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섬情談] 사랑을 포기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

국민일보

[너섬情談] 사랑을 포기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입력 2023-03-22 04:02

이 시대를 정의하는 한 특징은 사랑의 과잉과 사랑의 파산이 함께 나타난다는 점이다. 영화도, 드라마도, 음악도 모두 사랑의 갈망과 그에 따른 기쁨과 슬픔, 고통과 혼란을 한없이 이야기한다. 두근두근, 우랑우랑, 알콩달콩, 뭉글뭉글, 울울답답, 울컥울컥 등 흔히 접하는 사랑 부사들은 여전히 활기찬 사랑의 양태를 보여준다.

동시에 우리 사랑은 심각히 위험하다. 연애와 결혼과 출산 등을 포기한 N포 세대, 출산율 0.78이란 숫자로 표시되는 기록적 저출산은 오늘날 사랑의 힘겨움, 작동 불능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자아의 높아진 이상, 부풀려진 사랑의 이미지와 비교해서 제 한 몸 가누기 힘겨운 끔찍한 현실이 사랑을 잡아먹은 것이다.

‘사랑을 배울 수 있다면’(오도스)에서 로버트 C. 솔로몬 미국 텍사스대 교수는 이 모든 난관에도 사랑은 행복한 삶과 양립할 수 있는 엄연한 현실이라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사랑과 연애는 고귀한 동시에 이룩할 수 있고, 가치 있는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삶이다.

사랑하기 좋은 현실 따윈 존재한 적이 없다. 사랑의 정치학이나 사회학이 문제를 해결한 적도 별로 없다. 사랑은 언제나 지독한 혼란이고, 끔찍한 금기이고, 단단한 장벽에 던져진 연약한 달걀이었다. 그러나 세대마다 사랑의 고통을 호소하면서도 정말로 사랑을 포기한 세대는 없다. 미국에선 매일 청년 6000명이 자연스레 사랑의 첫 문턱을 넘어선다. 사랑은 우리의 자연적 성향이고 생물학적 본성이다.

그러나 절로 이뤄진 사랑은 없다. ‘대추 한 알’에서 장석주 시인이 노래했듯, 작은 대추 한 알조차 붉어지려면 태풍 몇 개, 천둥 몇 개, 벼락 몇 개, 번개 몇 개가 필요하지 않은가. 모든 세대는 늘 현실에 맞춰 사랑을 재정의하는 쓰디쓴 고통을 치러야 했다. 솔로몬은 말한다. “사랑은 불완전한 발명품이며 우리는 모두 자신을 위해 사랑을 재발명해야 한다.”

그에 따르면 현대인은 사랑을 너무나 과도하게 이상화한다. 사랑을 인간 한계를 넘어서는 사건으로 미화하고, 신적 경험으로 찬양한다. 하지만 사랑은 신비하고 희귀한 기적이 아니라 범속하고 일상적인 현상이다. 사랑은 언제 어디에서나 마주칠 수 있는 흔한 존재, 이 순간에도 수억명이 공유하는 느낌이다. 사랑의 환상을 믿지 않는 사람, 사랑에 너무 많은 기대를 불어넣지 않는 사람에게 사랑은 쉽게 다가온다.

사랑은 벼락같이 다가오고 불꽃처럼 타오르며 더없이 짜릿한 감정, 한순간도 쉬지 않고 쿵쾅거리는 심장 같은 게 아니다. 사랑은 아름답게 완성된 보석으로 내려지는 신의 선물도 아니다. 사랑은 오히려 시간 예술에 가깝다. 원석을 얻은 후 자르고 쪼고 다듬으면서 자기 자아에 맞춰 가공하는 장기 세공 과정이다. 솔로몬은 이야기한다. “강력한 힘으로 폭발하는 열정보다 우정을 통해 개발될 때 가장 좋은 사랑을 할 수 있다.”

따라서 사랑을 하려면 무엇보다 겸손해야 한다. 자신이 모자란 존재라는 점, 반쪽 정체성만 가지고 살아가는 부족한 존재임을 인정해야 한다. 사랑은 우리 자신을 타인의 관점에서 재정의하는 사건, 타자를 통해 자신을 완성해 가는 꾸준한 실천이기 때문이다. 사랑할 때 우리는 더없는 친밀함 속에 휩싸인 채 서로를 향해 더 나은 인간이 되라고 얼마든지 요청할 수 있다.

사랑은 자아를 고쳐 쓰는 끝없는 실천, 연인을 거울삼아 우리 자신을 다시 세우는 무한 과정에 돌입한다. 사랑 속에서 우리는 자아를 변형하고 확장하는 기쁨을 배우고, 생활을 함께하고 존재를 공유하는 공생체로 거듭난다. 사랑의 길잡이는 우리가 누구인지, 어떤 존재여야 하는지 알려준다. 그러므로 사랑을 배운다는 것은 나 자신을 배우는 일이다. 사랑을 모르면 자기 자신도 모르게 된다. 우리가 절대 사랑을 포기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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