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자·장애인 드나드는 ‘마음의 방’… 그들의 목소리 작품으로

국민일보

노숙자·장애인 드나드는 ‘마음의 방’… 그들의 목소리 작품으로

[일본 장애인예술 지원 현장을 가다] <4·끝>
카마가사키예술대학 ‘코코룸’ 운영자 우에다 카나요씨

입력 2023-03-05 17:54 수정 2023-03-05 22:14
지난 1월 19일 일본 오사카시 니시나리쿠(區)의 카마가사키에 있는 커뮤니티 공간 코코룸 앞을 주민이 지나가고 있다. 오사카=손영옥 문화전문기자

지난 1월 19일 일본 오사카시 변두리 지역인 니시나리쿠(區) 카마가사키. 가라오케가 즐비한 골목에 작은 카페가 있었다. ‘Cafe(카페)’라고 적힌 영문 입간판 뒤로 중고 의류가 줄줄이 걸려 있었다. ‘Cocoroom(코코룸)’이라는 영어 간판 아래 ‘카마가사키예술대학’라고 한자로 적힌 간판이 부착돼 있었다. 공간의 정체성이 헷갈리는 코코룸을 운영하는 우에다 카나요(53·아래 사진)씨를 만났다.


우에다씨는 “무늬만 카페다. 다양한 사람들이 오다가다 커피를 마시려 편안하게 들어올 수 있도록 하는 장치”라고 입간판을 놓은 이유를 설명했다. 또 중고 의류에 대해서는 “기부자들이 보낸 것”이라며 “코로나19 이후 일본 사회에서 심플 라이프가 트렌드가 되면서 입지 않는 옷을 우리 카페로 보낸다”고 말했다. 코코룸이 위치한 카마가사키는 오사카시에서도 변두리 중의 변두리다. 그는 “이곳은 오사카시의 슬럼가다. 노숙자 중에 이곳 니시나리쿠 출신이 많다고 할 정도”라고 설명했다. 인터뷰 중에도 한때 노숙자였다는 단골손님이 카페 안으로 들어서며 인사를 한다.

시인인 우에다씨는 광고회사에서 카피라이터로 일했다. 버블경제가 무너지며 말(카피)로 마케팅하는 시대도 끝났다고 판단한 우에다씨는 9년 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요리를 배웠다. 1년 후 나라현 요시노의 명승지에 있는 호텔에 취직했지만 사람들이 드문 외딴 곳에서의 생활은 견디기 힘들었다. 4개월 만에 그만뒀다. “말과 관련된 일”을 다시 갖고 싶다는 욕구가 생겼고, 다시 10년 전부터 취미로 해오던 시 쓰기와 낭송 워크숍을 진행했다. 그 무렵 일본에서 낭송 붐이 일면서 우에다씨 주변으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어느 날 한 청년이 시 쓰는 일을 업으로 삼고 싶다며 의논해왔다. 우에다씨는 시인으로 생계를 유지하기는 무리라고 생각해 답장을 하지 않았다. 그로부터 일주일 후 그 청년이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는 소식을 뒤늦게 전해 들었다. 자책에 빠진 우에다씨는 시집을 팔아서 먹고 사는 일 말고는 없을까, 말과 관련된 진정한 일은 뭘까 고민했다. 2003년, 뜻하지 않게 기회가 왔다.

우에다씨는 32세이던 2001년부터 오사카시에서 발행되던 문화예술 전문지에 칼럼을 연재해 왔다. 연재 3년 차에 오사카시로부터 비어있는 중국집 자리를 예술 공간으로 운영해보라는 제안을 받았다. 오사카시는 미디어아트, 현대음악, 현대무용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현대예술 거점 사업을 진행하던 중이었다. 그렇게 해서 ‘마음(코코로)의 방’을 뜻하는 카페 코코룸을 운영하게 됐다.

“시민이 낸 세금을 허투루 쓰서는 안 되겠다 싶더라고요. 조금이라도 재정에 도움이 돼야겠다는 생각에 카페처럼 꾸미고 말을 쓰는 커뮤니티 공간, 특히 청년들이 교류하는 장소로 만들자고 생각했습니다.”

10년 간 약속 받은 재정 지원은 시장이 바뀌면서 5년 만에 중단됐다. 2008년 임대료가 더 싼 지역을 찾아 이곳 니시나리쿠로 옮겨왔다. 재정 자립을 위해 지금은 게스트하우스도 운영한다.

이곳에서는 서예, 말하기, 수다 떨기, 편지쓰기 등 말과 관련된 다양한 이벤트를 벌인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표현할 권리가 있고 그걸 도와주는 이가 필요합니다. 그들을 도와주면서 저도 용기와 위안을 얻습니다. 사회적 약자들은 너무 힘겹게 살아왔기 때문에 내부에 있는 목소리를 글과 그림을 표현할 때 일반 사람들은 생각하지 못한 것들이 분출해 오히려 감동을 줍니다.”

노숙자, 장애인, 생활보호대상자, 불법체류자 등 사회적 약자들이 이곳을 주로 찾는다. 시민활동가들도 온다. “장애인들은 복지시설에만 갑니다. 같은 장애인들만 만나게 됩니다. 이곳에서는 다양한 모든 사람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코코룸을 유명하게 만든 건 2012년부터 시작한 ‘가마카사키예술대학’이다. 동네 어르신이 연로해 이곳을 더 이상 방문하기 힘들게 되자 역발상으로 그 할아버지가 사는 동네로 가서 출장 강좌를 연 것이 계기가 됐다. 10군데 장소를 빌려서 천문학, 예술, 만담, 가부키 등 다양한 강좌를 한다. 또 동네 주민들을 강사로 모시고 우물 파기, 줄인형 만들기, 노숙자용 휴대용 집 만들기 등의 강좌도 했다. “소문이 나면서 신간센을 타고 오는 수강생도 있습니다. 일종의 시민대학이 됐습니다.”

코코룸 운영자 우에다 카나요씨는 주민 대상 강좌 프로그램인 ‘카마가사키예술대학’도 개설했다. 2014년 카마가사키예술대학이 요코하마 트리엔날레에 초대받았을 때 작품을 전시한 모습. 코로룸 제공

‘가마카사키예술대학’은 2014년 요코하마 트리엔날레에 초청받았다. 총감독을 맡은 모리무라 야스마사가 작품 제작을 위해 2007년 가마가사키 지역을 찾았을 때 우에다씨가 코디네이터로 일한 인연이 계기가 됐다. 모리무라는 가마가사키예술대학에서 예술 강좌를 맡기도 했다. 요코하마 트리에날레에는 미술 교육은 전혀 배우지 못한 주민들이 쓴 글씨와 그림이 걸렸다. 삶이 고달팠던 그들이 쓰는 글씨와 그림에는 보통 사람의 그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에너지가 있다. 이후 여러 미술관에서 이들의 작품을 전시에 초대하고 있다.

오사카= 손영옥 문화전문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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