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승욱 칼럼] 윤석열정부의 비상식도 하나씩 쌓인다

국민일보

[고승욱 칼럼] 윤석열정부의 비상식도 하나씩 쌓인다

입력 2023-02-15 04:20

시대·장소에 따라 달라지는
상식을 기치로 건 윤 대통령

정치적 지향점 제시하기보다
지난 5년 비상식 해소에 집중

국민은 지금 정부가 상식적으로
일하는지 묻고 있다

상식(common sense)은 논쟁적인 단어다. 누구는 당연하게 받아들여도 다른 사람에게는 황당한 일인 경우가 허다하다. 과거에는 모두 그렇게 생각했어도 지금은 경악할 사건이 될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왕자가 태어나면 좀처럼 쓰이지 않는 어려운 한자를 찾아 외자로 이름을 지었다. 왕에게 쓰인 글자를 사람이나 동네 이름에 넣어서는 안되는 게 그때의 상식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북한에서 김정은의 딸과 이름이 같은 사람들에게 개명을 강요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일이다. 때와 장소, 상황에 따라 상식은 이렇게 달라진다.

윤석열 대통령이 공정과 상식이라는 깃발을 올렸을 때 많은 사람이 의아해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진영 대립은 극단으로 치닫는데 정치적 견해와 이해의 수준이 전혀 다른 사람들에게서 상식이라는 공통 분모를 어떻게 뽑아낼까라는 의문이 앞섰던 것이다. 2019년 조국 사태 때 서울에는 양립할 수 없는 두 개의 상식이 존재했다. 같은 날, 같은 시간인데도 광화문의 상식은 서초동에서 몰상식이 됐다. 그렇다고 대한민국에 집회·시위의 자유가 있다는 상식이 확인됐다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인류가 공통적으로 받아들이는 가치에 상식이라는 이름을 붙인 건 18세기 자유주의 사상가들이다. 제멋대로 세금을 매기고 불필요한 전쟁을 일삼는 왕에 맞서 치열한 논쟁을 벌였던 런던의 의회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견해를 ‘상식’이라는 신문에 담았다. 미국 독립전쟁과 프랑스혁명 당시 피를 끓게 하는 문장으로 유명했던 토마스 페인이 필라델피아에서 출판한 책 이름도 ‘상식’이었다. 페인을 비롯한 당대 혁명가들에게 자유, 평등, 인권이라는 인류 보편의 가치는 곧 상식이었던 것이다. 그 때문에 21세기를 사는 우리도 상식이라는 말에 시대를 관통하는 이념과 가치가 들어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정작 혁명을 향해 파리 시민들을 움직인 건 빵 한쪽 구하기 힘든 가난과 거들먹거리는 귀족에 대한 분노였다. 더이상 참을 수 없는 비뚤어진 현실을 바꿔야 한다는 절박함이 그들의 상식이었다. 돌이켜보면 그런 비상식적 상황이 만연했던 덕분에 우리가 신봉하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가 상식이라는 이름으로 정의될 수 있었다.

이런 관점에서 윤 대통령이 말하는 상식을 바라보면 그 뜻과 의도를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지난 대선은 문재인정부 5년에 대한 국민의 평가였다. 아파트 값이 계속 오르는 사실을 굳이 부인하며 엉뚱한 해법만 내놓는 국토교통부 장관, 검찰 개혁이라며 사법 원칙을 뒤흔드는 법무부 장관, 북한의 노골적인 적개심을 끝내 외면한 국방부 장관, 반대파를 양산할 개혁 과제는 미뤄둔 채 선량한 이미지만 내세우는 대통령. 이들이 만든 비상식적 상황을 바로잡는 게 윤 대통령의 상식이었다. 그 속에 진영을 아우르는 시대정신을 새겨넣을 필요는 없었다. 당장 처리해야 하는 시급한 현안에 모든 역량을 투입하는 실용주의적 법률가인 윤 대통령에게 딱 들어맞는 슬로건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과거의 비상식을 탓하며 지낼 수는 없다. 상식을 표방한 윤석열정부의 비상식적 행태도 하나씩 쌓이는 중이다. 윤 대통령은 159명이 숨진 이태원 참사를 정치적으로 마무리짓지 못하고 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사퇴라는 쉬운 길을 거부한 탓이다. 헌정 사상 첫 장관 탄핵소추로 이어진 이 사태를 상식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지금 국민의힘은 당대표 선거가 치열하다. SNS 때문인지, 언론의 과도한 관심 탓인지 시시콜콜한 말싸움까지 전 국민이 실시간으로 지켜본다. 그런데 주인공만 바뀐 채 유치원생 말싸움하듯 반복되는 윤심 논란은 상식의 한계를 넘었다. 출범한 지 아직 1년도 안 됐는데 이런 게 하나둘이 아니다.

상식적이지 못한 상황은 분노를 부른다. 그 분노는 고스란히 대통령을 향할 수밖에 없다. 이대로라면 다음 대선에서 야당 후보는 윤석열정부의 비상식을 바로잡겠다는 식의 공약을 내세울 것이 뻔하다. 미국 역사학자 소피아 로젠펠드는 “상식을 상기시키는 사태가 벌어지면 언제나 사회의 한 부류가 다른 부류의 희생을 바탕으로 득을 보게 된다”고 했다(‘상식은 어쩌다 포퓰리즘이 되었는가’, 2021). 소모적 싸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국 정치에 딱 맞는 말이다. 이런 비상식을 먼저 해결하는 게 국민들이 생각하는 상식이다.

고승욱 논설위원 swk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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