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예술 함께 가야… 장애인 소질 찾아 세상과 콜라보”

국민일보

“돌봄·예술 함께 가야… 장애인 소질 찾아 세상과 콜라보”

[일본 장애인예술 지원 현장을 가다] <2> ‘민들레의 집’ 50년
하나아트센터·굿잡!센터·에이블아트재팬

입력 2023-02-19 21:11
일본에서 장애인 예술 운동의 구심점이 돼온 '민들레의 집'(단포포노이에)이 올해 2월 창립 50주년을 맞았다. 1973년 마이니치신문 기자 출신인 창립자 하리마 야스오 이사장이 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와 함께 나라현 나라시에 만들었다. 처음 장애인 공동생활공간으로 출발했지만 점차 돌봄과 예술을 접목하며 생활운동에서 시민문화예술운동으로 바뀌었다.

그 사이 1995년 활동을 펼치는 다른 단체 및 활동가들과 연대해 에이블아트재팬을 설립했고, 2005년 장애인 예술가들이 작업할 수 있는 공간인 하나아트센터를 민들레의 집 부속 건물로 개관했다. 장애인예술작품을 상품화하기 위해 2007년에 에이블아트컴퍼니, 2010년에 '굿잡!센터'를 만들었다. 에이블아트재팬은 관서 지역인 나라현에서 출발한 이 운동을 전국으로 확산하기 위해 후에 도쿄로 진출했다. 지난 50년 간 예술로, 전국으로, 상품화로 뻗어간 현주소를 찾아갔다.

일본 나라현 나라시 니시구 민들레의 집 하나아트센터에서 장애인 예술가 야마노 마사시가 지난달 19일 국민일보와 만나 자신의 작품이 걸린 작업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예술과 돌봄을 결합시킨 장애인들의 예술창작공간 하나아트센터에는 60여명의 장애인들이 입주해서 살거나 출퇴근하며 예술작업을 한다.

나라현 나라시 ‘민들레의집 하나아트센터’

지난 1월 19일 나라시 니시구 로쿠조 민들레의 집과 붙은 하나아트센터. 단아한 주택처럼 보이는 건물 입구에 빈 휠체어가 도열해 이곳의 성격을 한눈에 보여줬다.


이곳을 관장하는 오카베 타로 상무이사는 “50주년 행사 준비로 바쁘다”며 종이 상자로 가득찬 방을 안내했다. 50개 키워드로 지난 역사를 정리하기 위한 50개 상자에는 ‘①누구나 표현하는 사람’ ‘④민들레 운동의 혼’ 등이 제목이 적혀 있었다.

‘민들레’라는 이름은 하리마 이사장이 사회운동은 비장하게 하는 경우가 많지만 우리는 밝은 운동을 하자는 취지에서 지었다고 한다.

예술과 돌봄을 결합시킨 하나아트센터에는 60여명의 장애인들이 입주해서 살거나 출퇴근하며 예술작업을 한다. 각자 특성을 살려 1대1 맞춤 지원을 해주는 것이 특징이다. 오카베 상무는 “이 분은 점을 찍거나 반복해서 붙이는 걸 좋아했다. 이걸 살려줄 아이디어를 계속 고민하며 제안했다”고 말했다. 장애인 예술가 옆에는 색색의 종이를 동그랗게 오려서 붙여서 만든 가방, 염색한 천에 보라색 점을 점점이 찍은 섬유 작업 등이 눈에 들어왔다. 글씨쓰기를 좋아해 글자 형태로 바느질하는 장애 예술가도 눈에 띄었다. 오카베 상무는 “장애 정도가 달라서 재료를 다양하게 써보게 한다. 다른 복지시설이 이걸 그리라고 지시한다면 우리는 각각 가진 소질을 찾아 바깥 세계와 콜라보(협력) 하도록 하는 것이 차이점이 있다”고 말했다. 기다림의 시간을 그들은 감내하는 것이다. 노래를 부르거나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장애인들도 있었지만 이들을 보는 오카베 상무의 태도에는 애정과 배려가 느껴졌다.

글씨와 바느질을 좋아하는 장애인이 바느질로 글씨를 수놓은 장면.

또 다른 공간에서는 이미 자신의 예술세계를 구축한 장애 예술가들이 작업 공간을 하나씩 차지하며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40대 여성 사와이 레이코씨는 20대 시절부터 이곳에서 생활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작품이 책의 표지로 쓰였다며 일어나 기자에게 자랑했다. 역시 40대 남성 야마노 마사시는 회화와 캘리그라피가 인기를 누리며 여러곳에서 전시하는 ‘스타 작가’가 돼 있었다. 성공한 동료를 보며 뒤늦게 예술작업에 뛰어드는 작가도 있다고 귀띔했다.

하나아트센터에서 장애인 예술가가 작업하는 모습.

회화 작가들이 모인 방 옆에는 직물을 활용해 공예 작업을 하는 작가들이 입주해 있었다. 가마를 갖춘 도예방도 있었다. 오카베 상무는 작품을 보관한 수장고로 안내하며 “수장고가 제일 큰 면적을 차지한다. 작품은 판매는 물론 대여도 하는데 기업들의 대여 수요가 많다”고 전했다.

