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하면서도 영어유치원 보내는 당신… 그곳에 해법 있다 [이슈&탐사]

국민일보

욕하면서도 영어유치원 보내는 당신… 그곳에 해법 있다 [이슈&탐사]

[욕망의 출발선, 영어유치원] <5·끝> 공교육의 빈자리

입력 2023-03-10 00:03
게티이미지

유아대상 영어학원(영어유치원) 학부모들이 자녀를 ‘사전 사교육’하고 영어유치원에 매월 150만원 안팎을 지출한다는 보도(국민일보 3월 6일자 1면 참조) 이후 매서운 반응을 보내온 독자들이 있다. 한 독자는 이메일에서 “소수 부유층의 이야기를 부풀리고 있다”고 했다. 본인이 서울의 영어유치원 학부모라는 다른 독자는 “‘절충형’도 월 200만원을 넘고 ‘학습형’은 월 300만원이 드는데, 비용을 정확히 쓰라”고 했다.

다 같은 ‘영유’가 아니다

월 150만원을 사이에 두고 각각 정반대 지점에서 전해진 “주변 현실과 다르다”는 반응은 한국사회 속 영어유치원의 자리를 말해준다. 영어유치원이 자녀의 엘리트 양성 코스 출발점으로 자리매김한 것은 이미 오래 전 일이다. 하지만 영어유치원의 세계 속에서도 예민하게 ‘탑3’ ‘탑5’의 순위가 매겨지고 공유되며, 고액 사교육 기관끼리도 계층이 생기고 있다. 놀이형에서 학습형으로의 변화, ‘새끼과외’의 동반 같은 건 더 이상 기삿거리가 못 된다는 반응도 있었다.

일부 영어유치원 학부모는 “‘영유’라고 해서 다 같은 ‘영유’가 아니다” “자녀를 ○○○에 보내면서 ○○○‘부심’(자부심)을 부린다”는 말도 했다. 유망한 사교육 기관을 주제로 한 정보 공유는 특정 ‘단톡방’을 중심으로 이뤄진다. 이른바 ‘워킹맘’이 이 세계에서 조금씩 소외되는 것을 또다른 문제로 언급하는 이도 있었다. 한 교수는 “학부모들의 정보 공유 네트워크는 이미 ‘조동’(산후조리원 동기)과 ‘문센’(문화센터)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말했다.

부모가 자녀의 학력 성취를 돕는 것이 과연 올바른지, 선행학습을 하는 것이 과연 권장되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이는 이제 거의 없다. 학원가에서는 서울 강남 학부모들을 “다른 부모들처럼 주말에 놀러다니지 않고 아이와 함께 노력하는 부모들”이라고 불렀다. 서울 유명 영어유치원 학부모들이 모인 한 ‘단톡방’에서는 국민일보의 영어유치원 레벨테스트 실태 기사를 두고 “이 대목에 공감한다”는 말이 나왔다고 한다. 한 ‘대치맘’이 딸의 영어유치원 레벨테스트(입학시험) 합격 통보를 받은 날 ‘첫발을 잘 내디뎠다’는 묘한 안도감을 느꼈다는 대목이었는데, 많은 학부모가 “그때 내 마음도 그랬다”고 호응했다고 한다.

많은 학부모는 보도 이후 여전히 “영어유치원에 보내야 하는지 고민이 생긴다”는 반응을 보였다. 경험자들은 효과가 분명히 있다고 말하지만, 비용의 문제가 있고 정서적 부작용도 걱정되긴 한다는 것이었다. 전문가들은 “영어유치원을 시작으로 한 ‘교육 투자’가 과연 이익이 될지 고민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본다. 학계에 따르면 영어유치원 출신은 일반적인 수준보다 좀더 수월하게 특목고·자사고의 문을 열고 있다. ‘비교적 우위’에 있지만, 그렇다고 모든 영어유치원 출신이 부모의 기대만큼의 경로를 똑바로 걷는 건 아니었다.


서울대 교수들로 공교육을 채워도

사교육비 폭증이 사회적 박탈감 문제로 지적될 때면 정부도 학부모도 공교육의 역할에 기대를 걸었다. 다만 공교육의 ‘흡수’가 성공한 사례는 없다시피하고, 오히려 공교육이 강화될수록 사교육이 늘어나는 경향이 나타났었다. 본질적으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인위적으로 개인의 사교육에 개입하는 것이 과연 헌법정신에 부합하느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헌법재판소는 2000년 과외교습을 금지하는 내용의 법 조항을 위헌으로 판단하면서 “학교 밖의 교육영역에서는 원칙적으로 부모의 교육권이 우위를 차지한다”고 밝혔다.

