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연의 K컬처] 타이트한 생활에 잠시 여유 주는 한국의 ‘삼겹살 문화’

국민일보

[김상연의 K컬처] 타이트한 생활에 잠시 여유 주는 한국의 ‘삼겹살 문화’

입력 2023-04-01 04:04
김치, 강남스타일, BTS, 영화 기생충 등 일과성 이벤트들에 머물렀던 세계의 관심이 이제 한국문화 전반으로 확대되고 있다. K컬처로 대변되는 국내외의 다양한 사회현상들, 그리고 그들의 명과 암을 사회과학적으로 관찰하고 반추해 봄으로써 한국문화의 본성을 재조명해본다.

게티이미지

과거 한 문화권에서 무엇을 주로 먹느냐 혹은 피하느냐는 주로 자연환경에 의해 좌우되었다. 마빈 해리스를 필두로 한 유물론적 문화학자들이 이를 잘 설명한다. 건조한 기후 탓에 먹을 것이 풍족하지 않은 중동에서는 양이 단백질의 주공급원이다. 주로 풀을 먹기 때문에 인간이 먹는 음식을 나누지 않아도 되고 건조한 날씨도 잘 버틴다.

그러나 양고기는 지방에 대한 인간의 보편적 욕구를 충족시켜주지 못한다. 지방하면 역시 돼지고기. 하지만 돼지는 중동에서 키울 수 없는 가축이다. 살갗이 그대로 노출되어 뜨거운 햇빛아래 오래 있지 못한다. 곧 자신의 배설물에 몸을 뒹굴어 자신의 피부를 보호하려 한다. 그래서 중동 사람들의 눈에 비친 돼지들은 불결한 짐승이며 또 종교적 터부의 대상이 된다. 돼지는 물이 풍족하고 해를 가려주는 나무들이 빽빽한 열대우림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허락된 축복이다.

허나 이것도 이제 옛날 얘기다. 무역을 통해 각양각색의 식재료들이 오늘도 대륙을 횡단 중이다. 우리가 맛볼 수 있는 음식의 종류를 제한하는 것은 오직 우리의 기호와 지불능력뿐이다. 따라서 한 사회에서 어떤 음식을 먹느냐는 이제 문화적·종교적 환경보다 개인의 취향을 더 크게 반영한다.

여기 멧돼지를 사냥해 먹고사는 한 부족이 있다. 이 부족 사람들은 어떻게 생겼으며, 또 어떤 성향일까. 여러분도 답을 적어보시라. 실제로 이는 문화심리학의 한 실험에서 학생들에게 물었던 질문이며, 흥미롭게도 학생들은 멧돼지의 생김새, 예를 들어 털이 많다 등을 그들의 모습에 투영하는 경향이 짙게 나타났다. 이것이 대표하는 명제가 ‘you are what you eat’, 즉 그 사람이 무얼 먹는지가 그·그녀의 정체성을 대변한다는 뜻이다. 소고기만 먹는 사람, 채식주의자, 비건, 삼겹살에 소주 좋아하는 사람, 생선과 회에 미치는 사람, 햄버거와 콜라를 즐겨먹는 사람, 찌개와 탕 없이는 못사는 사람 등 식성은 우리의 개성만큼 다양하다. 또 고르는 음식에 따라 여유있는 사람, 환경문제에 민감한 사람, 성마른 사람, 넉넉한 ‘인격’을 소유한 사람, 자기관리에 철저한 사람, 사람 만나기를 좋아하는 사람 등 상대방의 성향에 대한 흥미로운 추측들이 가능하다.

‘어떻게 먹느냐’에 대한 결정은 여전히 문화가 더 큰 힘을 발휘하는 듯하다. 삼겹살과 베이컨 혹은 포크벨리는 모두 같은 재료를 사용한다. 하지만 먹는 방식과 이를 둘러싼 사회적 맥락은 사뭇 다르다. 삼겹살은 불판에 올려 바로 구워 먹는 것이 일반적이다. 곁들여지는 음식도 다양하다. 마늘, 고추, 쌈장, 김치, 버섯, 상추, 깻잎, 파절이, 기름장, 생양파 등은 기본이고 지역 특색에 따라 맬젓, 콩나물, 명이나물, 떡, 두부, 미나리, 고사리 등이 추가되기도 한다.


