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세 이상 텔로미어 짧아지면 치매·노인 우울증 온다

국민일보

60세 이상 텔로미어 짧아지면 치매·노인 우울증 온다

노화 속도 결정하는 ‘생체 시계’
길이 짧을수록 노화 속도 빨라
음주·흡연·비만·스트레스 영향
주관적 우울증 검사 등 필요

입력 2023-03-27 20:29
생체 시계인 텔로미어는 노화 속도를 결정한다. 최근 텔로미어 길이 단축과 노년기 질병 발생의 상관성을 밝히는 연구들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게티이미지

우리 몸에는 노화 속도를 결정하는 ‘생체 시계’가 있다. 바로 유전정보(DNA)가 담겨있는 염색체의 끝 부위에 존재하는 ‘텔로미어(Telomere)’다. 세포가 분열할 때마다 텔로미어의 길이는 조금씩 짧아진다. 통상 사람이 태어나면 처음 텔로미어의 길이는 8.5~13.5kbp(kilo base pair)정도 된다고 보고돼 있다. 선행 연구에 따르면 나이가 한 살 증가할 때마다 텔로미어 길이는 약 30~35bp씩 줄어든다. 나이들수록 꾸준히 줄어 60세가 지나면서 텔로미어 평균 길이는 5~6kbp 정도에 이른다. 알츠하이머성 치매 환자들은 나이가 한 살 늘 때 텔로미어 길이가 정상인의 배 가량인 60bp씩 더 급격히 감소한다고 알려져 있다. 대개 텔로미어 길이가 5kbp 정도 되면 사람 수명이 거의 다 됐다는 한계점으로 본다.

텔로미어 길이가 짧을수록 노화 속도가 빠르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관련 연구도 활발하다. 텔로미어 길이를 측정해 전반적인 노화 정도를 평가하고 신체 나이와 구별되는 ‘생체 나이’를 예측하는 검사도 보급돼 있다.

근래엔 텔로미어 길이와 질병의 상관성을 밝히려는 노력도 많이 이뤄지고 있다. 최근 노인 텔로미어 길이의 단축과 초기 주관적 우울증 및 인지 불만의 연관성을 밝힌 연구도 그 중 하나다. 특히 새롭게 부상한 개념인 ‘주관적 인지 불만(cognitive complaint)’에 대한 학계 관심이 높다. 주관적 인지 불만은 향후 경도 인지 장애(치매 전단계)나 치매로 이어질 수 있다. 실제 한양대구리병원 신경외과 한명훈·신경과 고성호 교수팀의 관련 연구 논문은 미국 노인학회지(Aging journal) 최신호의 표지로 실렸다. 노인 건강검진 시 텔로미어 길이를 측정하면 향후 생길 수 있는 치매나 노년기 우울증을 미리 예측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염색체 말단 부위에 존재하는 텔로미어 형상. GC지놈 제공

연구팀은 치매나 주요 우울증 진단을 받은 적 없고 암·심장질환 등 주요한 신체적 질병이 없는 비교적 건강한 60~79세 137명을 대상으로 혈액검사를 통해 텔로미어 길이를 쟀다. 텔로미어 길이 측정은 보통 혈액 속 백혈구를 활용한다. 그 결과 대상자들의 텔로미어 길이가 상대적으로 짧은 경우 주관적 인지 불만, 또 노인 우울증으로 진행될 수 있는 주관적 우울감 발생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확인됐다.

구체적으로는 노인에서 주관적 우울증을 측정하는 기분척도(GDS-K)가 1점 증가할 때마다 텔로미어 길이는 약 64bp 감소했고 인지 불만을 측정하는 CCI 점수가 1점 증가할 때마다 텔로미어 길이가 대략 144bp 줄어들었다. 또 면역물질인 인터루킨-6 수치가 1씩 증가할 때마다 텔로미어 길이가 약 85bp 감소하는 것으로 관찰됐다. 인터루킨-6이 노인 우울증이나 인지 장애와 연관있음을 보여준다.

주관적 인지 불만은 환자 스스로 평소 ‘깜빡깜빡한다’거나 ‘기억력이 떨어진다’고 인지하지만 주변 사람은 눈치채지 못하는 단계다. 인지 장애나 치매는 주변 사람이 환자의 이상 증상을 인식하고 병원에 데려 오는 경우가 많다. 일반적으로 주관적 인지 불만→경도 인지 장애→치매로 진행된다. 한명훈 교수는 27일 “이전 연구들을 보면 노인에서 주관적 인지 불만이 있는 경우 그렇지 않은 노인에 비해 3년 후에 치매로 진행될 가능성이 3.5배 높다”고 설명했다.

‘매사에 흥미나 즐거움이 거의 없다’ ‘기분이 가라앉거나 희망이 없다고 느낀다’ 등의 주관적 우울증이 진행돼 우울감이 더 심해지고 극단적 선택 생각 및 절망감 등을 갖게 되면 주요 우울장애로 진단된다. 주관적 우울 증상이 있는 노인에서 주요 우울장애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는 보고는 이미 나와 있다.

한 교수는 “60세 이상에서 텔로미어 길이가 짧게 나온 경우 주관적 인지 불만이나 우울증 검사를 선별적으로 시행해 볼 필요가 있다”며 “고위험군으로 분류될 경우 먼저 가족에게 알려 관심을 유도하고 현재까지 나온 여러 노인성 우울증이나 인지 개선 프로그램에 적극 참여하거나 필요 시 예방적 약물 치료를 일찍 시작함으로써 치매나 노년기 우울증 발생을 늦추거나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민간 노인 건강검진에선 텔로미어 측정 항목을 선택할 수 있으며 의료기관 의뢰를 받아 GC지놈, SCL헬스케어, EDGC 등 전문기관이 검사를 수행하고 있다. 일부 기관은 텔로미어 검사를 통해 신체 나이와 비교되는 생체 나이를 알려주고 그에 따라 노화 속도를 줄이는 건강관리 팁을 제공하기도 한다. 한 교수는 “향후 연구 데이터가 쌓이면 국민건강검진 항목에 포함시키는 것도 좋을 것”이라고 했다. 전문가에 따르면 텔로미어 길이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음주 흡연 신체활동 비만 당뇨 약물오남용 스트레스 등이다. 텔로미어가 짧아지는 것을 막기 위해선 좋은 음식(고구마 마늘 오렌지 연어 계란 양배추 케일 해조류 콩 등) 섭취, 매일 30분 이상 운동, 스트레스 해소, 과식 방지, 긍정적 생각 등이 권장된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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