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속 순교지 찾아내고 알려, 잊지 못할 순례길 만들고 싶어”

국민일보

“일본 속 순교지 찾아내고 알려, 잊지 못할 순례길 만들고 싶어”

18년째 순교지 발굴·홍보 사역 정재원 한일연합선교회 총괄본부장

입력 2023-03-17 03:06 수정 2023-03-20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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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원 한일연합선교회 총괄본부장이 15일 서울 마포구 호텔 나루 서울 엠갤러리에서 “기독교 박해와 순교 역사를 부끄럽게 생각하는 일본 크리스천들이 선조의 믿음을 자랑스러워하며 믿음의 유산을 이어가도록 격려하고 싶다”고 말하고 있다. 신석현 포토그래퍼

일본 나가사키에는 기독교 탄압으로 30만명 이상이 순교한 피의 역사가 존재한다. 일본에 복음이 처음 전해진 것은 1549년. 스페인 출신 프란치스코 자비에르 선교사가 나가사키현 히라도에서 복음을 전하면서 교세가 확장됐다. 그러나 16세기 말 정권을 잡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그를 이은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기독교를 박해하면서 나가사키는 순교 역사의 중심이 됐다.

400여년 전 순교의 눈물이 있는 곳

나가사키에는 순교 현장과 함께 250년간 숨어지내며 신앙을 지킨 크리스천들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26인 순교비’는 1597년 26명이 십자가에 매달려 처형된 일본 최초의 순교를 기념한다. ‘호쿠바루 처형장’은 가장 많은 순교자(131명)의 피가 흐르는 곳이다. ‘스즈타 감옥터’ ‘처자 이별 바위’ ‘머리·몸 무덤’ 등도 있다.

2016년 일본 나가사키 순례지를 방문한 한국 성도들이 ‘호쿠바루 처형장’에서 엎드려 기도하고 있다. 한일연합선교회 제공

유네스코(UNESCO)는 이 중 열두 곳을 희귀한 종교문화로 인정하며 2018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했다. 나가사키 순례지를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기획해 전 세계에 알린 건 일본인이 아닌 한국인이다.

거룩한빛광성교회(곽승현 목사) 장로로 시무하는 정재원(61) 한일연합선교회(WGN) 총괄본부장은 그 사역을 18년째 하고 있다. 지난 15일 서울 마포구 호텔 나루 서울 엠갤러리에서 정 본부장을 만났다.

정 본부장은 우연한 기회로 일본 선교에 몸담았다. 1984년부터 CBS에서 PD 아나운서 등으로 근무한 그는 2005년 휴가차 방문한 일본에서 어려운 부탁을 받았다. 한 일본 가정이 조선인 유해를 오랫동안 정성스럽게 모시고 있다며 이를 본국인 한국에 옮겨달라고 했다.

“일본 가정이 조선인 유해를 26년간이나 고급 납골당에 모시고 있다는 이야기에 감동을 받았죠. 그 조선인은 해방 후 가족과 생이별을 하고 여러 사정으로 이 일본인의 집에서 일하며 동고동락한 분이었다고 해요.”

유해를 한국의 고향으로 옮기려면 가족부터 찾아야 했다. 누렇게 바랜 인물 사진 한 장만 들고 한국 경찰에 의뢰했고 한 달 반 만에 유가족을 찾았다. 정 본부장은 오랫동안 유해를 모신 일본 가정과 한국 유가족을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해 일본 여행을 기획했다. 이후 한국인을 대표해 일본 가정에 감사함을 표현하는 자리도 마련했다.

나가사키를 스토리텔링하다

모든 일을 마치는 순간 ‘정말 다했니. 일본인들에게는 기립 박수보다 더 필요한 게 복음 아니겠니’라는 마음의 음성이 들렸다. 하나님의 콜링이었다.

그때부터 일본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눈에 들어온 건 순교지였다. 2005년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순교지를 방문하는 코스를 기획했다. 그가 몸담은 CBS를 통해 일본의 순교 역사와 현장을 알리는 내용도 보도했다.

그의 사역은 2011년 사단법인 한일연합선교회(WGN·이사장 정성진 목사)를 발족한 뒤 조직화됐다. WGN의 주요 사역은 일본의 순교지를 개발해 한국교회에 소개하는 일이다. 나가사키는 정 본부장이 순례 코스를 발굴한 2005년 이후 한국 크리스천들이 자주 찾는 순례지 중 하나가 됐다.

정 본부장은 2021년 선교TV본부장 등을 역임하며 36년간 몸담았던 CBS에서 퇴직했다. 경력을 살려 방송 사역도 시작했다. WGN은 월드굿뉴스, 글로벌 선교방송을 지향하는 채널을 만들었고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이 자국어로 콘텐츠를 만들어 본국에 제공하는 방식으로 방송에 나섰다. 정 본부장은 “코로나 같은 전염병이 생길지라도 선교사가 부재한 곳에 콘텐츠는 계속 남아 활동하는 개념이라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동안 일본 선교에 헌신한 그에게 어려움을 물었다. 그는 “호두껍데기처럼 딱딱한 일본인 마음에 복음의 씨앗을 뿌리기는 쉽지 않았다”며 안타까워했다. 또 일본은 한국에서 성경 속 ‘니느웨’와 같은 곳이라 선교 협력을 끌어내는 일도 쉽지 않았다.

다양하게 임한 하나님의 위로
정재원(오른쪽) 한일연합선교회 총괄본부장이 2017년 11월 나가사키현 사세보시에서 사세보 시장으로부터 감사패를 받는 모습. 한일연합선교회 제공

그럼에도 분투하는 정 본부장을 하나님은 여러 방법으로 격려하셨다. 2018년 나가사키가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자 일본의 10개 지자체 공무원들은 그동안 나가사키의 순교 역사를 알리는 데 힘쓴 정 본부장을 찾아 감사 인사를 전했다.

2016년 1800명이 참여하는 ‘크루즈 순례지 여행’을 기획했는데 성공적으로 마친 것도 하나님이 하신 일이었다. 정 본부장은 “여행객 중에는 만삭의 임신부, 신장 투석 환자도 있었지만 사고 없이 감동과 감사로 하선했다”고 회고했다.

엔데믹에 접어들면서 최근 성지 순례 등이 재개되고 있는 가운데 WGN도 2020년부터 중단됐던 ‘나가사키 순교지 탐방’을 오는 7월 4일부터 3박 4일 일정으로 개최한다. 통일부 장관을 역임한 김하중 장로의 특별강의, 선상 부흥회, 제3회 한일문화교류회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마련됐다.

정 본부장은 나가사키 순례지를 산티아고 순례길처럼 만들고 싶다는 바람도 전했다. “이스라엘 성지순례가 인간을 사랑한 신의 이야기라면, 나가사키는 그 신을 사랑해 죽음을 받아들인 평범한 인간들의 순교 이야기입니다. 지자체와 협의해 기독교 본질을 확인하고 생애에 잊지 못할 여행으로 각인되게끔 하고 싶습니다.”

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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