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광·캔 보증금·자전거… ‘기후악당’ 꼬리표 뗀 네덜란드 [이슈&탐사]

국민일보

태양광·캔 보증금·자전거… ‘기후악당’ 꼬리표 뗀 네덜란드 [이슈&탐사]

[기후변화 멸종위기종 인간] <4> ‘기후악당’이 사는 법

입력 2023-05-01 04:06
“국가는 기후변화로부터 국민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며 국가의 온실가스 배출 감축목표를 미흡한 수준으로 지적한 대법원 판결 이후 과연 네덜란드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국민일보는 지난 13~16일 네덜란드 위트레흐트, 암스텔베인, 암스테르담을 찾아 네덜란드인의 생활상을 취재했다. 세계의 주목을 받은 판결이 실생활에서의 친환경 변화를 선도했는지 확인하려는 의도였다.

네덜란드 시내를 걷자마자 한국에서 보기 어려운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가장 먼저 시선을 붙든 건 주택 지붕마다 반짝이는 파란 태양광 패널들이었다.

암스테르담 중앙역에 위치한 수중 자전거 주차장을 시민들이 이용하고 있다.

사람들은 플라스틱병과 알루미늄캔을 가방에 한가득 담아와 상점에 있는 기계에 넣은 뒤 ‘보증금’을 받아갔고, 집 앞에서 전기자동차를 충전했다. 네덜란드 사람들은 “5년 전쯤부터 이런 변화들이 시작됐다”고 했다. 한 시민은 기자의 기후위기 질문에 대답하던 중 “혹시 비행기를 타고 왔느냐”고 물었다. 지금 묻고 답하는 온실가스 배출의 큰 원인 중에는 항공기가 있다는 얘기였다.

너도나도 태양광

사롤리아가 전기계량기의 작동 방식을 설명하는 모습.

지젤 사롤리아(64)는 2012년 4월 자신의 집 지붕에 9개의 태양광 패널을 설치했다. 당시는 간편하게 보조금을 지급받지도 못하던 때다. 그가 태양광 패널을 설치한 이유는 거창한 환경보호가 아니었다. “매일 떠 있는 태양으로 전기를 생산하고, 바로 집에서 쓸 수 있다고?” 하는 호기심이 더 컸다고 한다. 복잡했던 태양광 패널 설치보조금 지급 절차는 현재 간소화됐다.

지젤 사롤리아의 집에 설치된 전기계량기. 2012년 4월 ‘80028’이던 숫자가 11년 만인 이달 ‘79390’으로 오히려 줄어 있는데, 이는 사롤리아가 에너지 사용량 일부를 태양광 발전으로 충당한 결과다.

사롤리아는 “전기계량기가 보여주는 숫자가 11년 전과 비교해 거의 바뀌지 않았다”고 했다. 태양광 패널을 설치해 사용한 11년간 전기 사용이 거의 없었다는 의미다. 하지만 에너지 요금 청구서에 ‘0’이 찍히는 건 아니다. 아직 가스레인지를 사용하고, 에너지 인프라 사용료 등 부가 비용도 청구되는 까닭이다. 사롤리아는 “인덕션으로 바꾸는 것도 생각 중인데, 아직 정부가 넘치는 전기를 잘 관리하지 못하는 것 같아 고민만 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태양광 패널 20개를 설치했다는 니콜라스 펑(54)은 “계속 관심은 있었지만 기술적으로 안정됐는지를 먼저 확인하고 싶었다”며 “정부 보조금도 있고 해서 지난해 총 1만 유로(약 1480만원)를 들여 설치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동네엔 80% 정도가 태양광 패널을 설치한 것 같다”고 했다.

네덜란드에서는 지붕에 태양광 패널이 설치된 주택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네덜란드 정부에 따르면 태양광 패널의 설치 용량은 2020년 1만1000㎿에서 2021년 1만4400㎿로 약 31% 늘었다. 같은 기간 총 에너지 소비량에서 태양광 발전이 차지하는 비중은 1.62%에서 2.06%로 증가했다. 2021년 재생에너지는 전체 에너지 소비의 12%를 차지했는데, 이 가운데 태양광은 바이오매스(6.32%), 풍력(3.42%)에 이어 세 번째로 많았다.

“우린 변화 한가운데에 있다”

“질소 위기(Stikstofcrisis).” 네덜란드의 최근 관심거리를 묻는 질문마다 이 말이 돌아왔다. 네덜란드는 수년 전부터 사회 각계가 질소와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 네덜란드 정부는 2019년부터 질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건설 프로젝트를 중단시켰고, 분뇨가 질소 화합물인 암모니아를 배출한다며 가축 사육두수를 3분의 1가량 감축하기로 했다. 농민들이 이 정책에 크게 반발하며 신생 정당인 농민-시민운동당(BBB)이 급부상해 지난 3월 지방선거에서 돌풍을 일으키기도 했다.

