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 시민이 주도하는 선거제도 개편이어야 한다

국민일보

[여의도포럼] 시민이 주도하는 선거제도 개편이어야 한다

윤성이(경희대 교수·정치외교학과)

입력 2023-03-23 04:05

내년 총선에 적용할 선거제도 개편 작업이 길을 잃었다. 선거제도 개편 법정시한인 4월 10일 이전에 새 선거제도를 확정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해 보인다.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는 22일 전체회의에서 여야가 올린 선거제도 개편 수정안을 의결했다. 국회는 27일 전체 국회의원이 참석하는 전원위원회를 열어 이 개편안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할 예정이다. 2주간의 끝장 토론을 거쳐 최종안을 마련한다는 방침이지만 제대로 된 개편안을 도출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당초 정개특위는 소위원회에서 △소선거구제+권역별 병립형 비례대표제 △소선거구제+권역별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도농복합형 중대선거구제+권역별 병립형 비례대표제 등 세 가지 안을 준비했다. 국민의힘은 이 중 소선거구제 기반의 두 개 안이 국회의원을 50명 늘리는 것이어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정했다. 여야 청년 정치인들의 모임 ‘정치개혁2050’ 또한 정개특위 소위안에 위성정당 방지 방안이 없고 구체성도 떨어져 논의할 수준이 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비판적 여론이 커지자 여야는 현행 300석 정원을 유지하는 내용으로 수정안을 마련했고, 정개특위가 이 수정안을 통과시킨 것이다.

지난 20대 총선과 21대 총선 모두 총선 한 달 전에야 선거구를 획정했다. 내년의 22대 총선 역시 법정기한에 맞춰 선거법을 개정하기는 불가능한 상황이다. 선거제도 개편이 매번 난항을 겪는 것은 논의 주체와 절차가 잘못됐기 때문이다. 이번 정개특위 안은 학자와 전문가로 구성된 ‘헌법개정 및 정치제도 개선 자문위원회’가 정개특위에 제출한 안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선거제도의 직접적 이해당사자인 국회의원이 최종 결정권을 갖고 있다. 선거 방식에 따라 정당과 국회의원 개인의 유불리가 명확히 갈릴 수밖에 없다. 정당과 국회의원은 당연히 이해득실을 계산할 것이고, 대표성과 비례성을 높이겠다는 본래의 취지는 변질될 수밖에 없다.

선거제도 개편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시민이 주체가 돼야 한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 주정부는 ‘시민의회’가 주도하는 지방 선거제도 개편 작업을 시행했다. 2001년 지방선거에서 자유당은 지방 선거제도 개편을 위한 시민의회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2002년 12월부터 다음 해 12월까지 1년에 걸쳐 시민의회 구성 작업을 진행했다. 지역, 성별, 연령 등을 고려한 무작위 추첨 방식을 통해 선발한 160명으로 시민의회를 구성했다. 2004년 1월부터 5월까지 시민의회는 전문가 발표와 그룹 토론 등을 포함하는 12주의 학습단계를 거쳤다. 전 세계적으로 사용되는 다양한 선거제도와 정치 과정에 대한 학습이 이뤄졌다. 5월부터 6월까지 50회 이상의 공청회를 개최했고 총 1600여건의 서면 제안을 받았다. 10월까지 각종 안을 검토 심의한 후 단순다수제, 단기이양제, 혼합방식 등을 놓고 세 번의 투표를 했고, 단기이양제를 최종 선택했다. 최종 선거제도는 2005년 5월 국민투표에서 결정됐다. 2년6개월에 걸친 긴 여정이었다.

문재인정부가 시도한 시민참여 개헌은 실패했다. 2018년 2월 대통령 자문기구인 정책기획위원회가 만든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는 개헌 관련 국민 여론 수렴을 위해 ‘국민참여본부’를 구성해 지역 순회 간담회, 심층 여론조사, 온라인 의견 수렴, 숙의형 시민토론회 등을 추진했다. 4개 권역별로 200명의 시민이 참여하는 숙의형 시민토론회는 일주일 만에 구성됐고 사흘에 걸쳐 4회의 권역별 토론을 진행했다. 이어 2018년 3월 26일 문재인정부가 개헌안을 발의했지만 5월 24일 야 4당이 국회 개헌안 표결에 불참함에 따라 의결정족수 미달로 개헌안은 폐기됐다.

캐나다 시민의회의 개편 작업은 2년6개월에 걸쳐 진행됐다. 지난 정부의 숙의형 시민토론회 활동 기간은 2주 정도였다. 시민의회의 최종 결정권자는 시민이었다. 숙의형 시민토론회의 역할은 여론 수렴 대상에 그쳤다. 만약 숙의형 시민토론회가 2년6개월 동안 진행됐고 최종 결정권을 가졌다면 야당이 개헌안 표결에 불참할 수 있었을까. 시민의 결정을 거스를 수 없었을 것이다.

모든 선거제도는 장단점을 갖고 있다. 다만 국회의원에 있어 선거제도 개편은 이해충돌의 영역이다. 국회의원이 최종 결정권을 갖는 선거제도 개편은 성공하기 어렵다.

윤성이(경희대 교수·정치외교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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