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의대 쏠림 현상이 말해주는 한국 사회의 암울한 미래

국민일보

[사설] 의대 쏠림 현상이 말해주는 한국 사회의 암울한 미래

입력 2023-02-20 04:03
2023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일인 지난해 11월 17일 오전 대구 수성구 대륜고등학교 시험장에서 수험생들이 시험 준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의 올해 정시모집 합격자 중 약 30%(1343명)가 등록을 포기했다. 자연계열이 가장 많고, 이과 수험생의 교차지원이 이뤄진 인문계열도 작년보다 크게 늘었다. 의학계열에 복수지원해 합격한 이들이 대거 빠져나간 결과라고 한다. 거꾸로 의학계열 등록 포기자는 해마다 줄어들고 있다. 몇 년 새 부쩍 커진 의대 쏠림 현상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는 것이다.

의대 선호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최근 양상은 어느 때보다 심각해 ‘의대 블랙홀’이란 말까지 나왔다. 특히 이공계 인재들이 그 블랙홀에 빨려들고 있다. 국가 차원에서 인재 양성에 나선 반도체 학과조차 삼성전자 같은 대기업 취직이 보장되는데도 올해 연세대와 고려대 1차 합격자 전원이 등록을 포기했다. 카이스트 등 과학기술 특성화 대학 4곳에서 최근 5년간 자퇴생 1000여명이 나왔는데, 80% 이상이 재수·반수를 통해 의대에 간 것으로 추정된다. 이공계 인재를 키우려 설립한 영재고도 의대 진학률이 너무 높아 교육 당국이 골머리를 앓는 중이다. 4차 산업혁명를 비롯해 과학기술 인재 확보가 절박한 현실과 정반대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학원가에는 초등학생 때부터 의대 입시를 준비하는 ‘초등 의대반’까지 등장했다. “어려서부터 하지 않으면 의대에 갈 수 없다”는 학원들의 ‘불안 마케팅’이 통할 만큼 의대 열풍의 배경에는 불안심리가 깔려 있다. 1990년대 이후 여러 차례 경제 위기를 겪으며 높아져온 고소득 자격증 선호도, 몇 해 전부터 급격히 둔화된 경제 성장에 한층 커진 미래 불확실성, 의대 정원이 18년간 동결되면서 한껏 높아진 의사 직종의 안정성과 수익성이 맞물린 결과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미래가 불안해서 너도나도 실패 위험이 가장 낮은 선택지에 매달리고 있는 것이다.

의대 쏠림 현상은 인적자원 불균형 문제를 넘어 사회의 활력과 결부된 사안이 됐다. 한국 사회가 도전을 꺼리고 실패를 두려워하게 됐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런 분위기가 계속된다면, 숨 가쁘게 변화하는 과학기술의 시대에 대처할 수 없고, 혁신적 사고를 가진 이들이 인류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낼 미래에 대비할 수 없다. 한두 가지 제도를 뜯어고쳐 해결될 일이 아니다. 국가적 미래 전략을 세우는 차원에서 바라봐야 해법이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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