기후위기의 영향을 줄이기 위한 일상 속 실천에 관심이 많은 프란스 반 덴 버그(66)는 “BBB의 돌풍이 오래가진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부분의 사람은 친환경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질소 위기에 대한 생각이 강해 BBB의 인기는 내년이면 사라질 것”이라고 했다. “정부가 정책을 통해 에너지 전환 이슈에 접근하면서 사람들이 내 집을 단열하고, 태양광 패널을 이용해 직접 에너지를 만들어내고, 집을 가스에서 전기로 바꾸고 하는 모든 것이 이제 막 시작됐다.” 그는 “우리는 지금 그 변화의 과정에 있다”고 말했다.

암스테르담 자전거 주차장에 보관된 자전거들.

네덜란드 사람들은 일상에서 적어도 하나 이상의 친환경적 실천을 하는 것으로 보였다. 대표적인 것은 자전거 타기다. 국민 1700만명이 2340만대의 자전거를 보유한 네덜란드는 자전거의 나라로 불린다. 네덜란드 정부는 탄소배출 감축을 위해 자전거와 대중교통으로의 전환을 꾀하고 있다. 자전거만으로 이동할 수 있는 지역을 확대하기 위해 자전거 도로를 잇고 대규모 자전거 주차장을 주요 역마다 만드는 중이다. 지난 2월 암스테르담 중앙역에 7000대의 자전거를 수용할 수 있는 수중 자전거 주차장이 개장했다.

최근 새롭게 시행된 친환경 제도도 볼 수 있었다. 네덜란드는 4월부터 ‘알루미늄캔 보증금 제도’를 시작했다. 알루미늄캔에 담긴 음료를 판매할 때 제품 가격에 0.15유로(약 222원)의 보증금을 더하고, 빈 용기를 가져오면 보증금을 돌려주는 제도다. ‘플라스틱병 보증금 제도’를 알루미늄캔으로 확대했다. 네덜란드에서는 2021년 7월부터 3ℓ 이하 플라스틱병에 보증금 0.15~0.25유로(약 222~370원)를 부과해 왔다. 마트마다 빈 용기를 수거하는 기계가 설치돼 있어 보증금을 바로 받을 수 있다.

시민들이 마트에 설치돼 있는 빈 용기 수거기에 알루미늄캔과 플라스틱병을 넣고 있다.

정부의 목표는 보증금을 부과한 플라스틱병과 캔의 90%를 회수해 폐기물을 줄이고 재사용을 늘리는 것이다. 네덜란드에서는 매년 6억개 이상의 대형 플라스틱병과 9억개의 소형 플라스틱병, 그리고 25억개 이상의 캔이 시장으로 나온다고 한다. 특히 플라스틱은 매립해도 좀체 썩지 않고 태우면 대기오염 물질이 발생한다.

‘기후 악당’ 꼬리표 떼기

네덜란드가 애초부터 에너지 전환이나 친환경 정책에서 두각을 드러낸 나라는 아니었다. 특히 네덜란드의 전력 시스템은 천연가스와 석탄을 중심으로 한 화석연료에 치중돼 재생에너지 측면에서 다른 유럽연합(EU) 국가보다 뒤처진 편이었다. 하지만 우르헨다 소송의 지방법원 판결(2015년) 이후 사정이 달라졌다. 202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보다 최소 25% 이상 줄이는 목표(165.4Mt 미만)를 달성해야 했기에 네덜란드 정부는 변화에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네덜란드 정부는 종전까지 있던 10기의 석탄화력발전소 중 5기를 2017년까지 폐쇄했다. 또 모든 석탄화력발전소를 2030년까지 폐쇄하기로 했다. 2050년까지 사용하는 모든 에너지를 지속가능한 에너지로 대체한다는 목표하에 풍력과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의 성장을 가속화하고 있다. 국민에게는 지속가능 에너지 및 에너지 절약을 위한 투자보조금(ISDE)을 지급하며 가구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2030년부터 내연기관차의 판매를 금지했다.

네덜란드 정부는 2020년에 1990년 대비 온실가스 배출량을 25.5% 감축(164Mt 배출)하며 우르헨다 판결에서 제시된 국가 감축목표를 달성했다. 향후 네덜란드 정부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2030년까지 1990년 대비 49%, 2050년까지는 95% 감축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네덜란드는 기후위기 대응을 선도하는 나라가 되기 위해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 사롤리아는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많은 논쟁이 이뤄지고 사람들의 인식도 좋기 때문에 친환경적인 것 같지만 아시아나 아프리카 같은 곳에 우리가 산업적으로 끼치는 영향을 생각하면 친환경적인 나라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덴마크 같은 나라들이 (친환경 정책으로는) 우리보다 잘하고 있다. 더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슈&탐사팀

암스테르담·위트레흐트=글·사진 정진영 기자 young@kmib.co.kr
이택현 김지훈 이경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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