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 100 번대서 왔는데” 노인 등치는 카파라치 학원

국민일보

“월 100 번대서 왔는데” 노인 등치는 카파라치 학원

빽빽한 계약서 한편에 ‘구입 동의’
뒤늦게 알아차려도 환불 쉽지 않아
눈덩이 피해에도 경찰 단속 어려워

입력 2023-02-07 00:03

70대 여성 A씨는 지난달 중순 한 생활정보지에서 ‘시민안전요원 모집’이라고 적힌 구인 공고를 보고 한 업체를 찾아갔다. 공고에는 ‘쉽고 간단한 일, 현장실습 후 수입 가능’ 등의 내용이 적혀 있었다. A씨는 10여년 전까지 세운상가에서 신발가게를 운영했지만, 가게 문을 닫은 뒤로는 자식들에게 신세를 지고 있다. ‘생활비라도 벌어야겠다’는 생각에 돈벌이에 나선 것이다.

그는 ‘○○능력개발원’이라는 간판을 내건 학원에서 불법 주정차, 쓰레기 무단투기, 무단횡단 현장 등을 몰래 찍어 신고하고 포상금을 받는 이른바 ‘파파라치’(전문신고꾼) 일을 배웠다. 업체가 내민 계약서에도 서명했다. 그런데 작은 글씨가 빽빽하게 적힌 계약서 중간에는 ‘카메라 구입에 동의한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었다. 그는 신용카드로 간이 보디캠 구입비 156만원을 결제해야 했다.

뒤늦게 카메라 구입비가 지나치게 비싸다는 사실을 알고 환불을 요구하러 찾아갔지만 교육장은 텅 비어있었다. A씨는 결국 서울 서부경찰서 한 지구대를 찾아가 “카메라를 환불받을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요청했다. 경찰에 따르면 해당 카메라는 시세보다 5배가량 비싼 가격이었다. 지구대는 환불 절차를 안내받을 수 있도록 그를 경찰서 민원실로 인계했다.

노년층을 상대로 고수익 일자리를 제공한다고 유도한 뒤 비싼 카메라를 사도록 강요하는 ‘파파라치 학원’이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다. 노년층이 이런 종류의 구인 광고에 잘 유인되고, 사후 장비 환불 절차에도 익숙하지 않다는 점을 악용하는 것이다.

6일 서울 영등포구에 있는 해당 개발원 앞에서 만난 신모(78)씨도 카메라 구매를 요구받았다고 했다. 그 역시 A씨가 본 것과 같은 생활정보지 광고를 보고 경기도 안양의 자택에서부터 찾아왔다.

신씨는 지난해 건물 경비 일을 그만두게 되면서 다른 일자리를 찾게 됐다. 그는 “카메라를 구입하면 매달 100만원의 고정 수익이 생길 수 있다는 직원 설명에 혹했지만, 당장 거금을 들여 카메라를 사기 부담스러워 일단 설명만 듣고 나왔다”고 말했다. 학원 앞에서 만난 다른 70대 여성은 “160만원짜리 카메라를 7개월 할부로 살 수 있도록 해준다고 했다. 사진을 찍어 제보만 하면 100만원을 준다고 하니 해볼 만한 것 같다”고 했다.

학원 측은 문제 될 게 없다는 입장이다. 한 관계자는 “일을 그만둘 때 기기를 돌려받아 중고로 판매한 뒤 그 가격만큼 돌려주고 있다”며 “고장나거나 흠집이 많아 중고 판매가 안 되는 경우에만 환불을 해주지 못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카메라가 시세보다 고가라는 지적에 대해선 “교체 및 수리비가 포함돼 있다”고 했다.

경찰 관계자는 “고수익 일자리로 어르신들을 유도해 불공정 거래를 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면서도 “관할인 공정거래위원회를 통해 도움을 받을 수 있게 연결해주고 있지만, 학원 자체가 불법은 아니라 적극적인 단속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양한주 기자 1wee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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