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장미 한 줄기에 돋은 싹을 보라

국민일보

[살며 사랑하며] 장미 한 줄기에 돋은 싹을 보라

신미나 시인 겸 웹툰작가

입력 2023-03-31 04:05

꽃은 생애의 ‘절정’이다. 꽃을 받는 건 절정의 순간을 선물받는 것과 같다. 얼마 전 축하 자리에서 받았던 꽃다발은 특별했다. 친구가 내 책의 표지 색깔에 맞춰 꽃다발을 주문해 온 것이다. 다양한 색이 골고루 어우러진 꽃다발은 꽤 묵직했다. 먼 곳까지 꽃다발을 들고 온 친구의 마음이 고마워서 꽃이 시드는 시간을 하루라도 늦추고 싶었다.

종류별로 꽃을 분류해서 화병에 나눠 꽂았다. 물을 갈아주고 줄기 아랫부분을 사선으로 잘랐다. 방 안에 짙은 풀내가 가득 찼다. 그중에 장미 한 줄기가 눈에 띄었는데 줄기가 제법 굵고 싱싱했다. 한 줄기만 따로 물꽂이를 해놓고 통풍이 잘되는 창가에 두었다. 그 후로 생기를 잃고 시드는 기미가 보이자 얼마간 잊고 지냈다.

며칠이 지났을까. 커튼을 걷다가 놀랐다. 물꽂이 해두었던 장미에 새싹이 돋은 것이다. 톱니 모양의 잎사귀가 앙증맞았다. 한 뼘은 까맣게 말랐고, 한 뼘은 살아있었다. 삶과 죽음이 한 줄기 안에 공존했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줄기에서 새싹이 올라오는 것을 보니 새삼 뭉클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지난겨울을 힘들게 지나왔기 때문일까. 제때 찾아온 봄의 기별이 행운이라도 되는 듯 반가웠다.

고양이 앞니만큼이나 아주 조그마한 잎사귀를 본다. 그 속에 장미의 개수와 잎사귀의 배열과 색이 결정된다니…. 자연은 장미 한 줄기에서도 회복의 질서를 보여준다. 눈길을 주지 않아도 꾸준하고도 끈기 있는 힘으로 새싹을 밀어 올린다.

새 물을 갈아주며, 나는 처음 썼던 문장을 고쳐 쓰고 싶어졌다. 꽃 피는 순간만이 절정이 아니라고. 새싹이 돋고, 잎사귀가 넓어지고, 꽃이 시드는 매순간이 삶의 절정이라고.

신미나 시인 겸 웹툰작가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