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부장적 권위와 억압의 피막을 벗기다

국민일보

가부장적 권위와 억압의 피막을 벗기다

스위스 여성 작가 하이디 부허… 아트선재센터에서 아시아 첫 개인전

입력 2023-04-18 20:48
서울 아트선재센터의 아시아 첫 개인전에 스위스 여성 작가 하이디 부허의 설치 작품이 전시돼 있다. 부허는 가부장적인 분위기를 보여주는 건축적 공간에 고무 라텍스로 피부를 입혀 떼어낸 뒤 이처럼 설치물로 보여주는 작업을 했다. 아트선재센터 제공

전시장에 피부를 연상시키는 누런 커튼이 방 모양으로 내걸렸다. 방이 연상 되는 이유는 그 작품이 입방체 형태로 걸렸고 세월의 더께가 쌓인 듯 색이 누래서 들기름 먹인 우리나라 전통 장지 장판을 떠올리게 해서다.

서울 종로구 율곡로 아트선재센터에서 스위스 여성 작가 하이디 부허(1926∼1993)의 개인전을 연다. 부허는 페미니스트로 분류될 수 있는 작가다. 그럼에도 한 세대 어린, 독일 출생의 미국 작가 키키 스미스(69)가 페미니즘 미술가로 국제적 명성을 얻는 것과 달리 묻혀 있던 진주였다. 아시아 첫 개인전인 이번 전시는 작품이 주는 강렬한 인상과 기법의 독창성이 감동을 던지며 한국 미술계에 묵직한 존재감을 던진다.

전시 제목 ‘하이디 부허: 공간은 피막, 피부’는 그녀의 작품 세계를 압축적으로 잘 설명한다. 서재, 부엌, 안방 등 모든 공간은 그곳에서 숨 쉬며 살았던 사람의 성별과 직업, 사회적 계층, 취향을 드러낸다. 심지어 그가 살아온 시대의 억압과 가치까지 배어 있다.

그렇게 보이지 않은 것들이 그 공간의 피부 아닐까. 그걸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 부허는 그런 질문에서 출발해 거실과 서재 등 특정 공간의 바닥과 벽에 풀을 바르고 천을 붙인 뒤 그 위에 고무 라텍스를 덧씌운다. 그러곤 그걸 벗겨내 우리 앞에 ‘이것이 집의 피부’라고 내놓는다. 부허를 페미니즘 미술가로 강력하게 자리매김하는 일명 ‘스키닝(skinning)’ 작업이다. 부허는 1970~80년대 이런 연작을 했다. 전시장에서 보이는 것은 천처럼 얇은 막이지만 고무 라텍스는 벽에 강력 밀착되어 잘 떨어지지 않기에 벗겨내기 위해서는 낑낑대며 힘을 줘야 한다. 그렇게 작업하는 영상도 전시장에 틀어 놨다.

부허가 이런 작업을 하는 모습을 담은 영상. 아트선재센터 제공

전시장 한가운데 누렇게 절어서 인간의 내장 같기도 하고, 장판 같기도 한 집의 피막이 시각적으로 관람객을 압도한다면 영상에서 들리는, 씩씩대는 부허의 거친 숨소리는 청각을 자극한다. 부허가 온힘을 다해 뜯어내고 싶었던 실체는 무엇이었을까, 장악하듯 한 가운데를 차지한 저 집의 피막은 누구 것일까. 그것은 스위스의 정신과 의사 빈스방거의 벨뷔 요양소 진료실에서 뜯어낸 피부다. 왜 빈스방거의 요양소였을까. 프로이트에 의해 히스테리의 전형으로 명명됐던 여성 ‘안나 O’를 아는지. 안나 O는 프로이트에 의해서는 가부장적 시각으로 재단됐지만, 또다른 정신과 의사 빈스방거의 치료를 받은 이후에는 오히려 남성적 편견에서 해방되며 페미니스트 운동가로 변신했다.

아버지의 서재, 조상이 대대로 살던 집의 피부도 낱낱이 벗겨졌다. 군인 출신 사업가인 아버지는 이혼하고 돌아온 딸 부허를 매몰차게 대했다. 스위스는 1971년이 돼서야 여성 참정권이 인정됐을 만큼 가부장적인 사회였다. 그런 시대적 가치에서 자유롭지 못한 아버지였다. 또 스위스는 남자의 공간과 여자의 공간은 문짝과 바닥 나무 무늬부터 달랐다. 남자의 공간에만 고급하고 정교한 무늬가 허락됐다. 그러니 영상 속에서 부허가 집에 피부를 만들어 바르고 온갖 힘을 다해 다시 뜯어내는 행위는 가부장사회에 항거하는 여성 해방의 퍼포먼스이다. 피부가 마침내 뜯겨지며 나오는 소리는 선동의 구호다.

부허는 취리히 미술공예학교에서 의상다자인을 전공했다. 예술적 동지였던 칼 부허와 결혼해 캐나다로 이주한 이후 1970년대 초 미국 뉴욕과 캘리포니아 등지에서 조각, 건축, 퍼포먼스를 융합한 작품을 선보였다. 심플하고 미래적인 디자인의 조각을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입는 조각’, 조개를 연상시키는 조각을 입고 해변에서 퍼포먼스 하는 ‘조개 조각’이 그 시절의 작품이다.

'입는 조각' 퍼포먼스가 실린 독일 하퍼스 바자 창간호(1969) 표지. 아트선재센터 제공

이혼은 하이디 부허가 페미니즘에 눈 뜨는 계기가 됐다. 이혼하고 고국 스위스로 돌아온 뒤 그녀가 처음 눈길을 둔 것은 잠자리였다. 껍질을 벗고서야 성충이 되는 잠자리는 ‘돌싱’이 아니라 완전한 솔로로 거듭나고자 하는 욕망의 투영이었을 것이다. 부허는 잠자리 모양의 옷을 만들어 입고 퍼포먼스를 했다. 뿐만 아니라 그 잠자리 옷을 액상 라텍스에 담근뒤 말려서 박제 처리했다. 또 모든 여성이 처한 사회적 조건으로 관심을 확장하며 부엌 등 여성의 공간에서 사용되는 사물인 앞치마, 베갯잇, 침대보 등을 액상 라텍스에 담근 뒤 말려 오브제화했다. 말년에는 해방의 근원으로써 물의 물성을 탐구하며 이를 회화, 설치 등으로 선보이는 작업을 했다. 대부분의 작업은 퍼포먼스와 조각, 회화, 건축적 요소를 일관성 있게 내포한다.

부허는 생전에는 미술계에서 비주류였다. 세상은 자신의 욕망을 들여다보고 사회적 억압에 대해 싸우고 인간 해방은 무엇인지 탐구하면서 계속 변신하는 작업을 선보인 부허를 마냥 묻혀두지는 않았다. 최근 제대로 조명 받지 못한 여성 예술가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활발히 재조명되고 있다. 사후 2004년 스위스 취리히 미그로스현대미술관 회고전을 시작으로 2013년 파리의 스위스 문화원, 2017년 베니스비엔날레, 2021년 뮌헨 헤우스데어쿤스트 대규모 회고전을 통해 주목받았다. 전시는 6월 25일까지. 5000~1만원.

손영옥 문화전문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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