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로 내리는 커피] 백년 전 커피와 당구의 경쟁

국민일보

[역사로 내리는 커피] 백년 전 커피와 당구의 경쟁

이길상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육학과 교수

입력 2023-04-01 04:03

요즘 음료계의 커피 인기에 견줄 만한 것이 스포츠 분야에선 당구다. 국내외 당구 대회도 많고, 텔레비전 스포츠 채널을 돌리다 당구 중계방송을 만나는 것도 쉬운 일이다. 이 인기를 반영해 전국 당구장이 2만개를 넘어섰다. 올해로 10만개를 넘어선 카페 인기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한국의 당구 인프라 수준은 세계 최고에 이르렀다.

당구의 기원을 살펴보면 이것 역시 커피와 비슷한 모습이 보인다. 커피와 당구는 비슷한 시기에 탄생했다. 15세기였다. 당구는 프랑스에서 귀족이나 왕실 사람들이 즐기는 게임으로 출발했다. 처음엔 크로케와 비슷하게 잔디 위에 구멍을 만들고, 여기에 공을 넣는 게임으로 출발했다. 프랑스에서 시작된 당구는 곧 바다 건너 영국으로 전해졌다. 문제는 날씨였다. 안개가 잦고 비가 자주 내리는 영국에서 작은 공으로 밖에서 하는 스포츠는 불편했다. 결국 당구 장소는 실내로 옮겨졌다.

실내로 옮겨진 후 전용 당구대가 만들어졌다. 처음부터 나무로 만든 테이블에 녹색 천을 씌웠다. 비록 실내지만 잔디 위에서 즐기는 느낌을 유지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공이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가장자리에 간단한 턱이 만들어졌다. 마세(maces)라고 부르는 나무 막대기로 공을 미는 방식의 게임이었다. 당구는 19세기에 영국에서 미국으로 건너가 크게 유행했다.

우리나라에 당구대가 처음 놓인 곳은 개항장 제물포의 외국인 전용 호텔이었다. 1880년대 초반이었다. 외국인 손님을 맞이하기 위한 시설이었다. 이어 정동의 외국인 밀집 지역에 사교용 당구 시설이 설치됐다. 개인 저택에 설치됐기에 일반인이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은 아니었다. 1910년대에는 고종과 순종이 창덕궁과 덕수궁 등 궁궐에 당구대를 설치해 여가를 즐겼다.

일반인을 위한 당구장이 문을 연 것은 1924년이었다. 광통교 거리에 일본 와세다대 유학을 다녀온 조선인 임정호씨가 당구장 ‘무궁헌’을 열었다. 무궁헌은 출입에 신분 제한이 없었지만 비용이 만만치 않아 이용객들은 주로 여유 있는 인텔리 계층 남성들이었다. 무궁헌 이용 인물로는 윤치호, 유진오씨가 유명하다. 귀족 이완용의 아들과 조카, 음악가 홍난파, 영화인 나운규도 당구 애호가였다. 무궁헌에 이어 종로1가와 2가 일대에는 조선인들이 출입하는 당구장이 하나둘 늘어갔다.

남성들이 출입하는 당구장에도 보조원인 여성 웨이트리스가 있었다. 흥미로운 것은 당시 당구장과 웨이트리스 유치 경쟁을 했던 곳이 1920년대 후반에 유행하기 시작한 카페와 다방이었다는 점이다. 무궁헌에서 이름을 떨치던 스타 웨이트리스 김춘자양이 1931년 5월 24일 인사동에 새로 문을 연 락원카페에 스카우트됐던 것이 좋은 사례였다. 이후 무궁헌이 문을 닫은 것을 보면 웨이트리스가 당구장이나 카페 영업에 미치는 영향이 작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백년 전 카페나 당구장에서 벌어졌던 웨이트리스 유치 경쟁과 유사한 경쟁이 요즘 재현되고 있다. 새로 등장하는 카페들이 커피의 맛이 아니라 시설이나 디저트로 경쟁하는 것이 그것이다. 바람직스럽지는 않다.

이길상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육학과 교수 leegs@a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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