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논단] 인구절벽, 인구지진, 국가소멸

국민일보

[국민논단] 인구절벽, 인구지진, 국가소멸

송재소(성균관대 명예교수·퇴계학연구원장)

입력 2023-02-20 04:03

‘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지금 젊은 사람들은 잘 모르겠지만 1970년대까지만 해도 흔히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던 표어다. 산아 제한을 하자는 표어인데 이런 표어가 나온 것은 식량난 때문이었다. 당시 국가에서는 식량난에 대비해 혼식, 분식을 장려하는 등 쌀 소비를 줄이기 위한 대대적인 캠페인을 펼쳤다. 초중등학교에서는 매일 학생들의 도시락을 검사해 혼식, 분식 여부를 상부에 보고했다. 쌀 소비를 권장하고 있는 현시점에서 돌이켜보면 격세지감이 드는 현상이었지만 그때는 식량 생산량에 비해 인구가 너무 많았던 것이다. 그래서 당국은 출산율을 줄이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했으니, 예비군 훈련장에서 희망자에게 정관수술을 무료로 해주고 훈련까지 면제해주는 일도 있었다.

지금은 이 같은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다. 15세에서 49세까지 가임기 여성이 평생 낳는 자녀 수를 가리키는 합계출산율이 1960년대에 6.0이던 것이 강력한 산아 제한 정책으로 1975년에는 3.47로 줄었다. 그러다 2000년의 1.48을 거쳐 2018년에는 0.98로 떨어져 인구는 2020년에 정점을 찍은 후 감소세에 들어섰다. 미국 경제학자 해리 덴트가 말한 ‘인구절벽’이 시작된 것이다. 급기야 2022년에는 0.81까지 떨어졌다. 세계 236개 국가 중 끝에서 두 번째다. 한 국가의 인구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합계출산율이 2.1은 돼야 하는데 급격히 떨어졌다.

출산율 감소와 함께 노인 인구 비율은 빠른 속도로 높아졌다.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7% 이상이면 고령화사회라 하는데 한국은 2000년에 이미 이 단계를 넘어서 2018년에는 65세 이상이 전체의 14%를 차지하는 고령사회에 진입했다. 이런 속도라면 2025년쯤에는 노인 인구가 20%를 넘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2030년에는 노령 인구가 25%, 2060년에는 43.9%에 달해 15세에서 64세까지의 생산가능인구 48%와 거의 맞먹게 된다.

출산율 감소와 노인 인구 증가가 이런 속도로 지속된다면 한국은 머지않아 ‘인구지진’ 사태를 맞게 될 것이다. 인구지진은 영국 인구학자 폴 윌리스가 제시한 개념으로 고령 인구가 생산인구보다 많아져 사회에 전반적인 충격을 불러오는 현상을 자연재해에 비유한 말이다. 심한 경우 인구지진은 리히터 규모 9.0의 지진과 맞먹을 정도의 위력을 가진다고 한다. 이와 같이 가공할 만한 인구지진을 겪은 국가는 더이상 버틸 수 없어 ‘국가소멸’의 위기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인구 감소세에 접어든 한국은 인구절벽의 징후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소아청소년과, 산부인과 병원이 줄어들고 산후 조리원이나 유치원은 노인들을 위한 요양(병)원으로 개조되고 있다. 병아리 같은 새싹들이 재잘거리던 유치원이 우중충한 노인 시설로 개조되는 걸 보노라면 만감이 교차한다. 결혼을 기피하는 젊은이들이 늘고, 결혼하더라도 자녀를 갖지 않는 부부가 많아서 이래저래 출산율이 줄어드는 것이다. 출산율 저하로 인한 초등학교의 잇따른 폐교는 너무나 가슴 아프다. 2023년에 신입생이 한 명도 없는 초등학교가 전국에 147곳이라고 한다. 이 학교들도 머지않아 폐교될 것이다.

낮은 출산율이 인구절벽으로 이어지고 인구절벽이 심화되면 인구지진이 일어나서 최종적으로 국가가 소멸되는데 국가의 소멸에 앞서 이를 예고하는 현상이 지방의 소멸이다. 2017년의 경우 지방자치단체 234곳 중 12곳이 소멸 고위험 지역으로 분류됐다. 2047년에는 소멸 고위험 지역이 157곳, 2067년에는 290곳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렇게 해서 서서히 국가가 소멸해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느 정치가의 말처럼 ‘저출산은 소리 없이 나라를 죽이는 암’이다. 암이 더 번지기 전에 이를 막아야 한다. 우리 정부는 2006년부터 2020년까지 저출산 대책을 위한 예산 380조원을 투입했으나 아무런 성과가 없다. 좀 더 적극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깊이 생각하면 방법이 없지 않을 것이다. 심각한 저출산으로 위기에 몰렸던 프랑스가 2021년 합계출산율을 1.83으로 끌어올린 사실은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다. ‘한국은 소멸 국가 1호가 될 것’이라는 영국 옥스퍼드대 인구문제연구소 데이비드 콜먼 교수의 경고를 귀담아들어야 할 것이다.

송재소(성균관대 명예교수·퇴계학연구원장)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