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상 정원’ 수놓은 진분홍 철쭉의 花려한 향연

국민일보

‘산상 정원’ 수놓은 진분홍 철쭉의 花려한 향연

매화 꽃잎 같은 경남 합천 황매산

입력 2023-04-26 19:00
경남 합천군 가회면 황매산 고지를 수놓은 철쭉이 아침 햇빛을 받아 화려한 분홍 꽃바다로 일렁이고 있다. 꽃이 만개하는 4월 말~5월 초에는 ‘철쭉 반, 사람 반’이 될 정도로 상춘객이 인산인해를 이룬다.

경남 합천·산청·거창에 걸쳐 산자락을 펼쳐놓은 황매산(黃梅山·1113m)은 8~9부 능선 고지에 펼쳐진 황매평전과 평전을 에두르고 있는 암봉들이 만들어 내는 모습이 매화 꽃잎 같은 산이다. 4월말이면 분홍빛 철쭉으로 능선을 가득 채운다. 지리산 바래봉, 소백산과 함께 우리나라 3대 철쭉 명산이다. 최근 영화, 드라마, 방탄소년단 리더 RM의 첫 솔로 앨범 타이틀곡 ‘들꽃놀이’ 뮤직비디오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찾는 발걸음이 부쩍 늘었다.

황매산의 산마루는 넓게 펼쳐져 있다. 가을에는 억새가 주목받지만 봄철엔 진분홍 철쭉이 주인공이다. 여기에는 사연이 있다. 1970년대 배고픈 시절 ‘우유 마시기’를 장려한 정부가 몇 군데 대규모 목장단지를 개발했다. 그 대상지 중 하나가 황매산이다. 나무를 베어내고 불을 놓아 작목을 일제히 제거해 소나 양들이 풀을 뜯어 먹을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소나 양들이 싫어하는 강한 독성을 지난 철쭉은 번성했다. 경쟁력이 없어 목장 문을 닫자 철쭉만 무성하게 자랐다. 목장 때문에 생긴 도로는 등산로가 됐다.

정상에 올라서면 매화꽃 속에 홀로 떠 있는 듯 신비한 느낌을 준다. 멀리 지리산 천왕봉과 웅석봉, 필봉산, 왕산 등 명산들이 한눈에 조망된다. 내려다보면 분홍빛 비단 이불이 산을 포근히 덮고 있다. 경이로울 만큼 꽃들의 바다를 이룬다. 수십만 평 고원에 펼쳐진 분홍빛 철쭉꽃 융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꽃송이가 바람에 일렁이며 빚어내는 색의 향연은 자연만이 선사할 수 있는 축복이다. 열흘 남짓 동안에만 만끽할 수 있는 ‘천상의 화원’이다. 마지막 봄꽃의 향연이라는 철쭉 군락을 카메라에 담으려는 이들이 적지 않다. ‘철쭉 반, 사람 반’이라 할 정도로 상춘객이 인산인해를 이룬다. 기다리는 차량들이 도로를 가득 채워 그 길이가 수백m에 이른다.

황매산에 인기 등산로가 있다. 영암사지에서 돛대바위를 거쳐 모산재(767m)에 오른 뒤 득도바위·순결바위 능선으로 내려오는 원점회귀 코스다. 깎아지른 암릉 구간이 이어지고, 등산로를 따라 펼쳐진 기기묘묘한 형상을 한 바위가 만물상인 양 널려 있어 수석 전시장을 걷는 듯하다.

모산재주차장이나 덕만주차장에서 출발해 황매산기적길의 시작점에 서면 산길에 접어든다. 산줄기를 따라 오르다 보면 하늘 높이 솟은 거대한 암봉이 앞에 우뚝하다.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모산재의 하이라이트인 돛대바위를 만난다.

절벽 위에 떠 있는 듯한 삼각형 돛대바위.

