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능력·정서 발달 저해” vs “이중언어 구사, 모국어 저하 증거없다” [이슈&탐사]

국민일보

“한국어 능력·정서 발달 저해” vs “이중언어 구사, 모국어 저하 증거없다” [이슈&탐사]

유아 영어교육 찬반 논쟁
“과도한 주입식엔 부정적” 이견없어

입력 2023-03-07 04:05
게티이미지

유아의 영어 조기교육을 둘러싼 오랜 논쟁 가운데 하나는 “이른 영어교육이 모국어 능력 발달 등에 좋지 않은 영향을 주느냐”의 여부다. 지나친 교육이 한국어 능력과 정서 발달을 저해할 수 있다는 이론은 폭넓게 받아들여져 왔다. 반면 단일언어 환경의 아동이나 이중언어 환경의 아동이나 유의미한 모국어 능력 차이는 발견되지 않았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너무 이른 나이의 과도한 주입식 교육이 좋지만은 않다”는 진단은 공통적이다.

‘언어 획득 기제’가 있는 유아는 14세 이후의 청소년보다 언어 습득 능력이 뛰어나다고 알려져 있다. 학계는 이 이론을 이제 일반적으로 받아들인다. 다만 외국어 학습이 모국어 능력에 악영향을 주는지를 두고 양론이 있었는데, 흥미롭게도 헌법재판소가 이와 관련한 판단을 제시한 적이 있다. 헌법재판소는 2016년 “한국어 능력이 견고하지 못한 시기에 영어를 배우게 하면 언어 발달의 부담감이 가중돼 한국어 발달에 장애가 있을 수 있다”고 했다. 서울 영훈초 재학생과 학부모들이 “초등학교 1, 2학년의 정규 교과에서 영어를 배제한 교육과학기술부 고시는 위헌”이라며 낸 헌법소원에 대한 응답이었다.

헌재는 당시 “초등학교 교육과정에 영어가 정규 교과로 포함된 1995년 이래로 여러 논의에도 불구하고, 초등학교 1, 2학년에게는 영어를 정규 교과로 가르치지 않고 있다”며 고시를 합헌으로 봤다. 정부가 “초등학교 1, 2학년에게도 영어를 배우게 하면 균형 잡힌 외국어 습득의 어려움, 영어에 대한 흥미 상실, 어휘 구문 학습의 부족 등이 우려된다”는 교육 전문가의 의견을 바탕으로 정책을 결정한 것에 나름의 이유가 있다는 판단이었다. 헌재는 “교육은 우리 문화의 정체성이 훼손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이뤄져야 한다”고도 했다.

다른 차원에서의 우려도 제기된다. 서경현 삼육대 상담심리학과 교수는 “어린 시절에는 말하기 이외에도 관계 맺기와 정서 안정 등 많은 것을 습득한다”며 유아의 과도한 스트레스를 걱정했다. 서 교수는 “유아가 영어를 배우는 곳에서 ‘집에서는 안 쓰는’ 영어를 쓰면 혼란을 겪을 수 있다”고 말했다. 임명호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 감사도 “영유아기에 평소 접하던 언어가 갑자기 바뀌면 감정 발달, 사회성 발달이 흐트러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중언어 구사가 모국어 발달에 영향을 미치는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임동선 이화여대 언어병리학과 교수가 18~35개월 아동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단일언어 환경에서나 이중언어 환경에서나 아동의 모국어 표현 어휘, 수용 어휘, 문법은 유의미한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임 교수는 다만 “영어가 의사소통의 수단이 아닌 목표가 되거나, 주입식으로 교육하면 학습효과가 굉장히 떨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임 교수는 “아이가 스스로 배우는지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습득하도록 해야 이중언어 노출의 효과가 극대화될 것”이라고 했다.

이슈&탐사팀=이택현 정진영 박장군 이경원 기자 alley@kmib.co.kr

많이 본 기사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