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건강] “경제불황기, 술 의존 증가 우려… 사회적 대책 필요”

국민일보

[And 건강] “경제불황기, 술 의존 증가 우려… 사회적 대책 필요”

[음주폐해 불감증 사회, 이젠 바꾸자] ⑤(끝)
한국중독정신의학회 이해국 이사장 인터뷰

입력 2023-03-21 04:06
국민 스트레스 지수 높아진 시대
‘보복 음주’라는 용어 등장하기도
음주 폐해 예방 예산 대폭 증액
알코올 중독자 치료율 제고 중요

이해국 한국중독정신의학회 이사장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홈술·혼술로 증가한 젊은 세대의 음주와 기존 남성 중심 집단 회식문화가 만나 음주폐해의 양과 범위가 더 늘어날 공산이 크다”며 국가차원의 예방대책 마련과 사회적 실천 운동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지난해 말 대한의사협회와 국립암센터 등 20여개 보건의료·복지, 시민·소비자단체가 동참한 ‘음주폐해 예방을 위한 범사회적 네트워크’가 처음 출범했다. 음주문화 개선을 위한 정부의 적극적 대책과 법제도 마련을 촉구하고 구체적 실천 및 사회운동 전개를 기치로 내걸었다.

이 사회적 연대를 주도한 한국중독정신의학회 이해국 이사장(가톨릭의대 의정부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은 최근 국민일보와 인터뷰에서 “3년 간의 코로나19 팬데믹과 이어진 경제불황으로 국민의 우울 불안 스트레스 수준이 높아지고 있어, 손쉬운 스트레스 해소 방안으로 음주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우려가 크다”며 “지금이야말로 음주폐해 예방을 위한 사회적 노력이 구체적으로 마련돼야 하는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이 이사장은 보건복지부 음주폐해예방위원회 부위원장, 세계보건기구(WHO) 중독 대응 기술자문위원을 맡고 있다. 다음은 일문일답.

-코로나 유행기간 음주문화 어떻게 평가하나.

“코로나 팬데믹 초기 전체적인 음주량과 음주 횟수는 분명히 줄었다. 그 자리를 ‘홈술’ ‘혼술’이 대체했다. 랜선 회식, 온라인송년회 같은 디지털 문화의 확산, 주류 회사의 젊은 여성 타깃 마케팅도 복합적으로 영향을 줬다. 그러면서 강요가 아닌, 개인 취향과 선호에 따라 술 마시는 트렌드가 생겼다. 마시고 취하는 것이 목적이 아닌, 다양한 맥락과 기호에 따라 음주가 이뤄지는 문화는 ‘위해 감소’ 측면에서 긍정적이나 이는 기존 만취 회식문화에 대한 성찰의 효과라기 보다 팬데믹이 가져온 실용화, 개인화, 디지털 전환 등이 작용한 결과다.”

-팬데믹이 끝나가면서 음주행태에 변화가 있는 것 같다.

“지난해 가을부터 일부 방역 조치가 완화되면서 수 일만에 과·폭음 사고가 속출하고 ‘보복 음주’라는 용어가 등장했다. 음주를 대체할 건전한 여가, 스트레스 해소 방안이 마련되지 않았기에 결국 다시 과거 과·폭음으로 회귀가 이뤄지고 있다. 문제는 홈술·혼술로 증가한 젊은 세대 음주와 기존 남성 중심의 집단 회식문화가 만나 음주폐해의 양과 범위가 더 늘어날 공산이 크다는 점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보나.

“방역 조치로 인한 사회적 음주의 감소는 대안의 여가·놀이 문화를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지만 단기 처방, 즉 경제 활성화에만 정책이 집중됐기 때문이다. 예컨대 방역 조치로 인해 주중엔 1차로 가볍게 마시거나 아니면 음주 없이 식사만 하고 일찍 귀가하는 변화가 나타났는데, 이런 건전한 음주문화의 변화가 지속·유지되기 위한 정책이 따라주지 못했다.”

-술에 관대한 정서 바꿀 수 없을까.

“최근 WHO와 유럽연합 캐나다 등이 한 잔의 술도 암 발생 등 건강에 해롭다는 지침을 발표한 바 있다. 술이 유발하는 다양한 건강과 안전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되지만 국민의 실제 인식과 행동을 바꾸기 위해선 지속적인 홍보와 캠페인이 따라야 한다. 그런데 주류 회사의 광고마케팅 비용은 연간 수천억원인데 비해 음주폐해를 알리는 국가 예산은 15년째 14억원 수준에 머물러 있다. ‘더 마셔라’는 주류 업계 마케팅에 비해 ‘조심해서 마셔라’는 정부의 메시지는 너무도 궁색하다. 언제 어디서나 누구나 술을 사고 마실 수 있도록 조장하는 환경과 주류 업계의 마케팅을 제한하는 법과 제도가 만들어져야 하는데, 정부는 이런 선량한 중재자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술이 마치 소통의 필수 도구인양 말하는 정치인들의 무책임함도 문제다.”

