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너에 대한 확신

국민일보

[세상만사] 너에 대한 확신

최승욱 정치부 차장

입력 2023-03-29 04:08

“이제는 법무부 장관 탄핵을 운운하고 있는데, 강도가 강도짓이 들통나자 경찰관에게 책임을 묻겠다는 것과 다름없는 행태다.” “대통령이 말씀하신 주 69시간제를 괴담이라고 하는데, 그러면 대통령은 대체 무엇이 되는 것인가.” 여당과 제1야당의 최고위원회 회의가 각각 열린 지난 27일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한 말이다. 여당 대표는 제1야당을 ‘강도’라고 물아세웠고, 제1야당 대표는 대통령을 ‘괴담 유포자’로 규정했다.

총선이 1년 앞으로 다가오자 그렇지 않아도 정치의 본령인 대화와 타협이 실종된 여의도에는 증오와 혐오의 감정이 더 커지는 것 같아 씁쓸하다. 그리고 그 이면엔 서로 “네가 나보다 잘하지 못할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는 묘한 자신감이 깔려 있음을 어렵지 않게 마주하게 된다.

여당의 시선에는 민주당은 이 대표의 사법적 문제로 인해 곧 자멸할 것이라는 확신이 서려 있다. 게다가 이른바 ‘개딸’(개혁의 딸)로 불리는 이 대표 강성 지지층의 공격적 행태로 인한 당 내분이 끊이지 않을 것으로 본다. 이 대표를 향한 계속된 수사와 재판 국면에서 ‘이재명 책임론’이 더 강하게 불면 끝내 민주당이 버티지 못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

야당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 대선 이후 1년간 계속된 여권의 정책 혼선이 내년 총선에서 ‘윤석열정부 심판론’을 폭풍처럼 일으킬 것이라고 믿고 의심하지 않는다. 초등학교 입학 연령 조정 논란에서부터 주69시간제 근로시간 개편 논란에 이어 강제징용 배상 해법 논란에 이르기까지 여권의 ‘실점 포인트’가 끝없이 펼쳐졌다는 것이다. 민주당 일각에서는 또 다른 의미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4월 방미에 대한 ‘기대감’마저 읽힌다.

정점은 지난 23일 양곡관리법 개정안의 국회 본회의 통과였다. 야당은 국민의힘의 극렬한 반대를 가볍게 물리치고 개정안을 처리했다. 국민의힘은 당연한 듯 윤 대통령이 ‘거부권(재의 요구권)’을 사용해 줄 것을 요구했다. 이를 지켜보는 국민은 답답하다. 특히나 여당의 주장도, 야당의 주장도 차분히 듣고 곰곰이 생각해보면 둘 다 일리가 있으니 더 환장할 노릇이다.

여당은 쌀 초과생산량을 정부가 의무적으로 매입하도록 한 개정안이 통과되면 수조원대의 세금이 매년 쌀 매입에 추가로 사용될 뿐 아니라 시장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초과생산이 상시화되고, 이로 인해 쌀값 하락과 농민소득 감소의 악순환이 반복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야당은 쌀값 하락으로 고통받는 농민을 위해서는 개정안의 조속한 시행이 불가피하다고 반박한다. 게다가 정부와 여당이 무조건 반대만 하고 개정안에 대한 논의와 심사에 불참해 어쩔 수 없이 본회의에서 처리할 수밖에 없었다고 항변한다.

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국민의 마음은 어떨까.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충분히 예상됨에도 법안을 처리해 정부에 ‘정치적 책임’을 넘긴 민주당에 대해 그리고 민주당이 강행처리할 것을 충분히 알면서도 비타협적 반대를 이어온 여권에 대해 국민은 어떤 판단을 내릴까. 아직까지 침묵하고 있는 다수 국민이 정말 바라는 것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네가 곧 실수할 것을 확신한다’가 아니라 ‘네가 결국은 국민을 위해 나와 대화하고 협의할 것을 확신한다’는 것이 국민의 바람임을 정치권도 모르지 않을 것이다.

총선이 1년쯤 남았다. 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는 아직 남아 있다. 본인이 득점하려 노력하기보다 상대의 실점을 기대하는 정치를 계속하다간 여당도 야당도 내년 ‘중간고사’에서 낙제를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최승욱 정치부 차장 applesu@kmib.co.kr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