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주 칼럼] 성평등 인식 없이 저출산 해결 어렵다

국민일보

[한승주 칼럼] 성평등 인식 없이 저출산 해결 어렵다

입력 2023-04-05 04:20

내 몸 하나 추스리기 어려운
초경쟁 사회에 결혼 출산은 꿈
이대로 가다간 인구 소멸 우려

정책 쏟아냈지만 대부분 재탕
틀 깨는 과감함이나 감동 없어
실질 도움되는 선택·집중 필요

가장 중요한 것은 인식 전환
여성의 양육 책임 전제로 하는
대책은 문제 해결 도움 안 돼

우리 청년들은 결혼을 안 하려고 하고, 하더라도 아이를 낳지 않으려 한다. 아이를 낳아도 하나만 낳으려고 한다. 그 결과 대한민국은 전 세계에서 출산율 최하위권의 나라가 됐다. 경제활동인구는 줄어드는데 이들이 부양해야 할 노령인구는 늘고 있다. 이대로 가다간 지방 도시부터 소멸하기 시작해 국가 자체가 없어지는 최악의 상황에 이를 수도 있다. 지난주 윤석열 대통령이 “저출산 문제는 중요한 국가 어젠다”라며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회의를 직접 주재한 건 의미가 크다.

위원회에서 내놓은 ‘저출산·고령사회 정책 과제 및 추진 방향’ 보고서를 찬찬히 읽어봤다. 지난해 태어난 아이는 약 24만명. 한 세대 전인 1991년 71만명과 비교해 3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마음 놓고 결혼·출산·양육을 선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일과 육아를 병행하기 어렵고, 육아로 인한 경제적 부담도 크다. 미국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센터가 17개 선진국을 대상으로 실시한 ‘무엇이 삶을 의미 있게 하는가’라는 조사에서 한국은 유일하게 ‘물질적 풍요’를 첫손에 꼽았다. ‘가족’을 선택한 대부분의 나라와는 달랐다. 고용 불안으로 내 몸 하나 추스르기도 힘든 세상이다. 초경쟁 사회에 내몰린 이들은 결혼·출산보다는 생존을 더 중요하게 인식하고 있다.

정부는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 신혼부부 주거 공급, 자금 지원, 부모 급여 지급의 정책을 쏟아냈다. 하지만 기존의 틀을 깨는 과감함은 보이지 않는다. 대부분 이미 나왔던 내용의 반복이다. 이 정도로는 젊은 층을 끌어당길 유인책이 되지 못한다. 예를 들어 신혼부부 전세자금 대출 자격을 기존 소득 6000만원 이하에서 7500만원 이하로 늘린다 해서 갑자기 안 낳을 애를 낳을 것 같진 않다. 공공주택 다자녀 기준을 2자녀부터로 한다는 게 눈에 띄지만 이 역시 글쎄다. 정부가 2006년부터 2021년까지 무려 280조원을 투입했으나 큰 효과는 없었다. 백화점식으로 과제를 나열하다 보니 실질적으로 필요한 임신·출산·돌봄에 대한 직접 지원이 부족했다. 다른 걸 줄이더라도, 아이가 태어나서 18세가 될 때까지 매달 50만원 이상을 현금으로 지원하는 식의 방안이 더 낫다.

더 중요한 건 인식 전환이다. 특히 성평등 인식이다. 여성을 양육의 1차 책임자로 보는 시각이 사라지지 않는 한 ‘독박 육아’라는 말도 없어지기 힘들다. 여성이 출산과 육아로 노동시장에서 이탈될 것이라는 공포가 해소되지 않는다면 출산율이 높아지길 기대하기 어렵다. 이번 대책 중에 ‘성평등’이라는 말이 사라진 건 그래서 유감이다. 문재인정부 때는 성평등 육아, 성평등 교육, 고용 성평등이 주요 의제로 들어갔다. 비록 실천은 안 됐지만. 그런데 이번엔 아예 명문화도 안 됐다. 청년세대 가치관은 바뀌었다. 남녀 모두 ‘일’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 자기 일을 하면서 자아 성취를 원하는 건 남녀 모두 똑같다. 여성이 양육을 책임진다는 전제로 이것도 해주고 저것도 해줄게 하는 식의 해법은 도움이 안 된다. 남녀가 아이를 함께 기르는 공동육아, 남자의 육아휴직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문화가 정착돼야 한다.

북유럽에선 한 손엔 유모차, 한 손엔 커피 잔을 들고 다니는 젊은 ‘라떼파파’를 쉽게 볼 수 있다. 스웨덴은 1974년 세계에서 처음으로 아빠의 육아휴직 제도를 도입했다. 스웨덴이라고 처음부터 수월했던 것은 아니다. 20년이 지나도록 아빠 육아 휴직자가 전체의 10%에 불과했다. 스웨덴 정부는 1995년 과감한 정책을 내놨다. 엄마는 사용할 수 없고 아빠만 쓸 수 있는 ‘아빠의 달’이라는 육아휴직 제도를 마련했다. 효과는 확실했다. 시행 바로 다음 해부터 4세 이하 아이를 가진 아빠의 77%가 한 달 이상의 육아휴직을 사용했다. 일본의 한 기업은 직원이 육아휴직에 들어가면 동료들에게 각각 최대 100만원씩을 준다. 응원 수당이다. 신선하고도 파격적이다. 그렇다면야 옆자리 동료의 임신은 부담이 아닌 축하할 일이 될 것이다.

저출산 고령화는 해법을 찾기 어려운 문제다. 그렇다 해도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이고, 결국 현장에 답이 있다. 결혼을 미루고 있는 청년들, 출산을 고민하는 이들, 육아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사람들, 이들을 직접 만나 수많은 고민을 들어보라. 걷어낼 거 다 걷어내고 이들이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선택해 집중적으로 지원하라. 그러다 보면 이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답이 보일 것이다.

한승주 논설위원 sjha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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