-알코올 폐해 어느 정도인가.

“알코올은 그 자체로, 또는 대사산물인 아세트알데히드를 통해 간 췌장 뇌 등 인체 장기에 독성 효과를 나타내 암과 간경변 췌장염 알코올성치매 등을 유발한다. 폭음 시 조절 기능을 담당하는 전두엽을 마비시켜 다양한 주취 범죄로 이어진다. 과음이 반복되면 알코올중독(의존증)에 빠진다. 나아가 가정·성폭력, 음주운전 같은 공공의 안전을 위협하는 2차적 문제도 심각하다. 2020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보고서에 의하면 한국인의 월간 폭음률은 36개국 중 11위에 해당됐다. 음주와 관련이 큰 간질환 사망률, 음주교통사고 사망률(2018년 기준)은 OECD국가 중 1위다. 알코올 기인 사망률은 코로나 팬데믹 이후 급증해 2020년 처음 10만명 당 10명을 넘었다.”

-한국의 알코올 규제 수준은.

“WHO가 권고하는 효과성이 입증된 음주폐해 예방 정책은 주류 접근성(구매 및 음주 장소·시간) 제한, 광고 제한, 음주운전 규제, 일차 보건의료에서의 단기 개입(고위험 음주자 간이 치료), 가격 정책 등이다. 이 중 우리나라는 음주운전 규제만이 제대로 시행된다고 볼 수 있으나, 그나마 정책 효과성이 낮다. 적발 후 음주자에 대한 치료적 개입이 적극 이뤄지지 않는 처벌 위주 정책이라, 음주운전 재범률이 40%에 달한다. 국내 알코올 정책 수행은 OECD 24개국 비교에서 20위로 하위 수준이다. 음주로 인한 사회경제적 비용(20조원)은 흡연(7조원) 암(7조원) 자살(3조원)에 비해 훨씬 높은데도 정책은 가장 빈약하다. 그 이유는 음주폐해 대책 마련에 대한 국가적 책무를 규정한 법·제도가 없기 때문이다. 흡연은 건강증진법, 암은 암관리법, 자살은 자살예방법 등 별도 법체계가 존재한다.”

-다른 나라는 어떻게 하고 있나.

“음주폐해를 완벽하게 예방하는 나라는 없으나 효과적인 정책을 다양하게 수행하고 있다. 가령 프랑스는 법으로 모든 술 광고를 금지한다. 미국은 공공 장소 음주에 대한 법적 제한이 철저하고 술 광고는 강제하진 않지만 주류 회사의 자율 규제로 아이돌·스포츠 스타의 광고 출연은 차단한다. 스코틀랜드는 알코올 도수 1도당 1000원의 가격을 강제로 정하는 주류최소가격제를 시행 중이다. 도수가 높을수록 술값이 비싸져 자연스럽게 만취를 예방하는 것이다. 호주에선 만취자에게 더 이상의 주류를 제공하지 않도록 하고 행사나 지역축제 같은 예외 시에는 1인당 음주를 철저히 제한한다. 술판으로 바뀌는 공원과 거리축제가 가능하지 않다.”

-음주폐해 예방 정책 어떻게.

“국가 음주폐해예방사업이 복지부 내에서 조차 건강정책국의 건강증진사업과 정신건강정책관의 중독관리사업으로 나뉘어 있다. 게다가 정책 우선 순위가 너무 낮다. 건강증진사업 중 음주폐해 예방의 경우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인력·예산 배정이 1% 밖에 안된다. 또 정신보건 예산은 4500억원이지만 중독관리사업 예산은 전체의 1.4%(62억원)에 그친다. 이러니 추정 알코올 중독자 중 지역사회 중독관리센터에서 서비스받는 사람이 0.5%밖에 안된다. 지자체 차원의 통합건강증진사업 중 음주 관련 예산 비중은 대부분 10% 이하다. 무엇보다 급한 것은 어린이·청소년에 영향을 주는 전방위적 주류 마케팅에 대한 규제와 이에 대항할 국가 차원의 홍보사업 강화다. 이를 위해 음주폐해 예방 예산부터 대폭 증액해야 한다. 또 여타 정신건강 문제의 30% 밖에 되지 않는 알코올 중독자의 치료 경험률을 높이기 위한 지원 정책도 절실하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1인 고독사가 늘고 있는데, 이들 중 상당수는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고 방치된 알코올 중독자다.”

글·사진=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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