나라현 가시바시 ‘굿잡!센터’

나라현 가시바시 시타다기시에 있는 ‘굿잡!센터’는 장애인 예술가들이 만든 작품의 상품화의 거점이자 장애인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곳이다. 민들레의 집에 비해 상대적으로 경증 장애인이 많다. ‘굿잡’은 좋은 직업이라는 뜻도 있지만 ‘잘했어!’라며 칭찬하는 영어 표현 ‘굿 잡!’(Good job!)을 뜻하는 중의적인 표현이다.

나라현 가시바시 시타다기시의 '굿잡!센터'에서 장애인들이 아트 상품을 제작하는 모습.

2층짜리 환하게 오픈된 구조의 목조 건축물 ‘굿잡!센터’에는 가방, 인형, T셔츠, 앞치마, 꽃병, 공책, 베개 등 다양한 아트상품이 있었다. 상품을 진열된 곳을 지나니 안쪽에 작업실이 있었다. 발달장애 혹은 정신 장애를 겪는 장애인들이 삼삼오오 나뉘어 아트 상품을 제작 중이었다. 호랑이 인형이나 도예 작품에 색칠을 하고 있었다. 또 목공 기술이 없는 장애인의 경우 나무 제품에 두드리기를 하며 무늬를 내고 있었다. 완성된 제품을 SNS에 올리기 위해 사진을 찍거나 이곳에서 운영하는 카페에서 서빙하는 일을 하는 이도 있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걸 찾아서 하게 한다는 민들레의 집 철학은 이곳에서도 관통하고 있었다. 이들은 시급으로 임금을 받으며 기본급 외에 상품이 팔렸을 경우 인센티브도 있다. 고용된 장애인들은 총 50명으로 근무 일수가 주 3일, 주 5일 등 다르다. 하루 오는 인원은 25명이 넘지 않게 조정하며 하루 5.5시간 일한다고 한다.


후지 요시히데 부대표는 “에이블아트컴퍼니를 통해 아트 상품화는 진행했는데, 독지가가 부지를 기증하면서 이곳에 건물을 신축해 굿잡센터가 출범했다”고 말했다. 당시 장애인들의 자립문제가 이슈로 대두했고, 일자리를 제공해 장애인들의 사회적 참여를 독려하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졌다고 부연했다.

상품 개발을 위해 대학 미대 디자인 학과와 접촉했고, 3D프린트 같은 디지털제조 기술을 활용했다. 또 제대로 상품을 만드는 큰 회사들을 접촉했는데, 이들이 확실한 판매 경로가 있기 때문이었다. 요즘은 인터넷으로 소량으로 팔수 있어서 복지시설도 스스로 상품화해 소량 인터넷 판매한다. 후지 부대표는 “장애인 아트 상품화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소비패턴의 변화도 한몫했다. 젊은층을 중심으로 대량 생산된 상품이 아니라 나만 아는, 또 가치 중심의 소비로 바뀌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곳에서는 전국 130곳 복지시설에서 만든 장애인아트상품을 하나의 브랜드로 만들어서 전시하고 홍보하며 판매한다. 직판도 하지만 도매 역할에 가깝다.

도쿄 ‘에이블아트재팬’

장애인아트의 상품화 과정에 대한 상세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시바사키 유미코 에이블아트재팬 대표를 지난 1월 18일 도쿄 사무소가 있는 도쿄 치요다구 소토칸다 ‘아트치요다3331’에서 만났다.


시바사키 대표는 “에이블아트컴퍼니가 설립된 2007년부터 본격적으로 했는데, 3년 노력한 결과 어느 수준에 올랐다”며 “도요타 등 대형 기업 고객을 설득하기 위해 캠페인을 했고, 백화점에서 아트 상품을 홍보하는 순회전시를 하기도 했다. 또 언론에 홍보 기사를 집중적으로 내보냈다”고 전했다. 이어 “일본 기업에서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운동이 대두되며 그 흐름을 탄 것도 운이었다. 기업 입장에서는 ESG경영을 보여주는 지표가 필요했기에 장애인아트상품에 대한 수요가 증가했다”고 강조했다.

코로나 이후에는 온라인 활동에 역점을 뒀다. 그는 “2020년 올림픽과 패럴림픽이 코로나로 연기되면서 패럴림픽만 보고 질주해온 비영리기구(NPO) 등이 큰 충격을 받았다. 대형 야외 행사 자체가 취소됐기 때문이다. 긴급 설문조사를 실시했고 그 결과 활동을 온라인으로 전환했다. 예컨대 인형극을 온라인에서 하는등 다양한 시도를 했다. 시각장애인을 위해 말로 설명을 듣는 온라인 감상을 제공했다. 우리는 ‘살기 위해서’ 그런 일을 찾아서 했다. 장애인뿐 아니라 입원환자, 은둔형 히키코모리 등 다양한 사회적 약자로 대상을 넓히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의 장애인 정책에 대한 의견을 묻자 “한국은 복지와 예술이 분리돼 있다. 저는 하리마씨가 신념을 갖고 평생을 바쳐 캠페인을 하는 걸 보고 감동했다. 한국에도 이런 분이 있는 환경이라면 창의성 있는 젊은이들이 합류하지 않겠나. 한국인들이 이곳을 자주 방문한다. 그런데 그들 사이에서 네트워킹이 안돼 있더라. 왜 각자 따로 하는지 모르겠다. 정부가 주관을 해서 네트워킹을 하는 구심점을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도쿄·나라=글·사진 손영옥 문화전문기자 yosohn@kmib.co.kr

많이 본 기사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