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동철 칼럼] 대중교통 월 3만원 프리패스제, 망상일까

국민일보

[라동철 칼럼] 대중교통 월 3만원 프리패스제, 망상일까

입력 2023-02-22 04:20

전기·도시가스 등 공공요금
잇단 인상… 고물가 흐름으로
서민 가계 부담 가중 우려

올라도 이용 줄이기 어렵고
에너지 절감, 교통 혼잡 완화,
환경 개선 효과 큰 대중교통에
수익자 부담 원칙 적용은 무리

교통복지 늘리고 기후변화에
대응하려면 시내버스·지하철
이용자에 대한 지원 과감하게
확대하는 발상의 전환 필요

공공요금이 줄줄이 오르거나 인상이 예고돼 있어 가계 부담이 커지고 있다. 전기·도시가스는 불필요한 사용을 줄이면 요금 인상의 충격을 덜 수 있겠지만 대중교통은 이용을 줄이기 어려워 부담이 더 클 수밖에 없다. 중앙정부의 요청에 부응해 서울시가 오는 4월로 예고했던 버스·지하철 요금 인상을 미뤘지만 하반기까지 시간을 벌었을 뿐이다.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 5년(2018~2022년)간 적자 규모가 지하철은 연평균 9200억원, 버스는 5400억원이다. 각종 물가와 인건비는 오르는데 요금은 2016년 5월 인상 이후 그대로이니 대규모 적자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여서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게 서울시의 입장이다. 당초 계획대로 기본요금을 300~400원 올리면 대중교통을 이용해 출퇴근하는 시민의 교통비는 주5일 근무 기준으로도 최소 월 1만2000~1만6000원 늘어나게 된다. 적자를 줄이는 데는 도움이 되겠지만 그게 바람직한 방향일까.

수익자 부담 원칙에 고개를 끄덕이는 이들이 많을 테지만 대중교통에도 이를 적용하는 건 신중할 필요가 있다. 대중교통은 주로 서민들이 이용하는 교통수단인 데다 수송분담률이 높아질수록 에너지 절감, 교통 혼잡 완화, 환경 오염원 배출 감소 등 여러 가지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용자 부담을 덜어주는 정책을 통해 이용을 활성화하는 게 가야 할 방향이다.

해외에서도 서민의 교통비 부담을 줄이고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획기적인 대중교통 유인 정책을 도입하는 국가와 도시들이 늘고 있다. 독일은 오는 5월 1일부터 월 49유로(약 6만7000원)에 대중교통을 무제한 이용할 수 있는 정기권을 도입하기로 했다. 현재 베를린에서 한 달을 이용할 수 있는 정기권(86유로·약 11만8000원)보다 40% 이상 낮은 가격이다. 에너지 가격이 폭등하던 지난해 5~8월 한시적으로 시행했던 9유로(약 1만2000원) 티켓이 자가용 이용과 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효과를 거두고 호응하는 시민들이 많자 49유로 티켓을 상시 운영키로 한 것이다. 오스트리아는 1095유로(약 151만원)에 1년 동안 자국 내 모든 대중교통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클라이마티켓(기후이용권)을 도입했다. 프랑스의 소도시 됭케르크는 2018년부터 대중교통을 무료 운영하고 있다. 미국도 미주리주 캔자스시티와 워싱턴주 등 일부 지역에서 무료화를 준비 중이다. 국내에서도 이런 움직임이 확산되는 추세다. 경북 청송군이 지난달부터 지역 농어촌버스를 무료로 운행하기 시작했고, 세종시도 2025년 1월 시행을 목표로 시내버스 요금 전면 무료화를 추진하고 있다.

이들 국가나 지자체가 대중교통 이용자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는 것은 세금이 들어가더라도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게다. 국민들 사이에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있다면 경제 논리, 수익자 부담 원칙이 금과옥조일 수는 없다. 초·중·고 무상교육과 무상급식, 65세 이상 고령자의 노후를 지원하는 기초연금도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는 제도지만 큰 진통 없이 자리를 잡지 않았나.

유럽과 북미 국가들 중에는 대중교통 운영에 필요한 경비의 50% 이상을 재정으로 부담하는 곳이 적지 않다. 미국 뉴욕시만 봐도 전체 비용에서 요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42% 정도다. 예산 지원엔 소극적이고 요금 인상으로 적자 폭을 줄이겠다는 것은 대중교통에 대한 공공의 책임을 외면하는 것이다.

정의당이 추진하는 대중교통 월 3만원 프리패스제(무제한 이용권)도 그런 차원에서 검토될 필요가 있다. 재정 여건상 가능하냐는 의문이 들 텐데, 정의당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연간 서울 1조5785억원, 경기 1238억원, 경남 981억원 등 전국적으로 4조635억원이 필요한데 교통시설특별회계(2021년 21조원)를 공공교통특별회계로 전환해 재원으로 활용하면 된다는 것이다. 자가용 이용자에게나 혜택이 돌아가는 유류세 감면, 자동차 개별소비세 감면 등에 쓰일 예산을 줄이는 방안도 제시했다. 2021년 11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유류세 감면 규모만 8조원이었다. 빚에 크게 의존하지 않고도 가능하다면 도입을 꺼릴 이유가 없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과감한 대중교통에 대한 지원 확대로 생활비 부담, 기후, 도로 혼잡을 모두 잡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했다. 공감한다. 월 3만원 프리패스제에 대한 생산적 논의가 확산되길 기대한다.

라동철 논설위원 rdchu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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