요즘은 이를 혼자 즐기는 혼밥족도 있기는 하지만 한국에서 ‘삼겹살’은 주로 회식를 떠올리게 한다. 불판에 옹기종기 둘러앉아 함께 굽고 쌈싸고 하면서 이런저런 대화가 오간다. 이에 비해 베이컨은 조금 쓸쓸해 보인다. 계란, 식빵, 햄버거 번, 크로와상, 로즈마리 정도가 곁들여진다. 대게 프라이팬에 조리되기 때문에 요리하는 사람은 따로 있다. 일반 가정에서 먹는 간단한 아침 식사이다보니 시끌벅적한 저녁 삼겹살 먹는 분위기와도 크게 다르다.

한국인의 삼겹살에 대한 애착이 어디서 시작되었는 지에 대한 가설은 다양하다. 1970년대 일본에 수출하고 남는 돼지비계를 소비하며 생긴 애잔한 한국인의 식습관이라는 설, 80년대 동네 연쇄점에서도 쉬이 상하는 삼겹살을 보관 판매할 수 있도록 도와준, 요즘은 주로 아이스크림을 진열하는 냉동 쇼케이스의 보급이라는 설, 기름기가 많은 삼겹살 요리에 어울리지 않는 연탄이나 숯불 등 직화의 불편함을 날려준 ‘부루스타’의 발명이라는 설 등 흥미있는 이야기들이 많다.

그럼에도 한 가지 분명해 보이는 것은 한국인의 삼겹살 소비가 가지는 문화적 의미이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타이트’(tight)한 문화로 분류되어왔다. 세월이 지나면서 개인주의가 득세하며 이러한 성향이 다소 루즈(loose)해 지고는 있으나, 경제나 사회 시스템의 변화에도 문화적 전통은 쉽사리 바뀌지 않는다.

타이트한 문화권에서의 개인은 ‘롤플레이어’로 길러질 확률이 높다. 개인의 이익이나 정체성 추구보다 집단의 규범과 조화, 그리고 구성원들과의 ‘둥글둥글’한 관계가 강조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회에서 커뮤니케이션의 소재와 방식은 대개 관계와 사회적 맥락에 의해 정해진다. 우리는 하고 싶은 말이 아닌 ‘해야할 말’을 하도록 배워왔으며, 수직적 관계에서 이 해야할 말들의 가지 수는 특히 적어진다. 이러한 타이트한 문화적 공기는 상하를 막론하고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한국인들에게 적지 않은 부담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모든 문화에는 개인을 억누르는 만큼 그들을 해방시켜주는 출구가 있다.

삼겹살은 우리가 연기하던 타이트한 무대 위에서 잠시 루즈한 무대 뒤로 자리를 옮겨준다. 먹는다는, 다분히 원시적이고도 파괴적인 행위에 동참하는 동안 수직적 관계구조와 이를 채우는 타이트한 룰이 잠시 잊혀진다. 드디어 사람들은 하고 싶던 말들을 꺼낸다. 타이트하던 수직사회에 루즈하고 평평한 기운이 스미는 순간이다. 이것이 회식의 목적이며 이를 상징하는 것이 ‘소주에 삼겹살’일 것 같다. 원시적일수록 효과가 탁월하기에 비싼 소고기는 할 수 없는 일이다.


더 흥미로운 것은 연관어 분석 결과 삼겹살이 ‘아침’ ‘점심’ ‘저녁’ ‘일상’ ‘엄마’ ‘친구’ ‘모임’ ‘사진’ ‘식사’ ‘가족’ 등 우리의 가장 친숙한 관계나 순간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삼겹살 ‘회식’은 직장 동료들을 자신의 일상에서 다시 마주하며, 그들을 오랜 지인으로 착각할 수 있도록 하는 훌륭한 정서적 공간을 마련해 주는 셈이다.

타이트하고 집단주의적이던 한국문화는 꾸준히 루즈한 개인주의 문화로 이행하고 있다. 수직적 구조를 깨기 위한 도구로서의 삼겹살은 그 의미가 점차 사라져가는 듯 보인다. 바람직한 현상이다. 그럼에도 삼겹살은 여전히 우리의 일상 깊숙이 남아 변화하는 한국문화의 또 다른 면면을 비춰줄 것으로 기대한다.

김상연 광운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겸 한국문화데이터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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