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벚꽃이 벌써 폈다

국민일보

[한마당] 벚꽃이 벌써 폈다

고승욱 논설위원

입력 2023-03-27 04:10

봄이 오면 꽃이 핀다. 멀리 남쪽에서 매화 소식이 들리면 어느새 서울에서도 초등학교 울타리에 노란 개나리가 핀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면 동네 뒷산에서 진달래를 볼 수 있다. 개나리와 진달래는 봄꽃 중에서도 일찍 피는 꽃이다. 통계적으로 3월 20일을 전후해 제주도와 남해안 지방에 피기 시작해 25~30일이면 서울로 올라온다. 그리고 또 며칠이면 살구꽃이 활짝 펴 본격적인 봄을 알린다. 그 꽃잎이 하나둘씩 떨어질 때면 벚꽃이 갑자기 나타난다.

꽃은 매년 어김없이 제가 등장할 시간에 핀다. 하지만 인류가 개나리는 왜 그렇게 빨리 피는지, 벚꽃은 왜 살구꽃보다 늦게 피는지 알아낸 건 얼마 되지 않았다. 미국의 식물학자 와이트먼 가너는 1920년 낮의 길이에 따라 꽃이 피는 시기가 달라진다는 광주기성(photoperiodism) 이론을 처음 발표했다. 러시아 과학자 미하일 차일라키안은 1937년 “식물의 잎은 햇빛이 닿는 시간을 감지해 개화를 유도하는 호르몬인 플로리겐(florigen)을 만든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이후 60년 넘게 과학자들은 플로리겐을 찾지 못했다. 수수께끼는 1999년 미국 솔트생물학연구소의 데트레프 바이겔 박사팀이 식물의 잎에서 FT 유전자를 발견하면서 풀렸다. 낮의 길이에 따라 FT 유전자가 개화 단백질을 만들고, 이것이 줄기 끝으로 가 꽃망울이 생긴다는 것이다. 잎보다 먼저 나오는 봄꽃은 지난여름 만들어진 꽃망울이 겨우내 숨어있다가 봄의 햇볕을 받으면서 피게 된다.

올해는 봄꽃이 순서 없이 한꺼번에 피고 있다. 응봉산 개나리 축제가 끝나기도 전에 여의도 KBS 본관 옆 살구꽃이 만개했다. 그 꽃이 지기도 전인 25일 광화문 옛 기상청 앞 서울기상관측소의 왕벚나무가 ‘2023년 벚꽃의 공식 개화’를 알렸다. 4월 중순이었던 서울의 벚꽃 개화 시기가 어느새 3월 말로 당겨진 것이다. 지금 여의도공원에서는 매화, 산수유, 개나리, 진달래, 살구꽃, 벚꽃을 한번에 볼 수 있다. 마치 일부러 그렇게 만든 식물원 같다. 서울 곳곳에서 잔칫상 차리듯 꽃이 핀다.

고승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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