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석운 칼럼] 저출산 늪에 빠진 한국

국민일보

[전석운 칼럼] 저출산 늪에 빠진 한국

입력 2023-03-29 04:20

과거 국가 주도 산아제한 정책
무능 무책임 최악의 인구 정책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 18년
출산율은 세계 최하위권 추락

선진국클럽 가입하자마자
국가소멸 걱정할 판

저출산 정책 주먹구구 나열식
엉뚱한 사업이 대책으로 둔갑

아이 낳고 기르는 일의 가치
온 사회가 존중하고 보듬어야

“덮어 놓고 낳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 “세 살 터울로 세 자녀만 35세 이전에 낳자.”(1960년대) “아들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70년대) “하나씩만 낳아도 삼천리 초만원.”(80년대)

과거 정부가 강력한 산아제한 정책을 밀어붙이면서 시대별로 내건 구호들이다. 이런 정책 덕분에 한국의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자녀 수)은 드라마틱하게 떨어졌다. 1960년 6.0명이었던 합계출산율은 1990년 1.5명으로 추락했다. 정부는 산아제한 정책을 1996년에서야 공식 폐기했지만 합계출산율은 반등 없이 급전직하로 감소했다. 급기야 2020년 0.8명으로 떨어지더니 지난해 0.78명을 기록했다. 합계출산율이 1명 이하인 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전 세계 최하위권이다. 한 국가가 인구 감소를 겪지 않고 유지되는 수준의 출산율을 의미하는 대체출산율(2.1명)은 물론 초저출산율 기준(1.3명)에도 턱없이 못 미친다. 한국은 3년 전부터 인구 감소국으로 전락했다.

40년 가까이 유지된 산아제한 정책은 최악의 인구 정책이었다. 민주화 이후에도 이를 바로잡지 않은 건 또 다른 패착이었다. 한국 사회가 지금과 같은 심각한 저출산 위기에 빠진 건 과거 정부들의 연속된 정책 실패가 부른 참사다. 인구구조 변화가 가져올 장기적 파급 효과를 따져보지 않고 국제 동향에도 눈을 감은 무능과 무책임의 극치다.

2000년대 들어 저출산 기조를 바꾸기 위해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2005년)이 제정됐고,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설치됐으며, 저출산고령사회기본계획이 네 차례나 수립됐지만 해마다 출생아 수는 감소했다. 2000년만 해도 64만명이었던 출생아는 2020년엔 절반도 안되는 27만명으로 줄었다. 지난해에는 24만9000명으로 떨어졌다. 이런 추세라면 향후 10년 안에 적극생산연령(25~59세) 인구가 320만명 감소한다. 부산시(336만명) 크기에 육박하는 인구가 사라지는 것이다. 50년 후에는 한국의 전체 인구가 현재의 70% 수준으로 쪼그라든다.

전 세계에서 유례가 없을 정도로 가파른 인구 감소의 폐해와 부작용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인구절벽처럼 뚝뚝 떨어지는 학령인구 감소로 초중고는 물론 대학까지 많은 학교들이 통폐합 압력을 받을 것이다. 교사 채용은 축소되고 기존 교사의 명예퇴직 유도 등 구조조정이 단행될 수도 있다. 입대할 나이의 젊은이가 급격히 줄면서 징병제의 근간이 흔들리게 될 것이다. 청년세대의 노인 요양 부담은 더욱 늘어나고, 연금 고갈 시기는 점점 앞당겨질 것이다. 잠재성장률은 2%에서 1%대로 추락할 수 있다.

역대 정부가 저출산 기조를 바꾸기 위해 280조원이나 투입했다지만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주먹구구식이다. 지난해 집행된 예산만 79조원이었는데 부처별로 조율되지 않은 사업들이 백화점식으로 나열되는 수준이었다. 일부는 저출산고령화 대책으로 보기에는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정책도 있었다. 교육부의 낡은 학교 건물 교체 사업이 저출산 대책으로 둔갑해 1조5000억원이 증액되기도 했다. 3000억원짜리 산학협력 육성사업이 저출산 대책이었다니 한심하다. 그에 비하면 출산장려금이나 육아휴직수당 등 보조금들은 미미했다.

반면 지난해 처음 도입된 ‘3+3 육아휴직제’는 젊은 부부들의 반응이 좋았는데 이런 건 과감히 확대할 필요가 있다. 생후 12개월 미만의 자녀를 둔 부모가 각각 3개월씩 휴직할 수 있고 이 기간 통상임금의 100%(월 300만원 한도)를 지급받는 제도가 도입되자 육아휴직자가 1년 만에 2만명(18.6%)이나 늘었다. 지원 대상과 한도, 기간을 더 늘리면 좋겠다. 프랑스에서는 육아휴직을 1년까지 신청할 수 있고 이 기간 통상임금의 85%를 소속 회사가 아닌 정부가 운영하는 가족수당기금에서 지원한다. 프랑스는 1993년 합계출산율이 1.65명으로 떨어지자 이후 과감한 출산장려정책을 펼쳐 2020년 합계출산율을 1.85명으로 끌어올렸다.

정부는 지금부터라도 저출산 위기 극복을 위해 국가적 역량을 모아야 한다. 인구 정책은 한 세대 이상을 바라보는 긴 호흡으로 접근해야 한다. 국가소멸 위기를 벗어나려면 정부 정책도 중요하지만 민간의 참여가 관건이다. 기업은 물론이고 한국 교회도 아이를 낳고 기르는 가치의 소중함을 일깨우기 위해 힘을 보태면 좋겠다.

전석운 논설위원 swchun@kmib.co.kr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