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 넘어 ‘사랑의 진리’ 향한 유럽 인문학의 역사를 걷다

국민일보

이성 넘어 ‘사랑의 진리’ 향한 유럽 인문학의 역사를 걷다

[빌리온 소울 하비스트 운동] 복음전도 솔루션을 찾아서<2>

입력 2023-03-28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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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인 강이 흐르는 스위스 바젤의 전경으로 종교개혁자 츠빙글리의 도시이자 정신의학자 칼 융, 신학자 칼 바르트를 배출했다.

지난 1월 4박 5일의 일정 중 네 번째 방문한 곳은 스위스 바젤대학에 있는 정신의학자 칼 융의 연구소였다. 칼 융은 프로이트의 제자였지만 전혀 다른 길을 걸었다. 프로이트가 정신분석학과 환원론적 접근을 통해 인간을 생물학적 존재로 격하시킨 것에 대해 칼 융은 분석심리학을 통해 인간을 소중한 존재로 회복시켰다. 요한복음 9장에서 제자들은 ‘나면서부터 시각장애인 된 사람이 누구의 죄 때문인가’를 묻는다. 이때 예수님은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고 답변한다. 이 답변처럼 칼 융은 프로이트의 과거지향적 접근의 정신의학을 미래지향적 접근으로 변모시켰다. 특히 꿈의 해석에 있어서 프로이트는 ‘억압된 감정의 표현’으로 정의했지만 칼 융은 새로운 의미와 방향이라고 해석함으로 파란을 일으켰다.

사실 현대인들은 정신적 고통의 의미를 찾고 싶어한다. 젊은이들은 말할 나위 없다. 과거지향적 해석의 결정적인 문제는 인간을 ‘운명론’ 즉 절망의 감옥에 가둔다는 것이다. 모든 고통의 문제를 하나님의 섭리로 풀어가는 진정한 내적 치유가 필요한 것이다. 젊은이들은 자신의 내적 고통에 대한 바른 해석에 목말라 있다.

둘째 날 아침 칼 융 연구소를 떠나면서 그의 생애를 떠올렸다. ‘나의 생애는 무의식의 자기실현 역사이자 내적 성숙의 표현’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긴 그는 개인을 넘어 ‘집단 무의식’을 정확하게 정의한 인물이다. 그것은 인간의 뿌리 깊은 죄업과 본성에 대한 유일한 심리학적 설명이다. 그의 묘비에 적힌 ‘부르든 부르지 않든 하나님은 존재한다’는 신앙고백은 평소 하나님을 믿느냐는 질문에 ‘나는 그분을 믿는 게 아니라 그분을 압니다’라는 답변과 더불어 유명하다.

개혁파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칼 융이 결국 오직 성으로만 인간 정신을 해명하는 프로이트와 결별하고 인간의 정신적 측면과 영적 측면을 파헤치며 오랜 세월 동안 고통스럽게 진리를 찾아 나선 그가 최종적으로 하나님과 인격적으로 만났을 것이란 추측이 가능해진다. 마치 말년에 ‘이교도에서 기독교인으로’라는 저서를 남긴 하버드대 출신 중국 석학 린위탕(林語堂)이나, ‘죽음은 끝이 아니라 5월에 핀 장미처럼 가장 아름답고 찬란한 대낮’이라는 신앙고백을 하고 영면한 이어령 박사가 모든 사상을 탐구하고 최종적으로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났듯이 말이다. 바젤대학의 유명한 신학자로는 칼 바르트가 있다. 그는 자유주의 신학을 무너뜨린 영적 거장이다.

황성주 회장이 헤겔과 쇼펜하우어의 논쟁으로 유명한 독일 하이델베르크 철학자의 길을 걷고 있는 모습.

다섯 번째 방문한 곳은 독일의 하이델베르크대학이었다. 영화 ‘황태자의 첫사랑’의 배경으로 유명한 이 대학은 독일 최고의 대학이면서 세계에서 가장 낭만적인 장소이며 630여년의 역사를 가진 대학이다. 하이델베르크 성(城)으로 유명하지만 ‘철학자의 거리’로 더 유명하다. 대표적 철학자는 헤겔과 쇼펜하우어이다. 이들은 우연히 같은 시대에 철학을 강의한 라이벌 교수였는데 당시에는 헤겔이 압도적인 인기를 누렸다. 헤겔은 정반합(正反合)의 변증법으로도 유명하지만 ‘세계정신’을 설파하며 역사를 ‘이성의 자기실현 과정’이라고 해석했다. 이러한 이론은 진보파 학생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아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반면 역사를 ‘맹목적인 의지’, 즉 ‘욕망의 충돌’로 해석한 쇼펜하우어는 거의 수강생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1,2차 세계대전을 통해 잔악한 인간의 죄성에 대한 통렬한 반성의 분위기에서 전후 유럽에서 쇼펜하우어의 인기는 상한가를 쳤다. 나중에 베를린대학의 교수로 자리 잡은 헤겔은 상대주의를 통해 절대 개념을 부정한 최초의 철학자가 됐고,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의 자리에 타락한 인간 이성을 올려놓았다. 사실상 무신론 사상의 뿌리는 헤겔인 셈이다. 역사는 이성의 자기실현 과정도 아니고 맹목적 의지의 결과도 아닌 십자가를 통한 절대 사랑의 구현이다.

셋째 날 방문지는 프랑크푸르트였지만 이 지역 한인교회인 한마음교회에서 설교하느라 아쉽게도 프랑크푸르트대학을 방문하지 못하고 체코 국경의 헤르후트로 향했다. 프랑크푸르트대학은 ‘나와 너’라는 책으로 유명한 관계의 철학자 마르틴 부버를 배출한 대학이다. 그는 모든 관계를 목적과 수단으로 삼는 ‘나-그것’과 상대를 인격적 대상으로 보는 ‘나-너’의 관계로 구분하며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유대인인 그는 개신교인과 결혼해 신약성경을 깊이 연구하고 평생 자기 방에 예수상을 걸어 놓았다고 한다. 마르틴 부버와 같은 유대인으로 절친이었던 에마뉘엘 레비나스는 ‘얼굴의 철학’으로 유명한 프랑스 철학자이다. 히틀러의 나치 독일에 온 가족이 몰살당하는 한계 상황을 겪었던 레비나스는 ‘인간은 타인 지향적 존재’라는 ‘타자성’을 외치며 자아의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철학자들의 놀이터에 폭탄을 던진 신예 철학자였다.

그는 ‘타자의 얼굴은 곧 하나님의 얼굴이며 나의 얼굴’이라는 유명한 이야기를 했다. 플라톤 이후 근대철학에는 오직 나만 있을 뿐 너는 없었다. 하나님은 두 철학자를 사용하셔서 철학을 회복시킨 것이다. 두 분 모두 성경의 절대 명제인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을 인간 존재의 본질로 재조명했다.

황성주 이롬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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