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모스 플라워’ 그 작가… 무라카미가 그린 좀비 미학

국민일보

‘코스모스 플라워’ 그 작가… 무라카미가 그린 좀비 미학

부산서 국내 최대 규모 회고전

입력 2023-03-05 17:54 수정 2023-03-05 22:14
무라카미 다카시가 대학원 시절인 그린 회화 ‘원전도’(1988·위 사진)와 비교적 최근에 그린 ‘스파클/생각이 태어나는 순간’(2014)을 구경하는 관람객들. 두 그림은 형식은 다르지만 인간이 겪는 재난 문제가 작가 인생 초기부터 현재까지 무라카미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주제임을 보여준다.

지난달 28일 찾은 부산시 해운대구 부산시립미술관은 자녀들의 봄 방학을 맞은 가족 단위 손님으로 북적였다. ‘무라카미 다카시: 무라카미 좀비’라는 제목의 이 전시는 세계적인 일본의 팝아트 작가 무라카미 다카시의 국내 최대 규모 회고전이다. 대중에게 한 번도 공개된 적 없는 초기작부터 회화, 대형조각, 설치, 영상 등 최근작까지 160여점을 소개하는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그럼에도 부산시의 전폭적인 예산 지원 덕분에 전시는 무료다.

전시는 1990년대 탄생시킨 ‘미스터 도브’(DOB·생쥐 캐릭터를 알파벳 DOB를 써서 형상화)와 ‘코스모스 플라워’ 등 국제적 명성을 안겨준 시그니처 캐릭터로 인해 귀여운 이미지를 파는 상업성 짙은 작가로 각인돼온 무라카미의 이미지를 변신시켰다. 작가는 재난이 만들어낸 부작용의 결과로 탄생한 좀비 미학을 극한까지 밀어붙이며 흉물 좀비로 변신한 자조상까지 등장시켰다.

관람객들은 전시 도입부에서부터 도브를 변주한 탄탄보 캐릭터를 등장시킨 대형 회화 앞에서 인증샷을 찍느라 부산했다. 동양화의 두루마리 그림을 연상시키는 가로 15m 대작에는 해체하고 변형시켜 좀비처럼 되어가는 도브가 용처럼, 혹은 해파리처럼 기괴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전시는 무라카미의 좀비 미학 키워드를 귀여움, 기괴함, 덧없음 세 가지로 나눠 보여준다. 마지막 덧없음 코너에서 이질감이 느껴지는 회화 한 점이 발길을 붙잡았다. ‘원전도’(1988)라고 제목이 붙여진 이 회화는 하루키가 일본화과 대학원 재학시절에 그린 작품이다. 멀리 검은 연기를 쏟아내는 원전을 배경으로 서 있는 세 남자를 세기말적인 분위기로 묘사했다.

패션 명품 루이비통과 협업한 모노그램 때문에 가장 상업적으로 성공한 팝아트 작가로 인식되는 무라카미의 첫 출발이 이런 표현주의적 기법의 사회성 짙은 회화였다는 사실은 놀라웠다. 그가 애니메이션에서 차용한 현재의 스타일을 탄생시키기까지 얼마나 고심해왔는지를 이 작품 한 점이 대변하는 것 같았다.

10대 시절 ‘은하철도 999’ ‘미래소년 코난’ 등 만화와 애니메이션에 빠졌던 무라카미는 애니메이션을 하고 싶었으나 현실적인 이유로 도쿄예술대학에서 일본화를 전공했다. 결국에는 90년대 들어 자신이 사랑한 하위문화를 차용한 ‘미스터 도브’와 코스모스에서 딴 ‘무라카미 플라워’를 탄생시킨 것이다. 시에는 병풍과 두루마리, 용이나 지옥도 등 전통 동양화의 형식과 소재를 차용한 신작들이 대거 나왔다. 대중문화와 고급문화의 경계를 허무는 것에서 나아가 전통과 현대의 경계를 허물며 지속적으로 변신하는 무라카미의 진면목을 볼 수 있다. 12일까지.

부산=글·사진 손영옥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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