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 강제징용 해법, 대통령 결단만으로는 부족하다

국민일보

[여의춘추] 강제징용 해법, 대통령 결단만으로는 부족하다

남도영 논설위원

입력 2023-03-10 04:07

2015년 12월 29일 외교부 임성남 1차관과 조태열 2차관이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찾았다. 전날 발표한 한·일 위안부 합의안을 설명하기 위해서였다. 할머니들은 분노했다. “당신은 어느 나라 소속이냐” “미리 알려줘야 할 거 아니냐”는 분노였다. 이틀 뒤 공개된 리얼미터 여론조사에서 위안부 합의가 ‘잘됐다’는 응답이 43.2%, ‘잘못했다’는 응답이 50.7%였다. 일주일 뒤에 발표된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는 ‘잘됐다’ 응답이 26%, ‘잘못됐다’ 응답이 56%였다. 여론조사기관이 달라 단순 비교는 불가능하다. 그래도 부정 평가는 비슷한데 긍정 평가가 급격히 하락했다는 점은 시사점이 크다. 합의 이후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는 의미다.

당시 박근혜 청와대 내부에서는 격렬한 반대 여론을 설득할 여러 방안이 논의됐다. 박 전 대통령이 직접 위안부 할머니들을 만나 합의안을 설명하고 위로하는 방안이 유력했다. 한국갤럽 기준 합의가 잘못됐다고 보는 가장 큰 이유는 ‘사과가 불충분하다’(12%)거나 ‘일본에 너무 많이 양보했다’(8%)가 아니었다. ‘위안부 할머니 의견을 안 들었다’(34%)가 가장 높았다. 박 전 대통령은 2016년 신년기자회견에서 ‘직접 만나 설득할 계획이 없느냐’는 질문에 “마음의 치유가 돼 가는 과정에서 뵐 기회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만날 계획이 없다는 얘기였다. 박 전 대통령은 끝내 할머니들을 만나지 않았다. 박근혜정부에서 고위직을 지낸 한 인사는 “박 전 대통령이 할머니들을 만나 함께 슬퍼하며 합의안에 이해를 구했으면 어땠겠냐는 아쉬움이 크다”고 말했다.

2015년 위안부 합의에 대한 평가는 8년이 지난 지금도 엇갈린다. 일본군의 관여와 일본 정부의 책임이 처음으로 인정된 점, 일본 정부 예산을 받아낸 점, 아베 신조 총리의 사죄와 반성의 마음이 표명된 점 등은 성과다. ‘최종적 및 불가역적으로 해결된 것’이라는 문구, 피해자 설득을 제대로 못 했다는 점 등은 한계로 지적됐다. 엇갈린 평가에도 위안부 합의는 한·일 양국 간 합의였다. 지금 위안부 합의는 온데간데없다. 화해·치유재단은 정권이 바뀌자 2018년 11월 해산됐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냉·온탕을 오갔다. 취임 초기 위안부 합의 재협상을 시사하더니 2021년에는 “위안부 합의가 공식 합의였다”고 인정했다. 현재 위안부 문제는 일본과 재협상을 할 수도, 무효로 할 수도 없는 미아가 돼버렸다. 후폭풍을 수습하지 못한 박근혜정부의 방기, 대책 없이 반일만 외쳤던 문재인정부의 무능이 낳은 결과다.

정부가 지난 6일 강제징용 해법을 발표했다. 재단을 만들고 우리 기업이 낸 돈으로 피해자들에게 배상금을 지급하고 ‘미래청년기금’(가칭) 조성을 추진하겠다는 게 골자다. 강제징용 기업인 일본제철과 미쓰비시중공업은 돈을 내지 않았다. 일본의 명시적인 사과도 없었다. 내용적으로 보면 강제징용 해법은 위안부 합의보다 후퇴했다. 강제징용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는 기자회견을 열어 “어느 나라 대통령이냐”고 물었다. “동냥 같은 돈 안 받으련다”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강제징용 해법 발표 직후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로 나아가기 위한 결단”이라고 말했다. 서둘러 해법을 발표한 배경에는 북핵 위협과 한·미·일 안보협력 강화 필요성, 경기 침체 극복을 위한 일본과의 경제 협력 강화 같은 여러 복합적인 원인이 있을 것이다. 악화된 한·일 관계를 내버려 둬서는 안 된다는 대통령으로서의 책임감도 크게 작용했을 수 있다.

그런데 결단을 의미 있는 행동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결단에 멈춰서는 안 된다. 해법 마련은 지금부터라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윤 대통령은 강제징용 피해자들을 직접 만나 설득해야 한다. 어렵더라도 일본의 진전된 조치를 받아내기 위한 치밀한 전략, 가해 기업이 재단에 참여할 수 있는 묘안도 마련해야 한다. 호재를 만난 것처럼 융단폭격을 퍼붓는 더불어민주당이 보기 싫더라도, 최선을 다해 제1야당을 설득하는 것도 대통령의 책임이다. 그런 노력이 없다면 결단은 정치적 선언에 그치게 된다.

지난 10개월을 돌아보면 윤 대통령은 결단과 선언은 하는데 이를 어떻게 현실화시킬지, 반대 여론을 어떻게 설득할지에 대한 고민은 깊지 않은 것 같다. 한·일 관계는 국제적인 문제인 동시에 국내적인 문제다. 윤 대통령은 결단을 통해 미국의 호평과 일본의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다. 이제 국내 문제 해결에 나설 때다.

남도영 논설위원 dy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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