탁 트인 바위 절벽 끝에 홀로 서 있는 삼각형의 돛대바위는 순풍에 떠가는 배의 돛대와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운무가 일렁이면 영락없는 돛대로 보일 듯하다. 돛대바위 바로 옆과 주변 바위 틈새에서 철쭉이 방긋 웃고 있다. 강인한 생명력이 감탄을 자아낸다. 바위 옆 절벽 위에 서면 발아래로 장쾌한 풍광이 펼쳐진다. 하늘빛을 머금은 대기저수지와 푸른빛이 감도는 논밭이 풍요로움을 안겨주고 멀리 산줄기가 겹겹이 너울댄다.

돛대바위를 뒤로 한 채 10분 남짓 오르면 모산재 정상에 닿는다. 넓은 암반 위 정상 가운데는 돌무더기 옆에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이곳에서 돛대바위 쪽을 바라보면 암봉에 걸쳐진 계단이 아찔하고 바위 끝에 올라앉은 돛대바위가 떨어지지 않을까 위태로워 보인다. 정상에서 철쭉 군락지를 지나 황매산 정상으로 길을 이어갈 수도 있지만 이색적인 형상의 바위를 보려면 하산길로 향해야 한다.

아찔한 득도바위 끝에 걸터앉아 있는 등산객.

이어 누군가 칼로 잘라놓은 듯 반듯하게 두 동강이 난 득도바위에 닿는다. 고운 최치원 선생이 천길 벼랑 위 이곳에서 수도를 했다고 한다. 좁은 공간을 들어가면 발아래 아찔한 풍경이 심장을 쫄깃하게 만든다. 바위 끝에 걸터앉아 찍은 인증 사진이 인기다. 암릉을 따라 내려가면 번개 모양처럼 쪼개진 커다란 순결바위를 만난다. 사생활이 문란한 사람이 바위틈에 들어가면 바위가 오므라들어 빠져나오지 못한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번개 모양처럼 쪼개진 커다란 순결바위.

황매산 동쪽에 1989년 합천댐 건설로 조성된 합천호가 있다. 합천호 푸른 물에 산 그림자가 호수에 잠기면 매화꽃이 물에 잠긴 것 같다고 해 황매산의 별칭이 ‘수중매(水中梅)’라고 불린다. 최근 합천호 수면에 매화꽃이 떴다. 국내 최대 규모의 합천 수상태양광발전소다. 태양광 모듈이 총 17개의 매화꽃 모양 블록으로 일정 거리를 두고 설치돼 있다. 한 블록 당 5760장의 태양광 모듈이 들어갔다. 발전소 전체 면적은 46만6800㎡로 축구장 65개를 합친 크기라고 한다.

합천호에 매화꽃 모양으로 조성된 수상태양광발전소.

여행메모
황매산 철쭉제, 4년 만에 29일 개막
청량동 출발 남산제일봉 원점회귀 6㎞

황매산 철쭉제가 오는 29일부터 5월 14일까지 ‘다시 돌아온 황매산의 봄, 여러분께 드립니다’를 주제로 황매산 일원에서 4년 만에 개최된다. 철쭉은 이달 말쯤 만개할 것으로 예상된다. 개화 정도는 황매산군립공원 홈페이지(www.hwangmaesan.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황매산 철쭉을 쉽게 감상할 수도 있다. 해발 850m에 위치한 황매산오토캠핑장까지 차량으로 올라갈 수 있다. 다만 주차장이 협소해 축제 기간에는 쉽지 않다. 주차료를 내야 한다. 기본 4시간 3000원에 초과 시 시간당 1000원이 추가된다. 매표소 아래 덕만주차장과 모산재 아래 모산재주차장은 무료다.

모산재를 거쳐 철쭉군락지와 정상을 갔다 온다면 덕만주차장이 편하다. 5~6시간이 소요된다. 원점회귀코스로 잡는다면 5㎞ 남짓 거리에 3시간가량 걸린다. 모산재주차장 인근에 손두부, 도토리묵, 우렁된장비빔밥 등을 내놓는 식당이 모여 있다.

남산제일봉 청량동탐방지원센터에서 출발해 정상을 찍고 원점회귀하면 6㎞가량에 4시간 정도 걸린다. 해인사터미널 주변에 산채요리와 한정식 전문점이 많다.



합천=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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