익명을 요구한 교육계 전문가는 “모든 교사를 서울대 교수로 채워도 사교육은 사라질 수 없다”고 말했다. 공교육의 질을 아무리 강화한다 해도 자녀가 특출나길 바라는 부모의 심리는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 원로 법조인은 “자녀를 위한 사교육 선택은 인간 본성의 문제에 가깝고, 정치적·이념적인 입장으로 따질 수 없는 별개의 것”이라고 말했다. 교육 기회와 소득의 불평등을 지적하는 일은 진보적 시각으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사교육비를 잡겠다며 과외교습을 불법화한 이가 전두환 전 대통령이었다”는 말도 맞선다. 당시 규제를 피해 음성적으로 벌어지는 고액 과외가 또다른 부익부 빈익빈 문제로 연결됐었다.

교육부도 영어유치원 사교육의 과열을 안다. 2018년에는 교육부의 한 관계자가 “전반적으로 제도 개선을 하려 한다”는 언론 인터뷰도 했다. 하지만 이후 이렇다할 변화는 없다. 영어유치원은 유치원이 아닌 학원이라서 정부가 실질적으로 관여할 수 있는 부분이 많지 않다는 게 교육부의 입장이다. 유아대상 영어학원이란 정식 명칭 대신 영어유치원이라고 알려 영업하는지, 교습비가 지역 교육청 단위의 학원비 조정위원회가 결정한 기준을 뛰어넘는지 정도가 규제된다. 교육부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학부모들이 원하는 수요가 있고, 정부의 개입은 위헌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영어유치원 교육비를 감당하지 못하는 수요층을 공교육이 품어줘야 하지 않느냐”는 요구도 있다. 다만 이 문제는 초등학교 입학 연령 하한 문제로 연결된다. 박순애 전 교육부 장관이 지난해 ‘만 5세 초등학교 입학’을 추진했을 때 사회적 반발이 거셌다. 공론화가 생략된 갑작스런 정책 수립이었다는 지적 이외에 “유아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지적도 많았다. 교육부 관계자는 “굉장히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라고 말했다.

진정 질문돼야 할 것

양정호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는 “사람들에게 ‘본인은 자녀를 평범하게 키우기를 원하느냐’고 질문해 보라. 그 질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안 없이 불평등의 심화 지표를 확인하고 울분을 토로하는 것만으로는 성과가 없다는 얘기다. 근본적으로 질문돼야 할 것은 영어유치원에 자녀를 보내는 일이 왜 발생했고 왜 계속되며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이냐다. 많은 전문가들은 “불평등 문제를 말하는 이들도 자녀를 영어유치원에 보내고 있지 않느냐”고 했다. 그 현상을 개인의 모순적 태도라 말하는 이도 있고, 어쨌든 사회구조를 파악한 개인의 선택이라 말하는 이도 있다.

헌재는 과거 과외교습의 과열 경쟁 문제를 해소하는 방안으로 ‘학력제일주의의 사회적 구조 개선’ ‘재정 투자를 통한 학교 교육환경 개선’ ‘평생교육 제도의 확충’ ‘대학입학 제도의 개선’을 제시했었다. 여기에 빠져 있는, 개선돼야 할 또다른 한 가지는 양극화한 한국 노동시장이다. 다수 전문가가 과열된 교육 투자와 노동시장 구조를 떼어 말할 수 없다고 했다. 임금 높은 직장이 원하는 인재가 되기 위해 명문대를 나와야 하고, 그를 위해 특목고·자사고를 다녀야 하고, 또 그를 위해 만 3세부터 영어유치원 레벨테스트 기출문제를 외워야 하는 일이 점점 많은 이들의 현실로 자리잡고 있다.


엄마들이 그 학원의 가방을 가장 들고 싶어한다는 서울 한 영어유치원은 지난 6일 월 교습비와 기타 경비가 304만4000원이라고 서울특별시교육청을 통해 공개했다. 교육 불평등 문제를 지적해온 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영어유치원의 일평균 교습시간이 4시간51분이라고 집계했다. 이 영어유치원에서 파생된 사교육, 즉 유아들이 ‘새끼과외’ ‘숙제과외’를 하는 시간·비용은 추산되지 않고 있다. 대치동의 한 영어학원 원장은 “자녀를 성공시키려는 부모를 왜 그렇게 부정적으로 보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전국 영어유치원의 숫자는 학교 교과 교습학원(8만2736곳)의 1% 수준이다. 교육 기회의 불평등은 부의 불평등을 낳고 이것이 다시 교육 기회의 불평등으로 순환한다. 이 문제의 해법은 뚜렷하지 않지만 모두가 함께 찾아야 할 것임은 분명하다고 많은 전문가가 말했다. 임금 격차와 함께 양극화한 노동시장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그리고 각자의 마음 속 학력제일주의가 사라지지 않는 한 무한경쟁과 교육 불평등은 사라지지 못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했다.

이슈&탐사팀 박장군 정진영 이택현 이경원 기자 genera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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