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원응두 (11) 잡화점 사업 뛰어들었다 출자금도 못 건지고 사업 접어

국민일보

[역경의 열매] 원응두 (11) 잡화점 사업 뛰어들었다 출자금도 못 건지고 사업 접어

교회 분리되는 과정에서 교회 재정이
어려워지는 것을 본 고 전도사 권유로
제대로 봉사하기 위해 잡화 가게 열어

입력 2023-03-23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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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서귀포시 상예동으로 옮겨 세워진 예래교회 모습.

예래교회를 세운 김두혁 경사는 신의주 출신으로 해방 이후 북한 공산당 간부가 되라는 말을 거부했다가 반동분자로 찍혀 홀로 월남한 분이다. 그는 영락교회 교인으로 1948년 4·3사건이 발발하자 서귀포에 파견된 분으로 주민들을 전도했다. 이후 김 경사는 교회가 부흥되자 경찰직을 내려놓고 목사가 됐다.

지금 예래교회는 예전에 있던 곳이 아니라 서귀포시 상예동으로 이전했다. 이곳에 아담한 예배당을 건축해 예배를 드린다. 예래교회를 섬기면서 많은 시련과 은혜를 경험했다. 사업은 잘되지 않아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많았다. 그렇지만 기쁜 마음으로 교회를 섬겼다. 약 2년 6개월 정도 교회를 섬기면서 몸과 마음이 서서히 안정됐다. 이 시기는 나에게 더 없이 귀중하고 소중한 시간이었다.

새로운 신앙의 세계를 발견하는 큰 은혜를 입었기 때문이다. 교회학교 출신 중에 잊을 수 없는 제자들이 많다. 이때 활동했던 학생들이 후에 목회자가 되기도 하고, 관공서 등에서 봉사하는 귀한 일꾼들로 성장했다. 손으로 꼽으라면 수도 없이 많지만 그중에서 서울 강서구 늘빛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강정훈 목사를 소개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주일학교 교사의 자질 향상과 교육 자료 제공을 목적으로 1962년 창간된 월간지 ‘교사의 벗’ 전 발행인으로 타고난 글쟁이다. 어려운 시절을 잘 견디고 훌륭하게 성장해 주님의 일을 감당하는 것을 보면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사업(장사)은 예래교회에서 시작했다. 그때는 우리나라의 전체적인 경제 사정이 어려운 시기였다. 제주 역시 경제가 어려워 돈이라고는 쉽게 만져 보지 못했다. 유채 농사를 하거나 고구마를 수확하는 추수기에야 겨우 돈 구경을 할 수 있었다.

나는 교회 봉사를 제대로 하려면 재정이 튼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때 고려신학교를 졸업한 고성용이라는 전도사의 권유가 결정적이었다. 고 전도사는 원래 부산 자갈치 시장에서 큰 장사를 해 많은 돈을 벌었던 사람이다. 하지만 갑자기 장사가 어려워져 고향으로 돌아와 예래교회를 섬겼다.

고 전도사는 교회가 분리되는 과정에서 교회 재정이 어려워지는 것을 보고 당시 5만원을 출자하면서 나에게 장사를 시작해 보라고 권유했다. 나는 일단 동갑내기인 강 집사와 함께 장사를 시작했다. 마침 교회 사택이 도로변에 있었다. 그곳에 가게를 마련하고 15만원을 가지고 고 전도사님의 도움을 받아 가면서 잡화 가게를 시작했다. 고 전도사와 나는 큰 희망을 걸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열심히 장사에 뛰어들었다. 제주읍과 모슬포, 서귀포에서 도매상을 통해 물건을 사가지고 와서 가게에서 팔았다.

처음엔 장사가 되는 듯했다. 그러나 갑자기 주변에 경쟁자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돈도 생각만큼 벌리지 않았다. 그래서 강 집사와 다시 의논해 가게 규모를 줄이기로 했다. 그때 나는 가정을 책임지고 농사도 짓고 있던 중이라 강 집사에게 가게의 모든 것을 맡기고 사업에서 손을 뗐다. 출자한 자본금을 한 푼도 받지 않고 첫 사업을 접은 것이었다.

정리=윤중식 종교기획위원 yunj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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