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수 칼럼] 체포동의안 부결 이후

국민일보

[신종수 칼럼] 체포동의안 부결 이후

입력 2023-02-28 04:20

여야 싸움과 법정 다툼 격화 국민들 피로감 더욱 커질 듯
민주당도 살고 이재명도 사는 길 가라는 권노갑의 조언
강성 지지자 아닌 국민 다수 뜻 중시하는 정치 보고 싶다

더불어민주당 권노갑 상임고문은 1930년생으로 올해 만 93세다. 민주당 당직자 가운데 최고령이다. 주변에 따르고 모시려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다. 요즘 일주일에 나흘 정도 골프를 친다. 지난해에는 지역을 옮겨 다니며 연속 8일 라운딩한 적도 있다. 드라이버 비거리는 잘 맞으면 235야드 정도이고 90타 정도를 친다. 자기 나이의 타수를 칠 수 있는 이른바 에이지 슈터다. 수십 년 전부터 당뇨가 있었지만 수치도 정상이다. 피트니스센터에서 근력 운동도 하고 있다. 탄수화물은 먹지 않고 단백질과 야채 위주로 식사를 한다. 기억력이나 판단력 등에도 문제가 없다.

권 고문이 최근 모처럼 공개적인 발언을 했다. 상임고문들과 함께 이재명 대표를 만난 자리에서다. “앞으로 체포동의안이 오면 떳떳하고 당당하게 당대표로서 책임 있는 행동을, 솔선수범하는 선당후사의 정신을 발휘해줬으면 한다.” 이번에는 이 대표가 당내 의원들을 설득해 체포동의안을 부결시켰지만 다음에는 그러지 말라는 얘기다. 권 고문은 또 “저도 온갖 고난과 시련을 겪은 사람으로서 현재 이 대표가 처한 고충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그러나 이 대표에게 부탁하고 싶은 건 역사에 길이길이 이어 나갈 수 있는 민주당 전통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동교동계 좌장으로서 평생 김대중 전 대통령을 모셨던 그다. DJ가 누구인가. 군사정권 시절 부당한 정치 탄압으로 인해 감옥은 물론, 납치돼 죽을 뻔하고 사형선고까지 받았던 사람이다. 열렬 지지자들이 많았지만 지지자들에게 갇혀있지 않고 국민 다수의 뜻과 대의명분을 중시했다. 권 고문 또한 온갖 고문을 받고 구속되기도 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헌정 사상 50년 만에 수평적 정권교체를 하고 노무현정부로 이어지는 정권 재창출을 했던 민주당의 역사와 전통을 권 고문은 거듭 강조했다. 권 고문의 발언은 공개석상에서 그나마 절제해서 한 발언이다. 비공개 회의에서는 더 진솔한 얘기를 했다고 한다.

체포동의안 부결 뒤에 숨지 말고 당당히 법원에 나가 판사에게 하고 싶은 얘기를 하라는 것이다. 그래야 민주당도 살고 이 대표도 산다는 얘기다. 법원의 영장실질심사에서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 부당성이 입증되면 좋고, 안 되면 당대표답게 구속되는 것도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이다. DJ는 억울하게 감옥까지 갔다 왔는데, 그리 억울할 것도 없어 보이는 이 대표가 영장실질심사조차 이리 피하고 저리 피하는 모습은 국민 다수가 보기에 좋지 않다는 의미다.

이 대표 체포동의안이 27일 부결됐다. 부결 이후의 정국이 얼마나 혼란스러울지 짐작된다. 검찰은 다른 건으로 구속영장을 또 청구하고 민주당은 이 대표의 뜻에 따라 또 체포동의안 부결 처리를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 검찰은 이 대표를 불구속으로라도 기소하고 법정에서 지루한 다툼이 이어질 것이다.

민주당 의원 상당수는 ‘개딸’을 비롯한 이 대표 강성 지지자들 눈치도 봐야 되고 내년 4월 총선 공천도 받아야 해서 가만히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는 불구속 기소가 된다 해도 대표직을 사퇴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서 밀리면 끝이라며 버텼던 조국 사태와 비슷한 상황이 벌어질 조짐이다.

하지만 민주당 지지율이 계속 떨어지면 민주당 의원들이 마냥 가만 있을리 없다. 공천을 받아봤자 총선에서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되면 당내 투쟁을 시작할 가능성이 있다. 의원들에게는 배지 다는 것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결국 이 대표 체제 지속 여부는 민주당 지지율에 달려 있다. 민주당 지지율이 낮을 경우 총선이 가까워질수록 당내에서 이 대표 사퇴 요구가 많아질 것이다. 물론 총선은 절대 평가가 아니라 상대 평가다. 이 대표 사법 리스크보다 윤석열정부 실정이 더 커서 민주당 지지율이 국민의힘보다 뒤지지 않을 경우 이 대표 중심으로 총선을 치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상대당을 흠집 내려는 여야 싸움이 격화될 수 밖에 없다.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은 피곤하고 최선이 아니라 차악을 선택하는 선거가 될 우려가 있다.

언제부턴가 한국 정치에서 감동이 사라졌다. 희생하거나 감내하거나 결단하는 큰 정치가 없다. 이 대표가 권 고문의 조언을 받아들여 이 대표도 살고 당도 사는 결단을 내릴 수 있을까. 강성 지지자보다 국민 다수의 뜻을 존중했던 과거 민주당의 전통을 회복할 수 있을까.

신종수 편집인 jssh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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