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원응두 (7) 믿음의 싹 틔운 중문교회… 주님 위한 봉사는 늘 ‘기쁨’

국민일보

[역경의 열매] 원응두 (7) 믿음의 싹 틔운 중문교회… 주님 위한 봉사는 늘 ‘기쁨’

초등 4년 때 친구와 함께 교회 첫 출석
몸은 힘들지만 교회 봉사 즐겁고 기뻐
예배시간엔 종 치고 청소까지 도맡아

입력 2023-03-17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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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5년 2월 24일 창립된 제주 중문교회 초창기 모습.

중문교회는 2025년이면 설립 110주년을 맞는다. 1915년 2월 24일 창립 예배를 드렸다. 신앙 선배들의 땀과 헌신, 희생의 피를 흘린 결과였다. 항일운동을 하다 옥고를 치르신 믿음의 용사가 계셨고 4·3사건과 6·25전쟁 속에서 교회를 지키기 위해 순교한 믿음의 선배들이 지키고 섬겼던 자랑스러운 교회다.

신앙 선배 중에는 오공화 장로님이란 분이 계셨다. 나에게 믿음의 씨앗을 심어주신 분이다. 중문교회 초대 장로로서 교회를 지키기 위해 온갖 열정을 쏟으셨다. 얼마나 열심히 전도했던지, 장로님은 중문 마을 집집마다 하루도 빠짐없이 다니며 전도를 했다. 내가 교회에 나가기 전 우리 집에도 장로님이 찾아오셨던 기억이 있다. 장로님은 아버지에게 예수 믿으라고 몇 번을 권하셨다. 그리고 나에게도 예수를 믿어야 한다고 여러 번 말씀하시곤 했다. 아버지는 그러나 집안 제사 문제 등으로 교회에 나가지 않으셨다.

내가 처음 중문교회에 나가게 된 것은 1946년 초등학교 4학년 때인 것으로 기억된다. 친한 친구와 함께 교회에 갔다. 친구는 거칠고 시비를 잘 거는 친구였다. 그런데 나에게는 다정다감하게 대했다. 하지만 함께 교회 생활을 하는 중에 그 친구가 교회에 불만이 많아 결국에는 중도 하차하고 말았다. 그러나 나는 계속 교회에 나갔다. 그러면서 정식으로 등록하고 신앙생활을 시작했다. 학습도 받고 세례도 받았다.

중문교회를 나가면서 나의 생활도 달라졌다. 교회에서 무슨 일이 있으면 모든 것을 제쳐 놓고 교회로 향했다. 그런 게 너무 즐겁고 좋았다. 때로는 몸이 힘들어도 마음은 기뻤다. 주님을 위해 일하는 것은 우리에게 기쁨을 준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아버지는 교회에 나가시지는 않았지만 내가 교회 가는 것에 크게 반대하지는 않으셨다. 아마도 내가 병도 낫고 몸도 건강해지고 하니 그런 것 같았다.

이렇게 교회에 나가 즐거운 마음으로 봉사를 하다 보니 차츰 믿음도 쑥쑥 자라는 것을 느꼈다. 기분이 좋았다. 그때마다 더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했다. 당시에는 교회 재정이 어려웠다. 교회를 관리하는 사찰을 둘 형편이 못 되어 대신에 교회 관리를 나 혼자 맡아서 관리했다. 그때는 예배시간을 알리는 종을 쳤다. 새벽기도회를 위해 새벽 4시에 일어나 종을 치고, 모든 예배 시간 전에 종을 쳤다. 교회 청소하는 일도 도맡았다. 바닥 마루를 닦고 물걸레질을 했다. 그때는 전기가 없던 시절이라 램프등(燈)을 사용했다. 나는 램프등을 관리하는 일도 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집사직을 받아 봉사했고 주일학교 부장 겸 교사로 활동했다.

지금도 나는 시간이 나면 어디를 가나 손바닥 크기의 전도지를 돌린다. 그 옛날 오 장로님이 하셨던 대로 말이다. 내가 교회 문턱을 밟게 된 것처럼 믿지 않는 이들도 언젠간 나처럼 주님을 영접할 수 있는 날이 오리라는 것을 믿기 때문이다. 나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었든지 항상 힘쓰라”(딤후 4:2)는 능력의 말씀을 믿는다.

정리=윤중식 종교기획위원 yunj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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