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 정당 민주주의와 대통령의 개입

국민일보

[여의춘추] 정당 민주주의와 대통령의 개입

남도영 논설위원

입력 2023-02-10 04:07

당대표를 선출하는 국민의힘 전당대회가 대통령 마음에 들지 않는 후보 솎아내기로 전락했다. 그러다 보니 정당 민주주의라는 말이 이곳저곳에서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과 측근들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정당 민주주의가 훼손되고 있다”고 말한다. 정당 민주주의는 우리 헌법에 규정된 가치다. 8조 2항에 ‘정당은 그 목적 조직과 활동이 민주적이어야 하며, 국민의 정치적 의사 형성에 참여하는데 필요한 조직을 가져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원론적인 의미에서 정당 민주주의의 핵심은 당의 의사결정이 소수의 권력자가 아닌 당원 전체의 뜻에 따라 이뤄지는 것이다. 이를 위한 당 의사결정 구조와 절차를 마련하고, 견제와 균형, 다양성의 원리가 보장돼야 한다.

국가의 주인이 국민인 것처럼 정당의 주인이 당원인 것은 당연하다. 다만 이상과 현실은 다르다. 정당 민주주의가 정말 가능할까 하는 의문을 가진 학자가 있었다. 독일 정치사회학자 로베르트 미헬스(Robert Michels 1876~1936)가 그런 연구를 했다. 미헬스는 자신이 당원이었던 독일 사회민주당을 포함해 유럽의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의 내부 구조를 연구했다. 그의 결론은 어떤 조직이든 소수의 엘리트에 의한 과두 지배가 필연적이라는 것이었다. ‘과두제의 철칙’이다. 상대적으로 민주적일 것이라고 예상했던 사회민주당도 과두제의 철칙에서 벗어나지 못했는데, 일반적인 대중정당은 말할 것도 없다. 미헬스는 ‘정당 사회학’에서 “선출된 자가 선출한 자를 지배하고, 위임받은 자가 위임한 자를 지배하며, 대의원이 유권자를 지배한다”고 적었다.

이번 국민의힘 전당대회는 미헬스가 의문을 표했던 정당 민주주의의 현실을 보여주는 사례가 될 수도 있겠다. 보수 정당을 표방하는 국민의힘 내부에는 다양한 성향의 세력들이 공존한다. TK 중심의 영남 보수파, 이준석 전 대표로 상징되는 우파 청년층, 유승민 전 의원으로 대표되는 혁신 보수파, 황교안 전 총리로 대표되는 극우 친박 세력, 안철수 의원을 중심으로 한 중도파들도 있다. 이들이 자유롭게 경쟁해 당원의 선택을 호소하는 과정이 전당대회다. 윤 대통령과 측근들은 이 과정에 거칠고 과도하게 개입했다. 이 전 대표를 자리에서 쫓아냈고, 선거 규칙을 바꿔 유 전 의원의 출마를 봉쇄했다. 대통령실과 측근 의원들은 물론 초선의원 수십 명이 나서 나경원 전 의원을 주저앉혔다. 현재는 안 의원을 겨냥한 작업이 진행 중이다. 대통령제 국가에서 여당 전당대회에 미치는 대통령의 영향력이 크다는 점은 인정하더라도 지금 국민의힘 전당대회 풍경이 정상적인 것은 아니다.

요즘 유행하는 챗GPT에 여당 대표 선출에 영향력을 미치려는 대통령의 시도를 평가해보라는 질문을 올렸다. 인공지능(AI)의 답변은 다음과 같았다. “민주적 제도하에서 대표 선출에 대한 최종 결정은 대통령이 아니라 당의 유권자에게 맡겨야 한다. 대통령이 대표 선거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것은 당의 민주적 절차를 훼손하려는 의도로 비칠 수 있고, 대통령의 명예와 정치적 위상을 훼손할 가능성이 있다.” 반박하기 힘든 원론적인 답변이다. AI 답변처럼 대통령이 당대표 선출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것은 부정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낼 가능성이 있다. 이런 부정적인 이미지는 당원들에게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결국 국민에게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기 마련이다. 내년 총선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윤 대통령과 측근들의 시도는 성공할 수 있을까. AI는 “대통령의 정치적 지위의 강함, 여당의 독립성, 당내 민주주의 제도의 강함을 포함한 다양한 요소들에 달려 있다”고 평가했다.

어떤 완벽한 제도도 민주주의를 보장하지 못한다. 중요한 것은 유권자의 현명함이다. 수준 높은 당원을 가진 정당이 수준 높은 정당 민주주의를 구현할 수 있다. 지난달 10일 기준 국민의힘 책임당원은 약 84만명이다. 이들의 선택이 중요해졌다. 윤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일사불란한 당 체제를 완성할 것인가, 아니면 당내 다양성을 인정하고 여당으로서 정부의 강경노선을 견제할 것인가의 선택이다. 어떤 선택이 올바르냐의 문제가 아니다. 윤석열정부 10개월을 자체 평가하고, 집권당이 앞으로 몇 년간 어떤 노선을 선택할 것인가의 문제다. 모든 선거 뒤에는 ‘역시 유권자는 현명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번에도 그럴 것이다.

남도영 논설위원 dy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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