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승욱 칼럼] 발상의 전환 필요한 설악산 케이블카

국민일보

[고승욱 칼럼] 발상의 전환 필요한 설악산 케이블카

고승욱 논설위원

입력 2023-03-08 04:20

상부정류장 끝청은 백두대간
지나가는 설악산 서북능선길

1986년 발견된 산경표 따라
우리 땅의 소중함 확인하는 곳

틀어막는 국립공원 한계 넘어
대간길 지키는 거점 삼아야

산경표(山經表)는 한반도의 산을 정리한 책이다. 굳이 따지면 지리책인데 지도가 한 장도 없다. 산, 봉우리, 고개가 족보에 이름 올리듯 빽빽히 적혀 있다. 첫 구절은 ‘백두산, 무산 서북 300리 갑산 북 330리’다. 함북 무산과 함남 갑산은 성을 쌓고 관리가 상주한 고을이었다. 감동을 전하는 형용사? 그런 건 없다. ‘백두산-연지봉-허항령-보다회산…’으로 시작해 123번째 지리산에 이르면 백두대간이 끝난다. 다음 장은 40번째 두류산에서 갈라진 장백정간이다.

이렇게 1대간 1정간 13정맥으로 분류된 1139개의 산과 411개의 고개가 102쪽에 걸쳐 무미건조하게 이어진다. 야구 마니아들은 선수 이름, 숫자와 알파벳, 주자 위치가 적힌 기록지만 보고 긴장감 넘치는 경기를 실감한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산경표를 볼 때도 그렇다. 백두대간 66번째는 미시파이고 설악산, 오색령으로 이어진다. 이곳 마장터의 호젓한 숲길과 신선봉의 냉장고만한 너덜바위를 떠올리는데는 ‘미시파, 인제 북 50리 간성 남 80리’라는 구절로 충분하다.

조선 영조 때 실학자 여암 신경준이 쓴 산경표는 1986년 아마추어 산악인 이우형씨의 노력으로 널리 알려졌다. 사실 그가 평생 찾아다닌 건 산경표가 아니라 백두대간이었다. 교과서에서 배운 마천령·태백 산맥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옛 사람의 삶이 지도에 담겼다고 생각했다. 조선시대에는 신생대 백악기에 융기한 화강암을 알지 못했다. 산에 기대 강 옆에 사는 사람들에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대동여지도로 집대성된 조선의 지도들에는 등짐을 지고, 나룻배를 타는 사람들을 위한 산줄기와 물길이 적혀 있었다.

조선을 강점한 일제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아예 민족 의식을 불러오는 백두대간이라는 말을 금지시켰다. 88년 한국대학산악연맹 소속 청년들이 산경표를 따라 백두대간 휴전선 남쪽 구간 종주에 성공했다는 소식에 흥분했던 건 이런 이유에서다. 잊고 살았던, 그래서 잃어버렸던 무엇을 찾았다고 느꼈다. 이후 많은 사람이 산경표를 따라 걸었다. 이 땅의 아름다움을 발걸음마다 실감했다. 그들은 산경표에 저마다의 생명을 불어넣었다. 흘린 땀만큼 많은 책이 나왔다. 걷다보면 국립공원도 논두렁길도 있지만 길의 의미는 다르지 않았다. 대간길은 산티아고 못지 않은 순례길이 됐다.

환경부가 오색 케이블카를 허용한다고 발표했을 때 화가 치밀었다. 상부정류장이 들어설 끝청은 설악산 서북능선 백두대간길 위에 있다. 어렵게 되찾은 민족의 순례길에 차를 몰고 쳐들어올 것 같은 느낌이었다. 끝청에서 대청까지 등산로는 1.8㎞, 고도차는 104m다. 2시간이면 충분하다. 처음에는 연계 등반을 통제하겠지만 얼마나 갈지 모른다. 몰래 넘는 사람을 막을 방법도 마땅치 않다. 지금 계획대로면 케이블카로 올라가도 볼 게 별로 없다. 곧 관광객이 줄고, 대청까지 허락하라는 주장이 거세질 것이다. 그러면 못 이기는 척 허용할 게 뻔하다. 게다가 지금 전국이 난리다. 지리산·소백산·속리산 케이블카 계획이 줄줄이 되살아난다. 북한산도, 한라산도 케이블카로 오르자고 한다.

“등산 좀 다닌다고 대청이 너희들 것이냐.” 오색 케이블카 건설에 반대하면 이 말을 듣는다. 맞다. 노약자, 장애인 등 힘든 산행이 불가능한 사람도 설악산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 백두대간은 그 길을 걷는 대간꾼들이 훼손한다. 주말 새벽 한계령을 꽉 채운 등산객들을 보면 국립공원에 더 지킬 게 남아있을지 의문이다.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지금처럼 울타리치고 웅크리는 게 국립공원 정책의 전부여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환경부와 국립공원관리공단은 백두대간에 관심이 없다. 재야 향토사학자들의 생각일 뿐 정책에 반영할 검증된 이론은 아니라고 보는 듯하다. 이제는 백두대간을 중심에 두고, 국립공원은 그것을 지키는 거점으로 여기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그러고는 장기적으로 지킬 곳과 개방할 곳을 미리 정해야 한다.

끝청에서 대청까지 길을 열 것이면 차라리 케이블카를 대청으로 올리는 게 낫다. 중청대피소에서 대청까지 탐방로를 재정비하고 통제하는 게 현실적이기 때문이다. 무너졌던 지리산 노고단의 생태계는 철저한 관리 속에 다시 살아나고 있다. 이보다 더 중요한 건 국립공원 밖도 아름다운 우리의 산하라는 점이다. 설마 설악산 산양이 지도를 보다가 국립공원 경계선 앞에서 발을 멈출까.

고승욱 논설위원 swk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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