴가를 내고 환자들이 밀려 오는 현장으로 달려갔다. 자원봉사를 하겠다는 의료진들도 대구로 집결했다. 2000여명이 쉴 새 없이 환자들을 돌봤다. 전현직 의사와 간호사, 임상병리사까지 다양했고 20대부터 70대까지 있었다. 광주시의사회는 의료지원단을 대구로 보내며 “1980년 5월 고립됐던 광주가 결코 외롭지 않았던 것은 수많은 연대의 손길이 있었기 때문인데 지금은 우리가 빚을 갚아야 할 때”라고 말했다.

돈 잘 벌고 기득권을 고수하는 엘리트 이익집단으로 여겨졌던 의사들이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이렇게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는 모습을 보고 놀랐다는 사람들이 많다. 의료진은 전신방호복을 입고 온몸이 땀에 흠뻑 젖은 채 환자들을 치료했다. 휴일도 없이 일했고 집에도 가지 못하고 병원에서 잠을 잤다. 어떤 의사는 환자를 돌보다 쓰러졌는데, 깨어나서 다시 일했다. 환자들이 쉴 새 없이 밀려드는 한계 상황과 출구가 보이지 않는 캄캄한 터널 속에서 서로를 위로하며 버텼다.

시민들은 의료진에게 음식과 필요한 물품, 손편지 등을 보내며 응원했다. 기초생활수급자인 장애인이 보험을 깨 마련한 돈을 성금으로 내놓았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농민은 손때 묻은 돈을 놓고 갔다. 상가 건물 주인들은 세입자들로부터 임대료를 아예 받지 않거나 깎아줬다. 게스트하우스 주인은 외지에서 온 의료진에게 무료로 방을 내줬다. 시민들은 정부의 방역 정책에 불편과 희생을 감수하며 충실히 따랐다.

마스크를 벗기까지 지난 3년 동안 우리 국민은 이렇게 연대했다. 마침내 터널의 끝이 보인다. 2020년 1월 20일 국내 첫 코로나 확진자가 발견된 이후 지금까지 3000만명 넘게 감염됐고 사망자는 3만3000여명이다. 인구 백만명당 사망자수로는 독일의 3분의 1, 이탈리아의 5분의 1 정도로 세계에서 가장 적은 수준이다. 백신 접종과 자연 감염으로 국민 99%가 항체를 보유했다. 정부의 투명한 정보 공개와 신속한 검사 키트 생산 지원 등은 코로나 극복에 도움이 됐다. 한때 마스크 공급과 백신 수급이 제대로 안 되는 등 일부 시행착오도 있었지만 누가 뭐래도 우리나라는 방역 모범국이다.

IMF 외환위기 당시 국민들이 금 모으기를 했던 것처럼 이번 코로나 위기도 마음과 힘을 모아 이겨냈다. 기초생활수급자가 의료진에게 성금을 보내고, 건물주가 세입자에게 임대료를 깎아 주거나 받지 않고, 광주의 의사들이 대구로 달려간 것처럼 계층과 지역을 넘어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이렇게 함께 연대해 고난을 극복한 경험은 우리 국민들에게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다. 북한의 핵 위협과 경제 침체 등이 우리를 두렵게 하지만 담대하게 헤쳐 나갈수 있는 자신감과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이유다.

신종수 편집인 jssh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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