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로 먹고살기] 우리에겐 성공 경험이 필요하다

국민일보

[글쓰기로 먹고살기] 우리에겐 성공 경험이 필요하다

편성준 작가

입력 2023-02-04 04:02

잘 살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가진 바람일 것이다. 세상에 태어난 이상 누구나 행복하고 싶고 성공적인 삶을 누리고 싶지 않겠는가. 그런데 성공적인 삶이란 무엇일까. 리더십 커뮤니케이션 컨설턴트이자 강연자이기도 한 김호 작가는 ‘나는 이제 싫다고 말하기로 했다’라는 책에서 한국에는 성공에 대한 정형화된 공식이 있다고 말한다. 부자이고 높은 지위를 갖고 있는 부모 밑에서 태어나 초중고 때 상위권 성적을 유지해 명문대에 들어가고 졸업 후엔 대기업에 취직하거나 사시 또는 의사고시를 패스하는 것 등이다. 물론 김 작가도 이런 성공 공식에 절대 찬성할 수 없다는 얘기를 하고 싶어 극단적인 예를 든 것이다. 듣기만 해도 가슴 답답해지는 세속적이고 차별적인 성공 말고 좀 더 평화로운 성공은 없는 것일까.

광고회사를 다닐 때가 생각났다. 한창 열심히 일할 때 경쟁 프레젠테이션에 연거푸 몇 번 떨어지고 나면 그나마 남아 있던 자신감마저 완전히 상실하게 된다. 급기야 ‘나는 바보가 아닐까, 우리 팀은 실패자들의 모임 아닌가’ 하는 의심에 시달린다. 그 상태로 대학교에 가서 카피라이팅 수업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눈빛이 초롱초롱한 광고홍보학과 학생들에게 우수한 광고 캠페인과 카피들을 소개하면서도 속으로는 ‘어제 광고주한테 그렇게 야단을 맞고 업신여김을 당한 내가 오늘 학생들에게 이런 얘기를 해도 되는 걸까?’라는 죄책감에 시달리게 되는 것이다(물론 광고주가 직접 이 바보야, 라고 하진 않는다. 뭐 요즘 바쁜 일 있으신가 봐요? 카피가 별로네… 라고 얘기한다). 그러다가 중요한 피칭에서 한 번 성공하고 나면 태도는 180도 달라진다. 그러면 그렇지! 나는 원래 잘하는 사람이었어…. 참으로 얄팍하지만 우리에게 시시때때로 성공 경험이 꼭 필요한 이유다. 그렇다면 일상생활에서 느낄 수 있는 작은 성공 경험엔 어떤 게 있을까.

내가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을 때 유난히 끌리는 장면이 있다. 그레타 거윅의 ‘작은 아씨들’을 볼 때는 조가 초고를 써서 마룻바닥에 조심스럽게 늘어놓는 장면이 그렇게 스펙터클하고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아무도 원하지 않았지만 자신의 생각을 글로 표현하고 그게 가치 있는 일이라는 걸 최초로 깨닫는 이 장면은 내게 기이한 감동을 안겨 준다. 데이비드 핀처가 만든 화제의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에서도 제일 좋아했던 장면은 워싱턴 헤럴드 기자 조이 반스가 자신의 집에서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밤새워 기사를 작성하던 모습이었다. 브론테 자매 이야기를 다룬 뮤지컬 ‘웨이스티드’는 또 어떤가. 아버지 영향을 받아 어렸을 때부터 잡지를 만들며 놀았던 브론테 자매는 여성들이 글을 쓰기 힘든 1840년대에 시와 소설을 거침없이 써서 출판사에 보냈다. 물론 가명이었지만 그게 도화선이 돼 우리는 샬럿 브론테의 ‘제인 에어’나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 같은 명작을 읽을 수 있게 된 것이다. 테이블 위에 종이를 놓고 미친 듯이 펜으로 글을 써대는 그녀들의 모습은 충분히 아름다웠다.

너는 글을 써서 먹고사는 사람이니까 그런 소리를 하는 거겠지, 라고 항의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쩌면 우리를 가장 가슴 뛰게 하는 건 ‘창조의 불꽃’을 경험하는 순간인지도 모른다. 자신에게 숨어 있던 창조의 불꽃을 잡아내는 것, 그래서 생애 처음 마음에 드는 글을 쓰고 그걸 소리 내어 읽어본 뒤 ‘내가 정말 이 글을 썼단 말이야?’ 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것. 글쓰기 강의를 하면서 가장 좋았던 건 그런 순간을 목격하는 쾌감이었다.

끝으로 ‘타인의 삶’이라는 데뷔작으로 세상을 놀라게 했던 독일 감독 플로리안 헨켈 폰 도너스마르크의 ‘작가 미상’이다. 슬럼프에 빠진 천재 화가 쿠르트는 빈 캔버스를 앞에 두고 아침부터 밤까지 아무것도 그리지 못하다가 그냥 집으로 돌아가곤 하는데 나는 역설적으로 이 장면에서 가장 큰 위로를 받았다. 나 또한 백지나 빈 컴퓨터 화면을 노려보며 하루 종일 아무것도 생산해 내지 못하는 경험을 수도 없이 해봤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쿠르트가 자신만의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는 순간이 온다. 우리가 그토록 바라는 ‘작은 성공’이다.

베스트셀러 작가 채사장은 “인생을 산다는 것은 내적으로 성장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그 내적 성장을 가장 손쉽게 경험할 수 있는 게 바로 글쓰기다. 내 직업이 글쓰기라서 하는 얘기는 절대 아니니 한 번 믿어 보시기 바란다.

편성준 작가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