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태 칼럼] 위기의 국민연금

국민일보

[박정태 칼럼] 위기의 국민연금

입력 2023-03-14 04:20

작년 80조원 까먹은 최악의 수익률로 여론 싸늘…
불안한 노후와 부담 더 커진 미래세대
전문성 독립성 보장으로 수익 극대화 필요…
비전문가 검사 출신 전문위원 선임은 얼토당토
기금운용위 지배구조 놔두고
산하 ‘수책위’ 인선 방식 바꾼 것은 중립성 차원에서 논란
심각한 문제는 연금개혁 표류
맹탕 보고서와 정부 국회 핑퐁 게임에 개혁 의지조차 의심돼

국민연금에 대한 우려가 점점 커지고 있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최악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기금 운용 수익률이 마이너스 8.22%로, 손실금은 무려 80조원 가까이 된다. 글로벌 금융시장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약세장이었다고 해도 너무나 처참한 실적이다. 1988년 국민연금 제도 도입 이후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8년(-0.18%), 미국과 중국의 무역 분쟁이 발생한 2018년(-0.92%)에 이은 세 번째 마이너스 수익률인데 손실폭이 그 전에 비할 바 없이 크다. 세계 주요 연기금 실적과 비교할 때 나름대로 선방했다는 게 당국의 해명이지만 국민 시선은 싸늘하기만 하다.

현재 적립금 920조원 규모의 국민연금은 2055년 바닥날 것으로 전망되는데 이런 막대한 손실이 반복되면 고갈 시기가 앞당겨질 것이다. 국민의 소중한 노후를 책임지기는커녕 미래세대의 부담만 더욱 커지게 됐다. 지난주 윤석열 대통령이 수익률을 높일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한 것도 여론이 심상치 않다고 느껴서일 게다. 국민연금은 수익률 제고가 우선이다. 고갈 시점을 늦추기 위해선 효율적 운용을 통해 수익을 극대화해야 한다. 그러려면 기금 운용의 전문성과 독립성이 보장돼야 한다.

최근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의 상근 전문위원으로 검사 출신 변호사를 선임한 것은 그래서 납득하기 어렵다. 가입자단체(사용자·근로자·지역가입자)가 각각 추천하는 상근 전문위원 3명은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 등 3개 전문위에서 국민연금 주주권 행사 방향 등을 정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막중한 자리라서 그간 금융·연기금 전문가들이 맡아왔다. 그런데 사용자단체 추천을 받은 검사 출신이 처음으로 꿰차고 들어왔다. 법학전문대학원에서 상법 및 기업범죄를 강의했다고 해서 적임자라고 볼 수는 없다. 법령상 자격조건은 최소한의 형식적 요건에 불과하다. 연기금 운용에 관한 전문적 식견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그는 법률 전문가일 뿐이다. 또한 과거 논문에서 국민연금공단이 보건복지부의 정당한 지시에 따라야 할 의무가 있다는 주장까지 한 인물이다. 기금 운용의 자율성을 부정하는 인식이다. 이 자체만으로도 결격 사유에 해당한다.

가입자단체 추천 몫으로만 구성됐던 수탁자책임전문위 위원 9명 가운데 비상근위원 3명을 전문가 단체 추천풀에서 인선하기로 당국이 운영규정을 바꾼 것도 정치적 중립성 차원에서 논란이다. 전문성을 높인다는 취지이지만 정부가 국민연금을 장악하기 위한 시도라는 비판도 거세다. 그도 그럴 것이 비전문가인 검사 출신을 핵심 자리에 앉힌 것과 앞뒤가 맞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외부 전문가들을 정부가 임명하는 구조로 바뀌면 친정부 인사가 과반을 차지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정권 입맛에 맞춘 운용이 쉬워진다는 말이다.

그 한 예가 국민연금을 통한 기업 흔들기다. 경영진 교체를 위해 역대 정권에서 종종 써먹은 카드다. 최근에도 여권은 ‘주인 없는 기업’ KT의 차기 대표 인선에 노골적으로 개입하고 있다. 1대 주주인 국민연금이 목에 힘을 주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관치를 없애려면 국민연금은 정치권 입김에서 자유로워야 한다. 당국 주장대로 전문성을 강화하겠다면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 기금운용위 지배구조부터 개편해야 마땅하다. 운용위원 20명은 정부 당연직 위원과 가입자단체 위촉 위원 등으로 구성된다. 하지만 금융·투자 문외한이 수두룩하다.

더 심각한 것은 표류하는 국민연금 개혁이다.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산하 민간자문위가 보고서를 좀처럼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이미 연금특위 제출 기한인 1월 말도 한참 넘겼다. 자문위 내부에서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을 놓고 ‘더 내고 현행대로 받기’와 ‘더 내고 더 받기’가 맞서는 바람에 합의 도출에 실패한 탓이다. 이 때문에 핵심 수치를 조정하는 ‘모수개혁’은 손대지 않는 대신 논의 내용을 나열하는 맹탕 보고서를 낼 것이라고 하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더구나 연금특위가 다른 공적연금과의 통합 문제인 ‘구조개혁’이란 방대한 작업으로 방향까지 틀었다. 책임을 회피한 채 시간만 끌겠다는 속내다.

당초 소극적 자세로 논의 주체 역할을 국회로 떠넘긴 정부와 여론의 눈치를 보는 국회가 개혁안 마련을 서로 미루는 핑퐁 게임만 하고 있다. 개혁 의지가 있기는 한 건지 의심스러울 따름이다. 이러다간 문재인정부 때처럼 허송세월할 소지가 농후하다. 연금개혁이 산으로 가고 있다.

박정태 수석논설위원 jtpark@kmib.co.kr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