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종윤의 MZ 관찰기] 디지털이 삶의 터전인 MZ세대, 이들은 신인류다

국민일보

[홍종윤의 MZ 관찰기] 디지털이 삶의 터전인 MZ세대, 이들은 신인류다

입력 2023-03-27 04:02

“MZ는 새로운 인류다.” 나의 MZ세대 관찰기의 핵심 테제다. MZ세대는 더 이상 호모사피엔스가 아니다. 포스트 호모사피엔스, 탈(脫)호모사피엔스로 분류해야 한다. 새로운 인류의 임시 학명 MZ는 199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전 세계에서 동시다발로 출현하기 시작했다. 호모사피엔스의 생태계와 문명에서 발원했지만 디지털 온라인 공간을 삶의 주 터전으로 삼으면서 전혀 새로운 인류로 진화 중이다.

# MZ에겐 뭔가 특별한 게 있다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해둘 말이 있다. 고백하자면 평소 특정 세대를 지칭하는 용어 사용을 탐탁지 않게 생각한다. 86세대, X세대, 밀레니얼세대, Z세대 같은 호칭들 말이다. 특정 연령 구간을 ‘아무개’ 세대로 호명하는 순간, 세대 구성원 사이의 다양성은 가려지고 공통점만 과장되는 담론 효과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아무개 세대론은 특정 세대에 대한 일말의 통찰력을 제공할 수도 있지만 그만큼 일반화의 위험성도 존재한다. 실제로 세대론이 사용되는 방식은 혈액형 성격설만큼 비과학적일 때가 많고, 무엇보다 대중심리적 편견을 강화할 우려도 있다.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 말 아닌가. 세대론에 대해 부정적이면서 MZ세대에 대해 이야기하겠다니. 나의 변명은 이것이다. ‘그들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MZ세대는 과도한 일반화의 위험을 무릅쓰더라도 그들 세대의 특성을 이야기할 만한 특별함을 지니고 있다. 그들이 새로운 인류로 진화 중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머지않은 장래에 기존 인류와 갈라서기를 명확히 시도할 것이고, 지구의 새로운 주인임을 주장할 것으로 보인다.

MZ세대의 특별함, 그들이 현생 인류를 대체할 것이라는 징후는 이미 곳곳에서 확인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그들의 부모 격인 86세대와 X세대는 MZ세대와의 소통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단순히 세대 간 견해차로 인한 갈등이나 ‘요즘 애들은 버릇(또는 개념) 없어’ 따위의 푸념 수준을 넘어선다. 분명 같은 언어로 대화하고 있는데 이해보다는 오해가, 교감보다는 벽이 쌓여가는 느낌이다. 분명 내 배 아파 낳은 자식인데 어떻게 머릿속에 저런 생각이 자리 잡게 됐는지, 왜 저런 식으로 행동하는지 도저히 가늠하기 힘든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내가 사는 집에도 한 개체가 서식하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 MZ 관찰기를 쓰는 이유

MZ세대가 기성세대와는 다른 뇌 구조, 다른 사고 체계를 지닌 게 점점 더 확실해지고 있다. 어찌 보면 당연지사다. MZ세대가 살아온 세상은 기성세대가 살았던 세상과는 전혀 다른 디지털 중심 세상이다. 다른 세상에서는 다른 사고 체계가 필요하다. 아날로그 시대 법과 제도가 디지털 시대에 맞지 않아 갱신이 필요한 것처럼 MZ세대는 새로운 시대의 삶을 조직할 새로운 사고 체계가 필요하고 만들어 가는 중이다.

내가 MZ세대에 대한 관찰기를 쓰기로 마음먹은 건 이들의 사고 체계가 기성세대와 얼마나 어떻게 다른지, 그것이 시대적으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정리해 보기 위해서다. 관찰기로 제목을 붙인 건 과학적으로 엄밀한 MZ세대 이론을 주창하는 것은 아니라는 자기 고백의 의미도 담겨 있지만 정말 말 그대로 관찰을 토대로 했기 때문이다.

대학 강단에서 20여년 강의를 해오면서 수많은 20대 시절의 MZ들을 만났다. 그들이 디지털 미디어를 통해 접하는 세상과 이해 방식이 기성세대와 다르다는 점도 점차 명확해졌다. 기성세대에겐 너무나 당연한 사고방식과 가치 체계를 받아들이지 않는 학생들이 많아졌다. MZ세대의 개인주의 성향이나 공정성 개념 논란은 기성세대 가치 체계와의 충돌을 보여주는 소수 사례에 불과하다. 내가 보기엔 앞으로 충돌은 더 잦아지고 그것도 전방위적으로 일어날 것이 확실하다.

MZ세대를 만나고 경험한 바를 관찰기라는 미명 아래 정리해 보려 한다. 소통, 교육, 문화, 정치 등의 갈래로 나눠 이야기를 풀어볼 심산이다. 커뮤니케이션 미디어 학자로서 세대 간 소통의 문제, 나아가 디지털 미디어 사회로의 이행 문제를 고민해 온 결과물을 담고자 한다.

# MZ와 의 소통 넘어 이별을 준비해야

이 작업이 ‘내셔널 지오그래픽: 포스트 호모사피엔스 신인류’ 편이 될 수 있으면 좋겠지만, 내가 만난 MZ들이 MZ세대 전체를 대표하지도 않고, 나 역시 86세대와 X세대 정체성을 반반씩 지닌 외부 세대라서 기껏해야 MZ세대 고찰의 편린에 그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해도 그 자체로 의미가 없는 건 아닐 것이다. 편린이 모이다 보면 언젠간 총체적 윤곽이 드러날 수도 있을 테니.

이미 우리 사회에는 수많은 장르의 MZ 관찰기가 유통되고 있다. 예컨대 MZ세대와의 소통에 능숙한 기성세대가 될 수 있는 알찬 꿀팁을 제공하는 처세술·리더십 장르가 대표적이다. 이 장르에서 치맥 회동은 대표적 상징 소통이 되고 있다. 유머 장르(또는 논란 장르) 관찰기도 유행이다. 문해력 논란, 사무실 막내 논란(칼퇴근, 휴가, 회식, 잠수, 이어폰 등) 같은 MZ 시리즈는 기성세대가 맞닥뜨린 당혹감을 유머로 승화시킨 결과물이다. 달리 말하면 참새, 최불암, 사오정, 만득이 시리즈에 익숙한 아날로그 인간의 디지털 인간 대응 전략의 일환이다. 그렇다고 MZ세대가 수세만 취하고 있는 것만도 아니다. 오히려 꼰대 담론이나 아재 담론 등으로 강력하게 맞서는 형국이다.

세대 간 담론 투쟁이 낯선 풍경도 아니고 문제가 되는 것도 아니다. 담론 투쟁도 넓게 보면 소통의 일환이다. 모든 세대는 공존기 투쟁 과정을 거쳐 세대교체를 이뤄내고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간다. 다만 아날로그 세대에서 디지털 세대로의 단절적 이행이라는 현하의 세대교체가 지닌 인류사적 의미를 생각할 때 좀 더 진지하게 이 과정을 다뤄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기성세대는 아날로그 시대 인류의 지식, 기술, 경험을 신세대 디지털 인류에게 온전히 전승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신인류는 기성세대의 자산을 흡수하고 소화해 새로운 사회 구축의 기반으로 삼아야 한다. 추억은 만남보다 이별에 남는다고 했다. 아날로그 세대 인간들은 디지털 인간인 MZ세대와의 아름다운 마지막 동행(또는 투쟁)과 이별을 준비할 필요가 있다.

홍종윤 서울대 BK교수·언론정보학과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