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자전거 배우기

국민일보

[살며 사랑하며] 자전거 배우기

김선오 시인

입력 2023-03-27 04:07

중학생 때 자전거를 타다 넘어져 무릎뼈가 보일 만큼 심하게 다치고 난 뒤 삼십대가 된 지금까지 다시 안장에 앉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러다 올겨울 거의 이십 년 만에 자전거를 다시 타기 시작했다. 너무 오랜만이기에 앉아서 타는 방법부터 새로 배워야 할 것이라 예상하고 자전거를 잘 타는 친동생과 함께 동네 공원에 갔다. 그러나 몸은 의외로 자전거 위에서 어떻게 중심을 잡아야 하는지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안장에 앉자마자 핸들을 잡고 페달을 밟으며 자연스럽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조금 비틀거리기는 했지만 놀라운 경험이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자전거 타는 감각이 신선하고 즐겁기도 했지만, 이십 년간 다시 해보지 않은 어떤 자세를 몸이 잊지 않고 있었다는 사실은 어떤 위안이 되기도 했다.

우리의 몸은 시간이 기록되는 하나의 공간이기도 하다. 나의 기억력은 몹시 나쁜 편이고, 나이가 들수록 더 나빠지고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의 경험과 기억이 인식할 수 있는 영역의 바깥으로 휘발된다는 사실이 너무나 슬프고 안타까웠다. 글을 직업으로 삼은 몇 가지 이유 중 하나는 나에게 기록이 그만큼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시간은 빠르게 지나가고 결코 다시 돌아오지 않기에 젊고 건강한 몸으로 느낄 수 있는 감각은 제한적일 것인데, 그것을 기억하지 못하고 잊어버리는 것이 무엇보다 아깝고 아쉬운 일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지금은 보다 자연스러운 마음으로 기억나지 않는 것들은 그저 잊히게 내버려둔다.

내가 겪은 모든 일은 내 몸의 어딘가에 기록돼 있다. 이십 년 만에 앉은 자전거 안장에서 자연스럽게 중심을 잡을 수 있었듯, 지난날의 숱한 일들은 나의 삶을 살아감에 있어 모든 선택과 결정에 영향을 미치고 있을 것이다. 잊어버린 사랑의 감정, 즐거웠던 추억, 후회와 수치심, 슬픔과 절망까지도 내 몸에 새겨져 있을 것임을 상상하면 나의 몸이 지닌 사사로운 역사 하나하나를 조금 더 소중하게 여기게 된다.

김선오 시인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