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저출산 문제, 돈풀기보다 통합적 정책 설계로 풀어가야

국민일보

[사설] 저출산 문제, 돈풀기보다 통합적 정책 설계로 풀어가야

직장인 절반이 육아휴직도 못써
있는 정책이라도 제대로 진행하길
수요자 위한 부처 맞춤형 대책 필요

입력 2023-03-27 04:02

정부가 지난 15년간 280조원을 투입했음에도 지난해 합계출산율이 0.78명으로 역대·세계 최저를 나타낸 것은 우리나라의 대표적 고비용 저효율 정책 사례다. 천문학적인 돈을 투입해도 효과를 거두지 못한다는 것은 정책이 수요자의 눈높이에 맞지 않아 외면당하기 때문이다. 최근 발표된 몇몇 출산·육아 관련 지표는 정부 정책이 얼마나 뜬구름처럼 국민에게 체감이 되지 않는지 명확히 보여준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와 사무금융우분투재단은 남녀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육아휴직을 자유롭게 쓰지 못하는 직장인이 절반 가까이인 45.2%였다고 26일 밝혔다. 출산휴가를 마음대로 쓰지 못한다고 답한 직장인도 10명 중 4명(39.6%)에 이른다. 남녀고용평등법에 규정돼 있는 기본적 육아휴직마저 쓰지 못하는 마당에 아무리 돈을 풀어 대책을 세운다고 한들 어떤 효과를 가져올 수 있겠나. 게다가 육아휴직·출산휴가 등을 쓴 이들이 육아휴직 후 급여 삭감, 일방적인 휴가 일수 조정 등 부당한 대우를 당한 사례들도 소개됐다.

이러니 애를 둘 이상 낳는 것 자체가 모험이라는 소리를 듣기 십상이다. 실제 통계청의 ‘2022년 출생·사망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태어난 아이 중 첫째아는 15만6000명으로 5.5%(8000명) 늘면서 전체 출생아(24만9000명) 가운데 62.7%를 차지해 통계 작성 이래 최고를 기록했다. 반면 둘째아는 17%, 셋째아 이상은 21% 급감해 전체 출생아수 감소(1만2000명, -4.4%)에 일조했다.

정부가 최근 ‘근로시간 개편안’을 추진하려다 여론의 반발을 사 제동이 걸린 것도 이런 사회적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 지금의 근무제 하에서도 육아하기 힘든 판에 제도가 바뀌면 육아 환경이 더욱 악화할 것 아니냐는 게 청년들의 시각이다. 청년유니온이 최근 실시한 근로시간 개편 설문조사에서 한 근로자는 “일은 몰아서 할지 몰라도, 육아는 몰아서 할 수 없는 거잖아요”라고 답했다 한다. 정부는 귀담아 들어야 한다.

육아휴직이나 출산휴가를 쓰는 사람이 지금보다 10% 포인트만 높아도 출산율 제고에 도움이 될 것이다. 일회성 수당 지원에 돈을 쓰기보다 기업문화 개선, 정부의 육아시설 지원 등 기존의 정책 추진에서 미비한 것이 있는지부터 살펴봐야겠다. 아울러수요자의 다양한 요구를 수용하기 위한 부처별 통합 대책 마련도 필요하다. 대통령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의 김영미 부위원장은 최근 한 기고문에서 “부처 간 분절적 정책이 저출산을 막는 데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저출산은 일자리·교육·연금 등 다양한 정책과 연결돼 있는 만큼 통합적 정책 설계를 통해 국가 존망을 다투는 저출산 현상을 해결해야 할 것이다.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