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 세상에 대한 두려움을 넘어

국민일보

[바이블시론] 세상에 대한 두려움을 넘어

성태윤(연세대 교수·경제학부)

입력 2023-03-31 04:02

현재 한국 경제는 저성장의 고민에 빠져 있다. 경제 위기 때가 아니면 찾기 어려운 1%대 성장률이 예측된다는 문제뿐만 아니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그나마 1.8%로 예측했던 올해 성장률을 최근 1.6%로 더 낮췄다는 점에서 한국 경제의 미래에 대한 우려는 더욱 커져 있다. 물론 0.2% 포인트 하락을 큰 문제가 아닌 것처럼 생각할 수도 있고, 이제는 우리도 어느 정도 잘살게 됐으니 과거처럼 경제 성장에 얽매일 필요가 없지 않은가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성장률이 낮아진다는 것은 단순히 경제적인 삶의 향상 속도가 떨어졌다는 것만 아니라 도덕적, 전인간(全人間)적 삶의 황폐화로 나타날 수도 있다는 측면에 주목해야 한다. 미국 남북전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천을 분석하며 경제 성장과 인류가 지향하는 가치의 관계에 관해 탁월한 연구를 한 벤저민 프리드먼 하버드대학 경제학과 교수는 2005년 ‘경제 성장의 도덕적 결과’라는 기념비적 저서를 발표한 바 있다. 핵심은 ‘경제 성장, 즉 소득의 증가가 보다 개방되고 민주적인 사회를 만드는 근본적 원동력이다’라는 것이다. 개방되고 민주적인 사회의 주요 가치로 생각될 수 있는 기회의 확대, 다양성의 수용, 사회적 이동성, 정의에 대한 확신, 민주주의를 향한 헌신을 이끌어내는 가장 본질적 요소가 결국 경제 성장에 의해 결정된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특히 흥미로운 것은 단순히 어떤 사회나 국가가 부유한지 아닌지, 즉 생활수준의 높낮이가 도덕적 결과를 결정하는 요소가 아니며 실제로 경제가 성장하고 있는지가 중요하다는 점이다. 아무리 생활수준이 부유한 국가라도 경제가 성장하지 못한다면 인류가 지향하는 가치를 향해 나아갈 수 없고 퇴행적 모습을 보였다는 내용이다. 다시 말해 경제가 성장을 멈춘다면 아무리 부유한 사회에서도 민주적 가치가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뜻이다.

흔히 선진국으로 지칭하는 국가에서도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훼손하는 정치적 지향점을 내세우거나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세력이 경제가 성장하지 못할 때마다 등장한 것이 사실이고, 그것이 우리가 관찰한 도덕적 결과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개별 국가는 물론이고 전 세계적으로도 경제가 성장하지 못할 때 전쟁과 국제적 갈등에 휩싸였던 역사가 놀라운 것은 아니다. 후발 제국주의 국가와 저성장 식민지 문제에 놓였던 제1차 세계대전이 그렇고, 대공황과 세계적 경기 침체에 시달린 제2차 세계대전이 그러하다. 스태그플레이션으로 세계적 물가 상승과 경기 침체에 시달리던 1970년대와 80년대 초반 중동전쟁, 베트남전쟁, 이란·이라크 전쟁 등 수많은 국제적 규모의 전쟁이 발생했던 게 우연한 것은 아니다.

최근 우리 사회 내부적으로도 그렇고 국제사회에서 각종 갈등과 전쟁 같은 사태가 증가하고 있는 상황을 보면서 이런 일련의 과정이 전 세계적 저성장 구도와 깊은 관련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에 두려움이 생기기도 한다. 하지만 이사야 41장 10절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함께 함이라’는 말씀처럼 그 해결책을 알고 있다면 두려워할 일은 아니다. 다만, 현재 우리의 낮아지는 성장률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일 게 아니라 결국 성장이 사라진 세상을 만들지 않겠다는 절실함을 가지고 노력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경제 성장을 통해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회복하는 삶 그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지금의 갈등으로 인해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잃어버리는 현상 자체는 두려울지 몰라도, 그 두려움은 가장 기본적인 해결법을 알고 있고 우리가 넘어설 수 있는 두려움이기에 너무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성태윤(연세대 교수·경제학부)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