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경기가 끝나도 인생은 계속된다

국민일보

[세상만사] 경기가 끝나도 인생은 계속된다

임세정 문화체육부 차장

입력 2023-03-31 04:08

언제 꽃샘추위가 왔었냐는 듯 봄기운이 완연하다. 흐드러지게 핀 벚꽃과 함께 스포츠를 소재로 한 영화들이 마치 약속이나 한 듯 관객들을 찾는다. 따뜻해진 날씨에 밖으로 나온 이들이 영화관으로 향할지 궁금해진다.

400만 관객을 돌파한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다음 달 5일 아이맥스로 개봉한다. 업계 꼴찌였던 나이키가 NBA 신인 마이클 조던에게 모든 것을 걸고 게임체인저가 되는 과정을 그린 ‘에어’, 장항준 감독의 신작 ‘리바운드’도 같은 날 공개된다. 다음 주자는 2010년 홈리스월드컵에 출전한 국가대표팀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한 ‘드림’이다.

‘리바운드’는 2012년 원주에서 열린 제37회 대한농구협회장기 전국 중·고교농구대회에서 파란을 일으킨 부산중앙고 농구부의 도전기를 담아냈다. 당시 부산중앙고 농구부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최약체였다. 대충 구색을 맞추기 위해 공익근무요원 출신의 강양현 코치를 선임한 학교는 월급을 주는 것조차 아까워했다.

강 코치는 부상을 입은 후 꿈을 접고 길거리농구를 하던 선수, 중학교 시절 내내 벤치만 지키던 선수 등 6명을 모아 팀을 꾸렸다. 대회에 출전한 이 팀의 목표는 오직 예선을 통과하는 것이었다. 설상가상으로 경기 중 한 명이 부상을 당했지만 교체 선수는 없었다. 이제 5명뿐이었다. 선수들은 그렇게 8일간 쉬지 않고 뛰었다. 매 경기가 힘겨운 투혼이었다. 한 번, 또 한 번…. 이들이 일궈낸 우승의 가치는 우승이라는 단어에 담기지 않았다. 결승전에서 부산중앙고는 ‘전국 최강’ 용산고에 패했다. 이들은 ‘헝그리 베스트 5’라는 수식어를 얻었다. 그야말로 만화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었다.

스포츠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경우가 많다. 임순례 감독의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2008)도, 베넷 밀러 감독의 ‘머니볼’(2011)도, ‘에어’와 ‘리바운드’도 마찬가지다. 관객들은 마음만 먹으면 대략적인 스토리를 미리 파악할 수 있다. 결말은 꽉 닫혀 있다. 감동 포인트도 유추해낼 수 있다.

스포츠 영화의 전개는 대동소이하다. 대부분 언더독(경쟁에서 열세에 있는 약자)의 이야기다. 인정받지 못하던 선수나 팀이 한계를 극복하고 불가능에 가까운 기적을 만들어낸다. 도중에 크고 작은 시련들이 닥치지만 훌륭한 지도자, 조력자를 만난다. 러닝타임이 중반쯤에 도달하면 관객들은 각자 머릿속에 마지막 장면을 그리기 시작한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스포츠 영화를 보는 이유는 농구나 야구, 축구를 좋아해서만은 아니다. 인생과 닮아 있기 때문이다. 스포츠 영화에 반전은 없을지라도 ‘각본 없는 드라마’가 주는 감동은 보장돼 있다. 인생에 희로애락이 있듯 스포츠에도 희로애락이 있다.

인생도 경기도 끝은 알 수 없다. 인간은 끊임없이 또 다른 시련과 또 다른 한계에 부딪친다. 영화 ‘리바운드’에서 강 코치는 결승전을 앞둔 선수들에게 “농구가 끝나도 인생은 계속된다”고 말한다. 당장은 실패한 것처럼 보여도 농구 자체를 즐기면서 앞으로 나아가길 포기해선 안 된다는 뜻일 것이다.

복수극이 주는 짜릿함, 회귀물이 주는 대리만족은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정직하게 땀 흘리고 한계를 뛰어넘는 모습은 뭉근한 감동을 준다. ‘슬램덩크’의 안경선배가 3점슛을 성공한 것처럼 내게도 필살기가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게 한다. 우린 어쩌면 늘 작은 기적을 소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팬데믹 이후 냉기를 떨쳐내지 못하는 극장가에 스포츠 영화들이 봄을 데려올지는 미지수다. 사람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콘텐츠를 소비할 수 있게 됐고, 지갑을 열기는 좀처럼 쉽지 않다. 그래도 혹시 지친 일상에 응원이 필요하다면 가슴 뜨거워지는 영화를 한 편 보는 건 어떨까.

임세정 문화체육부 차장 fish813@kmib.co.kr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